'느린재난연구팀' 주윤정 교수 인터뷰
-"10.29. 참사 재난은 이제야 시작"
-"안전 문제에 목소리 내는 훈련 필요"
-"책임 향방 가리며 유족과 함께해야"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10.29 참사(이태원 참사) 이후 한 달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재난의 현장 속에 있다. 누구도 이 사태를 책임지려 들지 않는 상황에서 사망자는 추가됐고, 유족들은 세상 밖으로 나와 아픔을 토로했다. 특히 참사 희생자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20대 가운데 ‘집단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10.29 참사를 겪은 세대는 세월호 침몰 사고를 겪은 세대와 동일해 ‘재난 세대’라고도 불린다. 채널PNU는 20대 청년들이 이번 참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 대학은 또 다른 참사를 막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들어보기 위해 지난 11월 22일 ‘느린재난연구팀’에 소속된 주윤정(사회학) 교수를 연구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느린재난연구소 지리산 포럼 [느린재난연구소 제공]
느린재난연구소 지리산 포럼 [느린재난연구소 제공]
주윤정(사회학) 교수
주윤정(사회학) 교수

△‘느린재난연구팀’에 대해 소개해달라.
-재난은 아주 빠른 속도로 발생하고, 또 빠르게 휘발된다. 그러나 유족들에게 재난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참사는 순식간에 발생하지만 발생한 사건 이후의 피해는 굉장히 느리고 누적적으로 가중된다. 기후 위기와 같은 재난은 그 시작점이 명확하지 않지만 그 여파가 커져 사람들에게 보이는 순간에는 복구가 어렵다. 이를 ‘느린 재난’이라고 한다. 재난을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재난 속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느린 재난 연구팀이 하는 일이다.

△주로 어떤 주제를 연구하는가.

-기본적으로 자연 재난과 사회적 재난을 함께 연구한다. 재난 연구를 진행할 때 우리는 피해자 중심적인 시각에서 보려고 많이 노력한다. 그렇게 연구하다 보면 한 개인은 국가 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하고, 기후 위기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하나의 재난만 겪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느린 재난 연구팀에서는 어떤 사건과 위험을 분석하기보다는 그러한 재난으로 인한 피해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한다. 

△외신들은 10.29 참사를 ‘피할 수 있는 사고’라고 표현했다. 이번 참사에 행정적 대처가 미비했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작년까지 서울에 살았었고 핼러윈 당시의 이태원이 기억난다. 시내에서 돌아오던 중 (이태원 거리의) 차량 통제가 심해서 차를 돌렸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까 올해 유독 사람이 많았던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고가 일어났던 이태원 거리 바로 앞에는 파출소가 있다. 그리고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는 소방서가 있다. 코앞에는 대통령실이, 그리고 미군 부대가 있다. 대학병원도 가깝다. 이태원은 한국 사회에서 안전과 관련된 인프라가 가장 잘 갖추어져 있는 곳이다.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 완벽한 대응 체계가 갖춰져 있는 곳에서 수백 명의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다. 이태원이 가진 장소의 의미를 생각해 볼 때, 행정에 책임이 없다고는 얘기할 수 없는 차원의 문제이다. 

△10.29 참사에 잘 대처하고 또 다른 참사를 예방하기 위한 대학의 역할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재난 연구를 함께하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에 대한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다. 특히 지금 학생들의 세대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세대다. 이런 트라우마가 계속 누적됐을 때 청년들은 국가나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전반적으로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대를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리적인 트라우마가 다른 문제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 대학에서 깊이 있게 토론해 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안전 문제를 어떤 전문가나 행정당국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 관심을 가지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목소리를 내는 훈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안전 시민권’과 같은 것이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학교나 부산 지역 인근에서 느끼는 안전문제에 대해 조사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그룹 과제를 냈다. 이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이후 책임자의 자리에 섰을 때 안전 문제에 있어 경제적 비용을 고려하기보다는 사람의 생명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되새길 수 있다.

△이번 참사로 인해 정신적 외상을 입은 학생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트라우마가 심하면 참사의 특정 부분이 자신의 경험과 연결되어 불안이 굉장히 높아질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전문적인 상담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 부분에 있어 학교 차원에서 안전과 재난의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차원의 대응을 통해 트라우마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가 가능한 것이지 심리적인 대응만으로는 트라우마를 충분히 극복할 수 없다. 사회적 차원의 목소리와 연결될 수 있도록 학생 차원의 모임이 만들어져서 참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또 다른 참사를 막고 일상 속 우리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공동체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해 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이번 참사 희생자 158명의 이름은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남보다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인 사회’의 문제점을 짚어 본다면.

-이번 참사에 대해 국가 권력과 행정 문제에 대해 굉장히 많은 말들이 오갔지만 사실 공적인 책임이 부재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상당수의 사람이 이번 참사를 개인적인 비극으로 바라본다. 그들은 시민들의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공적 시스템을 탓하기보다는 그저 한 개인이 불운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근대 사회의 사회권이나 시민권, 국가의 소셜 시큐리티(social security), 즉, 사회의 안전 보장은 복지 국가의 핵심이다. 이는 근대적 시민사회를 형성해 간 논리이기도 하다. 불운한 사람들에게 분배를 실천하는 것, 즉 '평등'은 근대적 시민계약과 사회권,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핵심이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민주 사회를 형성하기 위한 책임의 부재, 사회가 함께 책임진다는 생각의 부재가 이런 참사를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기본적인 인권과 사회권, 시민권의 차원에 대한 문제 인식이 높아져야 한다. 그래야 지도자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도 이를 당연한 책무로 여기게 된다. 또한 시민들은 문제의식을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시민권과 인권이 왜 존재하는가’, ‘사회가 왜 중요한가’를 재난의 차원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10.29 참사에 대해 느린 재난 연구팀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선 우리는 참사를 기록하고 잊지 않으려 한다. 트라우마를 극심하게 경험하는 사람에게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는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결코 볼 수 없다. 나는 10.29 참사라는 재난이 이제야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트라우마 연구에서 굉장히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도덕적 손상’이다. 책임이 있는 자가 책임을 지지 않았을 때 사람들의 트라우마가 심해진다는 뜻의 용어이다. 

개인적 차원에서 비난받을 일이 아님에도 이를 방조하는 것 자체가 제도의 혐오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혐오 발언이 그렇다. 지식인들과 학생들이 유족들과 함께한다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수많은 갈등과 논쟁들이 벌어질 텐데 이것은 당신의 탓이 아니며 책임의 향방이 명확하게 가려져야 한다는 식의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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