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MY LIFE] "큰 발판이 되어줬던 인문학, 많이 경험하고 많이 들으세요"

-네이버 웹툰 작가, 자유 (고고학 09, 졸업) -어렸을 적부터 꿈꿔왔던 만화가의 길 -원하는 걸 그리고 만들어가는 삶 -가장 도움이 되었던 건 인문학 강의

2022-03-24     신지원 기자

‘It's my life’는 전공과 무관한 진로를 찾은 동문들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후배들에게 전달하는 인터뷰 시리즈 기사다. 두 번째 인터뷰 주인공은 '자유 작가.

본명 임은민(고고학 09, 졸업) 작가는 학부생 시절 네이버 웹툰 작가로 데뷔했다. 이후 2014년 졸업한 뒤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그 과정을 끝내지 않고 다시 웹툰 작가가 되어 10년 째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자유 작가의 만화는 밝은 색감과 아기자기한 그림체가 매력이다. 장면마다 디테일이 상당하고 유머러스한 요소 역시 들어가 있어서 지루할 틈을 만들지 않는다. 특히 대표작 롤랑롤랑’, ‘인챈트-나람 이야기는 이야기 전개도 잘 풀어낸 작품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지난 317, 자유 작가를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 줌을 통해 만났다.

자유 작가님이 연재하셨던 네이버 웹툰 만화, "롤랑롤랑"의 표지

작가님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자유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만화가 임은민입니다. 저는 부산대학교 고고학과 09학번 출신이고 부전공으로는 한문학과를 이수해 2014년에 졸업했습니다. 제가 웹툰 작가로 데뷔한 건 1년간 휴학 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복학한 뒤 작가 활동을 병행했는데 대학원에 들어가고 나서는 양쪽 다 일하는 게 쉽지 않아 결국 석사과정을 일찍이 접고 웹툰 쪽으로 길을 정했습니다.

웹툰 작가 일을 도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저는 처음부터 고고학과를 희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워낙 어렸을 적부터 만화를 무척 좋아해서 만화가가 되기를 꿈꾼터라 고고학과를 가면 소재를 삼을만한 이야깃거리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전략적으로 선택한 학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데뷔할 당시에는 웹툰 플랫폼이 활발하게 작동하기 전이어서 웹툰 작가보다는 만화가 쪽이 좋겠다고 막연하게 여기고 있었어요. 어쩌다보니 웹툰 작가로 데뷔할 기회가 운 좋게 데뷔를 했죠. 그 때 연재한 만화 얼룩말은 제가 원하는 대로 그린 작품이어서 지금까지도 가장 애정이 가고 마음에 듭니다.

대표작 인챈트-나람 이야기속 캐릭터 모습은 토기 그릇이거나 청자 같은 유물이고, 데뷔작 얼룩말도 역사 이야기 나오던데, 만화를 그리면서 전공 관련 소재를 쓰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만화 소재로 쓰기 위해 고고학과에 진학했기 때문에 전공 관련 소재를 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만큼 전공 수업도 즐겨들었기 때문에 배운 내용들을 조금이라도 만화에 녹여서 그릴 때면 뿌듯했습니다.

전공과 전혀 다른 직업을 선택하신만큼 주변의 반응도 제각각이었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부모님과 친구들은 모두 제가 만화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랐다기보다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처음에 부모님은 제가 잠시 해보는 직업이라 생각하셨지만요. 제가 만화를 그리는 걸 몰랐던 동기들이나 교수님들은 되게 의외라고 얘기하거나 놀랬던 기억이 있습니다.

웹툰 작가는 그림도 그리고 이야기 구성을 만들어내야 하는 만큼 힘든 점도 많겠지만, 좋은 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저는 힘든 점 보다 좋은 점이 더 많았습니다. 모든 것을 제 마음대로 구상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어요. 저는 스토리를 구성하고, 콘티를 짜고, 그걸 그림으로 옮기는 것까지 전부 다 제가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제 취향을 종합적으로 십분 반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이런 좋은 점이 힘들게 느껴진 적도 있어요. 더군다나 당시 웹툰은 작법이 전무했던 시기여서 혼자 마음대로 그리는 것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다른 사람들이나 네이버 웹툰 담당자로부터 피드백을 받았어요. 내용이 어려워지지 않게 중간점을 찾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연재를 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특히 스토리도 창작하며 자신만의 가치관, 신념 같은 게 있다면요?

-거창한 건 없지만, 오래 활동하다 보니까 깨달은 건 확실히 제 취향대로 그리는 게 가장 좋다는 것입니다. 그게 곧 제 작가로서의 가치관입니다. 사실 원하는 그림을 그리는 건 쉬워 보이지만 막상 작품을 연재하기 시작하면 이런저런 이유로 쉽지 않아요. 뚝심 있게 미리 정해둔 방향성을 밀고 가면서 최대한 휘둘리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한 요즘은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이야기를 구성하고 대사도 간결하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뭐든 지 쉽고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일수록 좋으니까요.

대학 생활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제 전공인 고고학과도 그렇지만 인문대 내에서 들을 수 있는 학과 강의들이 모두 다 재밌었습니다. 그래서 공강엔 부전공인 한문학을 제외한 교양이나 전공 수업을 청강했어요. 교수님들도 청강을 한다고 말하면 바로 괜찮다고 말씀해주셨기 때문에 부담 갖지 않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끔 뒷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듣던 게 그립기도 합니다.

-새로운 강의를 들으면서 알게 된 동기들도 있지만 저는 고전문학을 읽는 국문학과 동아리를 통해 친해진 타학과 동기들이 많아요. 보통 초··고등학생때 사귄 친구들이 오래 간다고 하던데 저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친해진 친구들이 더 많고 지금도 각별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대학교 와서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없다는 말을 보면 공감이 잘 안되더라고요.

자유 작가님의 개인 작업 그림들

대학 생활을 하면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이라고 하면 무엇인가요?

-정말 차고 넘치지만 그 중에서도 교육성이 높은 인문학 수업을 마음껏 들었던 것입니다. 인문학 수업은 제 작가 생활의 엄청난 자산을 마련해줬습니다. 단순히 소재를 얻을 목적으로 선택한 고고학과였지만, 인문대 소속 고고학과를 전공한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생활의 발판이 되어준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의 제가 어떻게 살아갈 지 생각하도록 도와준 게 인문학 공부였습니다.

-또 친구도 빼먹을 수 없죠. 성적이나 수업 같은 공통된 관심사로 말을 트고 대화를 나누면서 소중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었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니 정말 소중한 추억입니다. 저는 학교 이외에도 전공 유무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근 불법으로 업로드 된 웹툰을 공유하는 사이트가 늘어나고, 표절하는 작품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불법 업로드 문제는 사이트를 추적해서 신고하는 것 자체가 어렵죠. 요즘은 어떤 그림으로든 접근성이 너무 좋아져 피해를 보는 창작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지금 유튜브도 저작권이 있는 음원이 잠깐만 영상에 들어가도 자동으로 저작권자를 찾아서 연결해주는 시스템이 있잖아요. 저는 그림 분야도 음악처럼 그런 시스템이 적극 도입되어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걸 바로바로 막을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웹툰 시장이 성장 중이라서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요.

-표절은 노력이 덜한 만큼 결과가 빨리 나오기 때문에 숱하게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예전에는 가이드라인이 명확하지 않아 배경을 트레이싱(tracing)하는 것도 문제가 됐어요. 요즘은 저작권 의식도 늘었고 무료로 구도 소스를 제공하는 사이트나 3D 배경 사용도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 예방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유튜브를 통해 간단한 그림 강좌부터 캐릭터 디자인, 일러스트 그리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는데 웹툰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주실만한 팁이 있을까요?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한 이유가 (그림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이야기 구조를 짜는 강의는 소설 등 여러 서적을 통해 접할 수 있지만, 웹툰이나 디지털 그림 작법은 이제 막 생긴 분야라서 자세한 걸 찾기 어렵거든요.

-저는 글과 그림을 같이 하고 있는 웹툰 작가이지만, 현재 이 시장은 양상이 좀 달라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만화 자체에서 작가의 총 역량을 표출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글 작가와 그림 작가를 따로 두는 개념이 생소했는데 이제는 그림뿐만 아니라 채색, 콘티, 배경도 모두 따로 담당하는 등 웹툰 작가계가 점점 더 분업화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만약 웹툰을 준비한다면 본인이 정말 원하는 웹툰 작가의 모습이 과연 어떤 모습인지를 그려보고, 이 일을 하기 위한 가치관과 신념도 바로 잡으면 좋을 것 같아요. 가령 다른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것인지, 어떤 이야기를 잘 연출하고 싶은 것인지, 나만의 그림으로 잘 표현하고 싶은 것인지 등 이러한 것들이요.

자유 작가님의 개인 작업 그림들

부산대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 마디 있으신가요.

-저는 저에게 이렇게 관심 가져주는 후배들이 있다니 정말 기쁩니다. 처음에는 저도 학교와 안 맞는다는 생각 때문에 다니는 게 어려웠지만 여유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제가 직접 듣고 싶은 수업도 듣고 하고 싶은 일들도 찾아서 다 했던 것 같습니다. 부산대학교는 정말 좋은 학교에요. 시설도 잘 마련되어 있고 특히 중앙도서관은 책도 많습니다. 후배님들이 마음만 먹으면 성심성의껏 도와주실 좋은 교수님도 많고요. 대학만큼 자유롭게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기관은 없으니 학교를 다니는 동안 학교를 200% 활용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작가님이 하고 싶으신 일은 무엇인가요?

-이때까지 해왔던 것처럼 제 방향대로, 제 생각대로 계속 만화를 그리고 싶습니다. 이야기와 글로 표현하는 것은 즐겁고 저는 그걸 잘하고 좋아하니까요. 둘 중 어떠한 것도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10년간 너무 달려와서, 당분간은 좀 쉬는 시간을 가지고 다시 돌아갈까 생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