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미끼’ 내건 대외활동에 상처받는 청년들

-취업난·실무 중심 채용, 갈수록 스펙 중시 -스펙 한 줄 위해 대외활동 찾아 헤매는 학생들 -갑질·과중한 노동 등 부조리로 학생 착취 -대학 내 노동교육·지역사회 인권 기구 필요

2022-12-02     채널PNU 특별취재팀

마케팅 기업에서 일하고 싶은 우리 대학 재학생 A 씨는 한 기업이 주최한 ‘일일 마케팅 대외활동’에 지원했다가 낭패를 당했다. 실무를 경험하고 싶어 대외활동에 신청했지만 주어진 업무는 청소와 종이 파쇄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A 씨는 “마케팅 대외활동 인증서를 받아 스펙 하나라도 더 쌓으려고 지원했는데 마케팅과 전혀 무관한 일을 시킬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갈수록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스펙을 ‘미끼’로 대학생들을 이용하는 대외활동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대학생들은 자소서 한 줄과 스펙 하나를 더 채우기 위해 지원서까지 쓰며 각종 대외활동에 임하고 있지만, 정작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도는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무의미한 업무에 도구처럼 이용

채널PNU가 지난 9월 19일부터 10월 1일까지 부산 지역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316명 중 200명(63.3%)가 ‘대외활동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응답했으며, 150명(47.5%)이 대외활동을 1회 이상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가운데 31명(20.7%)은 대외활동 중 부당한 일을 겪은 경험이 있었으며 구체적으로는 △과중한 업무량(52.6%) △보상 미흡(39.5%) △결과물 도용(10.5%) △폭언· 폭설(7.9%) 등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9월 19일부터 10월 1일까지 부산 지역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c) 채널PNU 특별취재팀
지난 9월 19일부터 10월 1일까지 부산 지역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c) 채널PNU 특별취재팀

당초 공지했던 것과 관련이 없거나 무의미한 업무를 시키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비대면으로 기자단 활동이 가능하다’고 홍보한 다음, 합격자들을 해당 기업의 홍보 활동을 전담하는 ‘댓글 알바’로 쓰는 식이다.  B 씨는 “비대면 업무가 가능하다는 말에 기자단 대외 활동에 지원했는데, 정작 주최 측이 시킨 일은 SNS에 홍보 게시물을 업로드하고 ‘좋아요’를 누르는 일”이었다며 “기사 작성에 관해 배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활동 인증서 발급 기준도 실무와 무관했다. 주최 측이 참여자들에게 제공한 표에 따르면 △좋아요·댓글 1개당 1시간 △블로그 글 1개당 2시간 △50명 이상 카카오톡 채팅방 공유 시 6시간 등 SNS 종류와 개수에 따라 발급 기준이 상이했다. 실제 활동 시간이 아닌 홍보 글 개수에 따라 봉사 시간을 차등 지급하는 것이다.

■폭언에 후원 강요 등 '갑질'도

수료증을 빌미로 폭언·폭설과 후원 강요를 비롯한 ‘갑질’을 당하기도 한다. 경성대 재학생 C 씨는 지난 2월부터 5개월간 한 국제단체의 한국 지부에서 주최하는 대학생 봉사활동에 팀장으로 참여했다. 발대식 당일에서야 주최 측은 ‘후원금을 내야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고 공지했다. C 씨는 “동료 중 아무도 이러한 사실을 면접이나 공지에서 전달받지 못했다”며 “후원금을 내지 않으면 수료증을 주지 않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를 포함해 100여 명의 참여자가 그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후원 동의서를 작성하고 많게는 월 5만 원까지 냈다”고 말했다.

대외활동 과정에서 폭언·폭설을 당한 학생도 있었다. 동료가 폭언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적 있는 동아대 재학생 D 씨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해당 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학생에게 ‘내가 이 분야 인맥이 넓으니 이쪽 단체에서 일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며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완치된 학생에게는 더럽다며 가까이 오지 말라고 모욕을 준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청년 취업난 탓에 묵인

학생들이 부조리를 당하면서도 대외활동에 목맬 수밖에 없는 데는 유례 없는 취업난 영향이 크다. 지난 9월 교육부가 발표한 ‘2020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취업통계’에 의하면, 고등교육기관(대학·전문대학·일반대학원) 졸업생 취업률은 65.1%로 조사를 시작한 2011년 이래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부산의 졸업생 취업률은 59.6%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60% 이하를 기록했다. 구조적인 청년 실업 문제가 대외활동을 통한 ‘스펙 쌓기’ 경쟁과 여기서 발생한 문제를 묵인하는 구조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학벌주의 타파 등을 이유로 내세운 공공기관의 블라인드 채용이 스펙의 중요성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출신 대학 △학점 △어학 성적 등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쓸 수 없다 보니, 대외활동을 통해 스펙 한 줄을 추가하는 데 급급하다는 것이다. E(산업공학, 18) 씨는 “부산에서 취직하기가 쉽지 않은데, 출신 대학을 비롯해 (이력서에) 명기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며 “특출한 스펙이 있어야 뭐라도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토로했다.

■대학 등 공적 노력 필요

이에 대학 내 노동 교육을 강화하고 청년들의 노동에 특화한 인권 센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부산노동권익센터 박진현 주임은 “부산의 청년 취업률이 ‘꼴찌’인 상황에서, 청년들은 더욱 더 갑을관계 속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다”며 “대학의 노동 교육과 지역 차원에서의 청년 노동 인권 센터 설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대학이 인권센터 등을 통해 사후 상담을 진행하고 있지만 사전에 권리를 인지하고 있어야 사후 문제 제기를 통한 시정이 원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주임은 “특히 대학 시절 저학년부터 청년 노동 인권에 대한 교육 시행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만약 대학이 이를 바로잡을 수 없다면, 지역사회의 시정 능력이 중요하다”며 “부산시가  지역 차원의 구제를 위한 청년노동인권기구를 설립하는 것도 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대학과 지역 사회에서 시스템 구축을 통한 사회적 문제 제기와 구제가 가능할 때 대외활동 문제의 해결이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채널PNU 특별취재팀: 임하은 부대신문 국장, 신유준 보도부장, 전형서 기자, 홍윤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