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안 자고 봐요"...대학생 '숏폼 중독' 주의보

-1분 이내 짧은 영상 Z세대 중심으로 확산 -짧고 자극적인 영상, '팝콘브레인' 유발 가능성 -숏폼 콘텐츠 지혜로운 이용 필요

2023-05-03     최선우 기자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조주연(사회학, 22) 씨는 최근 휴대 전화를 보다가 내려야 할 곳을 놓치는 일이 늘었다. 최근 숏폼 콘텐츠 시청량이 부쩍 늘면서 영상에 몰입한 탓이다. 길을 걸으면서도 영상 시청을 멈추지 못해 전봇대에 부딪힌 적도 있다. 조 씨는 숏폼 콘텐츠에 대해 “영상 길이가 짧아 한 번 보기 시작하면 1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며 “빠른 템포로 지나가는 영상을 보고 있으면 도중에 끊고 다른 일을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채널PNU가 지난 3월 8일부터 20일까지 진행한 숏폼 콘텐츠 소비 인식 설문조사 결과 (c)김신영 기자

숏폼 콘텐츠의 인기가 급부상하면서 자극적인 영상에 장시간 노출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접근 장벽이 낮은 탓에 장시간 노출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숏폼은 ‘짧다’는 뜻의 영단어 ‘숏(Short)’과 ‘형식’을 뜻하는 ‘폼(Form)’의 합성어다. △틱톡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등 1분 이내의 영상을 짧은 호흡으로 소비할 수 있는 플랫폼을 필두로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누구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숏폼의 생산자·소비자가 될 수 있다.

■숏폼의 시대

Z세대 사이에서 숏폼 콘텐츠는 확실한 핵심 트렌드다. 지난 3월 8일부터 20일까지 우리 대학 학생 150명을 대상으로 <채널PNU>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숏폼 콘텐츠를 이용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92.7%(139명)에 달했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특성이 미디어 시장의 새로운 흐름을 만든 것이다.

틱톡의 등장으로 시작된 유행은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그램 릴스로 확산되면서 극에 달했다. SNS나 인터넷 사이트도 숏폼 소비의 열기를 반영해 플랫폼의 형식이나 배치를 바꾸는 등 변화를 받아들이는 추세다. 인스타그램은 홈 화면 중앙에 위치했던 쇼핑 탭을 지난 1월 9일 릴스로 변경했다. 네이버 웹툰은 웹소설 콘텐츠를 숏폼 형식으로 활용하는 ‘미니노블’을 지난 4월 21일 출시하기도 했다.

숏폼이 각광받는 이유는 ‘가성비’다. 설문에서 숏폼 소비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 응답자들(75.3%·113명)은 짧고 굵게 핵심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점을 숏폼의 장점으로 꼽았다. 한 설문 참여자는 “스스로 조절만 한다면 짧은 시간에 쉽고 간편하게 압축적으로 핵심만 볼 수 있어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인스턴트 자극을 조심하라

하지만 숏폼 콘텐츠가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숏폼의 중독성에 대해 지적하며 ‘팝콘 브레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팝콘 브레인은 즉각적이고 자극적인 영상에 지속적으로 노출됐을 때 그에 익숙해져 더 큰 자극을 추구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데이비드 래비 교수가 만든 용어로, 뇌의 전두엽이 자극에 내성이 생겨 ‘팝콘 터지듯’ 더한 자극을 추구하게 된다는 데서 나왔다.

우리 대학 학생들도 숏폼 콘텐츠의 중독성을 공감하고 있었다. 또한 일부는 시청량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설문조사 응답자 중 숏폼의 중독성이 강하다고 느낀 인원은 전체 표본의 88%(131명)를 차지했다. 시청 시간 조절이 어렵다고 답한 비율은 40.3%(60명)로 5명 중 2명이 곤란을 느끼고 있는 셈이었다. 설문조사 참여자들은 공통적으로 “영상이 짧은 데다 자동으로 넘어가 멈추지 않기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것 같다”고 응답했다.

강한 중독성 탓에 이용자들은 짧고 자극적인 영상에 긴 시간 노출되고 있었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주중 평균 시청 시간은 77.8분으로 한 시간을 넘겼다. 1분 내로 구성되는 숏폼의 특성상 하루에 60~70개가량의 영상을 시청하는 것이다. 

비교적 일과가 여유로운 주말에는 그 정도가 더 심각했다. 응답자의 주말 평균 시청시간은 125.1분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중 숏폼 콘텐츠를 5시간 이상 시청한다는 비율은 전체의 2.9%(4명)에 불과했지만, 주말엔 7.9%p 상승한 10.8%(15명)의 인원이 5시간 이상 숏폼 콘텐츠를 시청한다고 응답했다. 이나영(사회학, 22) 씨는 “영상 하나가 짧아 오랫동안 보고있다는 생각이 안 든다”며 “잠을 자야 하는데 보다 보면 끌 수가 없어 새벽 3~4시쯤 잠드는 것이 일상”이라고 말했다.

■숏폼, 중독?

전문가들은 숏폼 콘텐츠의 장시간 시청이 중독이라고 단언할 순 없지만 그 위험성은 높다고 말한다. 숏폼 콘텐츠를 오래 시청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내성이 생기거나 콘텐츠를 이용하지 않을 때 불안감과 초조함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 정도가 심해져 금단 증상으로 이어지면 중독으로 판단이 가능하다. 양산부산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허성영 임상교수는 “단순히 게임을 많이 한다고 게임 중독으로 진단하지 않듯 숏폼 콘텐츠를 많이 본다고 다 중독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일반적인 중독 기전을 고려할 때 반복적으로 짧고 강렬한 영상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경우 중독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숏폼 중독을 예방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비판적 수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허 교수는 “최근 중독이나 의존이라는 말보다 사용 장애라는 말로 개념이 바뀌는 중”이라며 “현대 사회의 풍부하고 편리한 자원을 잘 이용하는 스마트 유저가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마트쉼센터 김환구 상담사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았다. 그는 “사람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데 현재는 스마트폰이 대신하고 있다”며 “스마트폰의 자리에 사람을 채우는 것이 먼저”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