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진상 규명 위해 끝까지 버틸 거예요"

10.29 이태원 참사 분향소 -2차 가해 노출된 채 겨울 보내 -서울시, 내달 철거 일방적 제안 -"정부 지원 없이 여전히 방치" -버스 전국 순회하며 관심 촉구

2023-03-31     윤다교 보도부장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다섯 달째. 유가족들은 여전히 지난 참사로 안타깝게 떠난 가족을 기리기 위해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유가족들은 서로의 본명도 모른 채 ‘00 엄마’, ‘00 아빠’로 서로를 부르며 의지하고, 떠난 가족을 기억하고 있었다. 서울시와의 대립으로 화두에 오른 그들의 실상은 그저 자식을 그리워하는 보통의 어머니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지난 3월 25일 오전 11시 <채널PNU>는 서울 광장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를 찾았다. 유가족들은 서울 광장 분향소 옆에 설치된 임시 천막에서 교대로 머물며 분향소를 찾는 시민을 맞았다. 지나가다 분향소로 발걸음을 돌려 헌화와 묵념을 하는 시민들이 있는 반면 대부분은 가던 걸음을 재촉했다. 그럼에도 유가족들은 멈추지 않고 시민들에게 ‘진상 규명 특별법’ 제정에 대한 서명을 부탁했다.

지난 3월 25일 서울 광장에 위치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의 모습. 지나가던 시민 일부가 유가족들에게 국화 꽃을 받아 헌화하고 있다. [윤다교 기자]

유가족들은 기존 녹사평역 광장에서 서울 광장으로 분향소를 이전하며 서울시와 갖은 마찰을 겪고 있었다. 시는 유가족에 오는 4월 1일부터 4월 5일까지 5일간 서울 광장에서 합동 분향소를 운영하고, 이후 분향소를 철거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유가족 측은 그들의 요구 사항이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황에서 최후의 보루인 이곳을 결코 떠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유가족협의회(유가협) 송진영 부대표는 “유가족과의 합의 없이 서울시 독단적으로 결정한 사안”이라며 “분향소의 마지막을 결정하는 것은 유가족 측이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아픔마저 정쟁 대상

유가족들은 현재 정부 및 서울시에 진정성 있는 사과와 ‘진상 규명 특별법 제정’을 요구한다. 사랑하는 가족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의 명확한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러한 목소리는 곧 극단적인 국내 정치 싸움에 휘말렸다. 분향소를 둘러싼 논쟁을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있는가 하면, 유가족들을 그저 정치적 집단으로 보고 비난하는 여론도 쏟아졌다. 고(故) 김산하 씨의 아버지 김운중(56) 씨는 “한순간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호소를 그저 정쟁으로 보는 시선에 이제 달관했다”고 말했다.

유가족과 천막 안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도중에도 바깥에서 확성기에 대고 “언제까지 이렇게 정부에 대고 시위를 할 거냐”며 원색적인 비난과 심한 욕설을 퍼붓는 2차 가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가족들을 향해 대놓고 혀를 차며 천막 앞에 물을 뿌리고 지나가는 이도 있었다. 고(故) 박가영 씨의 어머니 최선미(49) 씨는 이제 이런 소리가 익숙하다는 듯 “이전 녹사평역에 있을 때와 비교해서는 이것도 많이 줄어든 편”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이제 시민들의 비난에는 익숙하지만, 정부의 대처가 진짜 2차 가해”라고 토로했다.

이달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부에서 유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참사 한 달 뒤 행정안전부 지원단을 출범했지만 실질적 면담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최 씨는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지원단에) 전화를 걸었지만, ‘아직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소리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저 정부의 이러한 대응 자체에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버텨 낸다는 마음뿐

유가족이 머무는 천막 안은 편히 발 뻗을 곳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분향소 운영에 필요한 물품이 쌓여 있는 사이로 플라스틱 의자 몇 개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유가족이 교대로 분향소를 지키다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김 씨는 이번 겨울 동상을 입었던 무릎을 매만지며 “지금은 날이 풀렸지만, 겨울에는 유가족 대부분이 천막 안에서 동상을 앓아 육체적으로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이번 겨울도 힘들었지만, 다가올 여름이 진짜 고비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자 하는 그는 과거 딸에게 배운 ‘존버’(힘든 상황에도 끝까지 버티라는 의미의 유행어)라는 단어를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고 했다. 덧붙여 “딸에게 처음 이 단어를 배웠을 때는 고통을 견딘다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하는 세대를 안타깝게만 여겼는데, 유가족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아무리 힘든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끝까지 버텨 내기를 바라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3월 25일 분향소 옆에 위치한 임시 천막 옆을 지나치는 시민들. 유가족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윤다교 기자]

■모든 국민에게 전해지길

부산에서 반평생을 살아온 김 씨는 부산대언론사(채널PNU)가 취재를 나왔다는 소식에 반가워하며 근처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딸을 떠올렸다. 김 씨는 거의 매일 부산과 서울의 먼 거리를 아침저녁으로 왕복하며 분향소를 찾고 있었다. 그는 “아무래도 거리가 멀다 보니 (분향소와 관련한 사안을) 매체로 접할 수밖에 없는 부산에서는 우리의 이야기를 잘 모르는 것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광주에서 분향소를 찾은 시민 박 모 씨 역시 “주변에 일이 있어 지방에서 올라왔다 잠시 들렀는데, 물리적 거리가 있어 실감을 못 하다가 직접 현장에 와보니 유가족의 입장이 와 닿는다”고 말했다. 충북 청주에서 온 장민우(31) 씨는 “보건 업계에 종사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대한민국의 안전에 대한 의식이 낮은 것을 느꼈다”며 “이런 안타까운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가협은 ’10.29 진실 버스’ 전국 순회에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유가협은 지난 3월 27일부터 독립적 '진상 규명 특별법' 제정을 위해 버스를 타고 순회를 시작해 11개의 지역을 돌며 국민들의 서명을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