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소프트웨어 장사... '봉'이 된 대학

-잇따른 디지털化·독과점 -슈퍼甲이 된 IT 기업, 자료·소프트웨어 무기로 -컨소시엄 협상·오픈액세스 등 적극 대응 나서야

2023-06-02     전형서 기자
(c)김채현 기자

대학이 디지털화를 거듭하고 있다. 과거 정기적으로 학술지를 받아 얻던 연구 자료는 이제 '엘스비어(Elsevier)'를 비롯한 외국계 학술 저널 출판·유통사의 전자 학술DB를 통해 공급받고 있다. 떨리지 않는 손, 제도 샤프와 제도판, 자만 있으면 하던 설계는 값비싼 ‘캐드(컴퓨터 지원 설계, CAD)’ 소프트웨어의 도움 없이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변화로 인해 디지털 자료와 소프트웨어의 질은 곧 교육·연구 역량과 직결된다. 대학의 지원 규모가 곧 연구 실적과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자료와 소프트웨어의 규모가 감소하는 모순이 발생하기도 한다. 대학이 재정적 지원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대학은 꾸준히 지원을 늘리고 있지만, 디지털 자료·소프트웨어의 가격이 그 이상으로 상승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자료와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기업들은 점차 '슈퍼 갑(甲)'이 되어 가고 있다. 대학의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가격을 대폭 상승시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면 학술지가 대기업의 디지털 학술DB로 바뀌고, 주요 소프트웨어가 생겨나며 중요성이 증대된 시기에 이들의 가격은 크게 올랐다. 미국 연구도서관협회(ARL)에 따르면 1986년부터 2004년까지 물가(CPI, 소비자물가지수)가 73% 상승하는 동안 학술지(연속간행물)의 단가는 188%, 학술지 지출은 273% 증가했다. 소프트웨어 역시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물가 상승률은 19%였던 데 반해 소프트웨어의 가격은 평균 62% 상승했다.

1986년부터 2004년까지의 소비자물가지수(CPI)와 도서관 관련 지출 그래프. [출처: 미국연구도서관협회(ARL)]

특히 소수의 공급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따르면, 현재 과학연구 정보 DB인 '웹 오브 사이언스'에 등재되는 학술지의 절반은 △엘스비어(Elsevier) △스프링어(Springer) △와일리(Wiley) 세 곳에 의해 유통되며 이들의 영업 이익률은 40%에 달한다. 학술지를 출판·유통하는 일만으로도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이는 것이다. 2000년대 초 독점화가 진행돼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어도비 △오라클 등 분야별로 1~2개 기업이 주도권을 쥔 소프트웨어 분야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우리 대학 도서관장을 지낸 이수상(문헌정보학) 교수는 "예전에는 학술지를 권 단위로 샀지만, 요즘은 학술지가 디지털화·패키지화되면서 학술DB 한 곳에서 수천 종의 학술지를 제공할 수 있게 되면서 독과점화가 진행됐다"며 "덩치가 커진 소수의 기업이 유통과 출판을 모두 담당하니 힘이 세질 수밖에 없고, 끼워팔기·폭리와 같은 병폐도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대학이 직접적으로 겪은 피해도 많다. 2019년 우리 대학은 네덜란드계 회사인 엘스비어가 공급하는 학술DB인 '사이언스 다이렉트(Science Direct)'의 구독 방식을 무제한 이용에서 종량제로 바꿨다. 이미 우리 대학 전자자료 구독 비용의 50%에 달하는 16억 원가량을 할애하고 있었음에도 사측에서 무리한 인상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용도가 높은 일부 저널을 제외하고는 무제한 이용에서 선지급금 미화 20달러씩을 내고 보는 식으로 바뀌었다. 우리 대학 도서관은 △교수 20회 △강사·명예 교수 10회 △대학원생·조교·연구원 5회로 저널 이용 횟수를 제한한다고 공지했다. 우리 대학 공과대학 박사 과정인 A씨는 "볼 수 없는 논문이 많아 연구에 지장이 있다"며 "무료로 학술지를 제공하는 불법 웹사이트인 〇〇허브를 통해 논문을 찾아 읽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국내 DB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누리미디어’가 운영하는 학술국내 최대 학술DB인 'DBpia'는 2016년 구독료를 전년 대비 24% 인상했다. 이로 인해 우리 대학은 구독 범위를 기존의 80% 수준으로 축소했다. 이후에도 누리미디어는 4년에 걸쳐 DBpia 구독료를 50% 인상하고 2019년 9.5% 추가 인상을 요구하면서 대학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결국 당해 우리 대학을 포함한 한국대학도서관협회는 한 해간 DBpia 구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도서관 관계자였던 한 직원은 "정확한 액수는 밝힐 수 없지만, 중형차 한 대 값 정도던 DBpia의 구독료가 네다섯 배 가까이 오르는 데 불과 몇 년이 안 걸렸다"고 말했다.

2018년 1월 1일부터 26일까지 △ScienceDirect △DBpia △KISS 3종의 학술DB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컨소시엄과의 협상 결렬로 인해 구독 중단됐다. [출처: 우리 대학 도서관] 

소프트웨어 구독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대학에서 라이선스를 받아 전량 무료로 사용하던 ‘어도비(Adobe)’의 소프트웨어는 4년 전부터 사용기관·학과 단위 개별 구매 형태가 됐다. 기존 매년 1억 원 미만이었던 가격이 3배 가까이 뛰어 예산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포토샵(사진 편집) △일러스트레이터(그림·그래픽·디자인) △애크러뱃(PDF 파일) △프리미어 프로(동영상 편집) △드림위버(웹 디자인) 등을 이용하려는 학생들은 학과 차원의 도움을 받거나 개인당 20만 원가량을 내고 공동 구매해야 하는 형편이다. 최현석(환경공학 박사, 17) 씨는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가 없어 설계도를 만들 때 큰 불편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교양교육원 소속 B 교수도 "애크러뱃이 사라져 PDF 파일을 사용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보전산원 관계자는 “어도비 외에도 ‘누구나 아는 국내 유명 문서작성 소프트웨어’ 등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중 가격이 물가 인상을 훨씬 상회하게 오른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무료 서비스라고 홍보한 후 유료로 전환하는 '뒤통수'도 있다. 우리 대학은 2021년 1월 문서·메일·통계·회의 등을 연동할 수 있는 업무용 플랫폼인 ‘구글(Google)’의 'G-Suite(현 구글 워크스페이스)'를 도입하고 웹메일과 연동시켰다. 이처럼 이례적으로 외부 플랫폼을 학내에 전면 도입한 것은 당시 구글이 대학에는 무제한 저장 용량을 제공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입 후 4달 만인 5월, 구글은 1년 후 100TB 이상의 용량은 유료로 전환한다는 조치를 발표했다. 당시 우리 대학이 사용하는 용량은 130TB로 조치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국 정보전산원은 지난해 6월 30일부터 1인당 드라이브의 할당 용량을 5GB로 제한한다고 공지했다.

우리 대학의 G-Suite 용량 제한 안내 공지. [출처: 우리 대학 정보화본부]

이러한 기업 횡포에 대한 해법으로는 대학들이 뭉쳐 공동협상에 나서는 방법이 있다. 실제로 학술지 분야의 경우 대학들이 학술DB 제공 기업에 대응하는 컨소시엄(공동 협상을 위한 연합)을 형성해 협상에 성공한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전국 대학 도서관들은 수년 전부터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대학교육협의회(KUCE) 등을 통해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정부의 지원을 받아 외국 기업들과 협상을 지속하고 있다. 우리 대학 도서관 연구정보지원팀 최덕수 주무관은 "한 국내 학술DB의 경우 컨소시엄을 통한 협상 덕에 기존에 비해 절반 수준의 인상률을 적용했다"고 말했다.

협상 과정에서 '오픈액세스(OA)'로의 전환 계약을 추가하는 것도 대안이다. 오픈액세스는 기존 방식과 달리 구독료를 내는 대신, 저자가 출판료를 직접 지불해 다른 자료에 무료로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다. 가격의 차이가 크지 않더라도 논문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대학이 직접 출판료를 내기 때문에 유통사나 출판사가 가격을 함부로 올릴 수 없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매년 125억 원가량을 엘스비어에 지불하던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10개교(UC 시스템)의 경우 컨소시엄을 형성해 엘스비어를 공동 보이콧하는 등 '벼랑 끝 전술' 끝에 2021년 오픈액세스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이 교수는 "하나의 논문이 만들어지는데 인류의 지식이 총동원되는데, 출판·유통사만이 이익을 독점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공감대가 있다"며 "현재로선 전 세계에서 오픈액세스 전환이 답이라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소프트웨어 분야에선 아직 공동협상을 비롯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대학이 독자적으로 업체와 1:1로 상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대학이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협상을 위한 컨소시엄 구상을 시도한다면 기업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교수는 기업들에게도 △정기구독 형태 △플랫폼 기반 △독과점 △대체 불가능함 등과 같은 공통점이 있어 "학술지의 상황과 같은 맥락"이라며 "대학들이 컨소시엄을 통해 뭉쳐 협상에 나선다면 소프트웨어 역시 협상의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한국대학교육협의회(KCUE)-한국대학도서관연합회(국대도협, KUCLA)의 컨소시엄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식. [출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