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진 전통주] 술 빚는 부산 청년들 "기술력 격차 좁히면 세계화 가능"
-'꿀꺽하우스' 최승하·이준표 공동대표 임수현(전기공학, 17) 브루어 인터뷰 -전통 기반으로 새 재료·기술 도전 중
2030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전통주가 인기를 끄는 가운데 전통주를 즐기는 것을 넘어 직접 술을 빚으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이들이 있다.
지난 9월 20일 <채널PNU>는 ‘우리 술’에 매료된 청년들을 만나기 위해 부산 광안리 해안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꿀꺽하우스’를 방문했다. 꿀꺽하우스는 ‘꿀꺽’하는 순간의 즐거운 경험을 전하기 위해 우리 술을 빚고, 가양주(家釀酒) 문화를 알리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연구소를 연상케 하는 양조장과 목재 가구를 기본으로 한 내부 공간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브루잉(양조)’과 ‘펍(pub)’을 합성한 ‘브루펍’이라는 그들의 말이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채널PNU>는 '꿀꺽하우스' 최승하(33)·이준표(30) 공동대표와 직원으로 일하는 우리 대학 재학생 임수현(전기공학, 17) 씨를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꿀꺽하우스' 최승하·이준표 공동대표
△어떤 제품을 만들고 있나요.
-이 대표: 저희 양조장에서는 ‘김해쌀’을 주재료로 술을 만들고 있어요. 그 이외에도 지역 제철 재료, 외국 재료를 사용해 술을 만듭니다. 저희 술은 특히 맥주 양조 기술에 있는 ‘사워링’이라는 공법을 이용해 산미가 있고 와인 같이 드라이합니다.
△양조 과정 중 가장 공들이는 과정은 무엇인가요.
-최 대표: 청결인 것 같아요. 양조장은 미생물을 다루는 공간이기 때문에 오염에 굉장히 민감합니다. 그런데 사워링을 하는 공정이 유산균을 통해 산미를 만드는 것이다 보니 까다로운 관리가 필요합니다. 산미라는 것이 길게는 한 시간 짧게는 분 단위마다 바뀌기 때문에 미세한 맛의 차이를 위해 청결과 데이터적인 부분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습니다.
△전통주가 다른 주류에 비해 가지는 특징은 무엇인가요.
-이 대표: 전통주는 당화(糖化)를 통해 술을 빚는 발효제인 ‘누룩’을 활용하는 게 핵심입니다. 누룩에는 100가지 이상의 곰팡이와 세균, 효모와 효소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누룩을 사용했을 때 향과 맛이 굉장히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전통주의 가장 큰 특징이에요. 이러한 복합성을 어떻게 균일하게 잘 만드는지가 앞으로의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와인 같은 경우에도 내추럴 와인이 최근 유행했고, 맥주에서는 야생 효모를 이용한 와일드 에일 등이 유행했어요. 자연에 기반한 기술이 더 가치 있는 장르로 많이 언급되는 거죠. 전통주도 그런 강점을 이미 갖고 있다고 봐요. 우리 술의 강점을 유지하면서도 누룩에 있는 복합적인 맛을 잘 표현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라고 보고 있습니다.
-최 대표: 전통주는 각 지역에서 나는 재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지역문화를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차별점인 것 같아요. 저희가 전통주를 시작한 이유도 지역 재료와 쌀을 사용하고 우리만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지역 양조장이 창업을 하고, 지역민들과 함께 어울리는 전통주 축제를 기획하는 등의 변화가 이는 것 같습니다.
△전통주 시장에 대한 관심도는 높으나 그만큼의 소비가 일지 않는다는 평도 있습니다.
-최 대표: 체감 상으로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다는 느낌은 있어요. 하지만 전통주를 먹고 싶어도 전통주를 취급하는 매장이 그리 많지 않아 접근이 어렵다는 소비자 의견도 있죠. 아직 전통주를 소개할 수 있는 장이나 매체가 부족하긴 해요. 국내 소규모 양조장들이 다들 영세하고 자본이 적어서 술을 만드는 것까지는 잘해도, 이후에 누구에게 어떻게 팔지, 어떻게 영업할지는 굉장히 어려워하더라고요. 사람들한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느냐를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수도권과 지방간 전통주 시장 크기나 인프라 차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최 대표: 사실 전통주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이 겪는 문제죠. 지금 국민의 50% 이상이 수도권에 밀집해 있잖아요. 그래서 전통주 시장도 아직 서울만큼 인프라를 갖추거나 교류가 원활하지는 않은 편이에요. 하지만 이것을 지역을 탓하며 낙담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봐요. 저희의 첫 목표가 ‘부산에 오면 꼭 가봐야 할 곳을 만들자’였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부산에 전통주 교류의 장을 만들어내는 것을 최고 과제로 삼고 있어요.
-이 대표: 수도권이 문화 향유에 유리한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보면 지역마다 라이프 스타일이 다르고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그런 차이점을 잘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꿀꺽하우스를 광안리에 지은 이유도 관광객이나 외국인이 더 유입되기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에요. 장소에 낙담하기보다 내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포기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부딪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주는 다른 주종에 비해 접근이 어렵다는 인식도 있는데, 이를 탈피하고 전통주를 향유하기 위한 방법이 있나요?
-이 대표: 첫 번째로 기술력의 차이를 좁혀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전통주는 ‘어머니의 손맛’ 같은 전통을 많이 따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요즘 주류 산업에서 사케나 와인, 맥주 등은 다양한 과학적 데이터로 술을 만들고 있거든요. 발효나 주조 과정에서 품질유지나 과학적 분석이 가능해지는거죠. 그러한 기술적 부분이 전통주에도 도입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종을 경험해보면서 각 장점을 전통주에 녹여내는 시도가 필요하죠.
두 번째로 전통주를 세계화시키고 널리 알리려면 우리만의 특색이 데이터화 돼야 해요. 단순히 재료값을 낮추기 위해 수입 재료를 쓰기보다 우리나라의 재료를 활용해야 한다고 봐요. 소비자가 돈을 지불 할 때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점을 전달할 수 있어야 전통주가 차별점을 가질 수 있는 겁니다.
-최 대표: 우리 술이 계속 계승되려면 전통주에 대한 정신은 분명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요즘은 전통주에 대한 고정관념이 조금씩 부서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저희는 이것을 긍정적으로 봅니다. 젊은 층이 새로운 시도를 주도하고, 전통방식으로 술을 빚어왔던 분들도 새로운 방식에 도전하고 있어요. 전통주가 계속해서 새로운 세대로 계승되는 이유도, 오랜 역사를 가진 양조장이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전통과 문화, 재료를 통한 표현, 새로운 기술력, 마케팅적인 부분이 어우러져야 우리 술을 계속해서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꿀꺽하우스 운영 철학이 있다면요.
-이 대표: 정말 힘들어도 즐겁게 할 수 있냐 없냐가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더라도 본인이 재미없으면 나중에 가서 후회하게 되잖아요. 결국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스스로에게 재미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최 대표: 우리가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자라는 것이 생각이자 철학 같아요. 그래서 평소 업무를 볼 때 저희의 관심사나 눈여겨보고 있는 재료들을 술에 담고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어요. 단순히 유행하는 재료나 시장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문화적인 요소보다도 ‘더 관심이 가는 것을 녹여내 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전통주가 전체 주류 시장의 1%를 돌파했는데, 1%를 지키는 사람으로서 전통주 시장의 발전 방향이 어떠하다고 봅니까.
-이 대표: 저희도 원래 수제 맥주라는 외국 문화를 좋아했고 그걸 업으로 삶을 살아봤는데, 코로나 이후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과연 잘하고 있는 게 맞는 건가. 수입산 재료와 해외 문화를 들고 와서 열심히 하는 것이 사실 다른 나라를 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죠. 그러고 막상 보면 대부분이 우리 술에 대한 관심은 없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막걸리에 대해 공부해본 적도 없고 문화도 잘 모르지만 우리의 것이라는 점은 다들 알잖아요. 우리 것, 우리 지역 등에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우리 지역을 잘 살릴 수 있을 지 고민하다 보면 그게 나중에는 한국의 것이 되고, 세계의 것이 될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우리가 계속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소통하고 소비해야 하는 거죠.
-최 대표: 1%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아요. 미약하다면 미약하지만, 1%에서 시작해서 크게 성장한 것들도 많아요. 우리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전통주는 장기적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최근 발표된 농림축산식품부의 전통주에 대한 계획에서는 우리 술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술과 우리 음식 문화를 같이 소개해야한다는 과제가 있었어요. 이처럼 앞으로 전통주에 다양한 이야기들을 덧붙여 간다면 쓰일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고 봅니다.
■‘꿀꺽하우스’ 임수현(전기공학, 17) 브루어
△전통주 브루어를 목표로 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가장 처음에 꼭 우리 술이어야만 했던 건 아니었어요. 원래는 맛있는 술 자체를 좋아하는 대학생이었거든요. 그러다가 전통주 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전통주와 관련된 활동을 하게 되다보니 관심이 커졌습니다. 이후 집에서 가양주 형태로 취미생활 삼아 전통주를 만들었던 게 너무나 즐거웠어요. 그런 재미가 저를 여기까지 이끈 것 같아요.
좀 멀게 보면 사실 브루어라는 한 가지 직업에 국한되어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양조를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전통주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든다거나 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으는 일을 하고 싶거든요. 그러한 목표에 기반이 되는 게 양조일 것 같습니다.
△전통주 브루어를 직업으로 삼을 때 주변 반응은 어떠했나요.
-제가 전기공학과다 보니 양조 장비에 대한 컨트롤이나 정비에서 전공을 살릴 수 있지 않겠냐는 얘기를 좀 들었던 것 같아요. 전공을 살려서 장비를 개조해본다거나 장비를 수리하는 일을 해보는 것은 어떻냐는 조언도 받았습니다. 사실 조언이나 응원보다는 만류가 많았어요. 술을 많이 마시다가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겠냐는 얘기나 굳이 힘든 길을 가야 될 이유가 있느냐는 그런 말을 많이 들었죠. 보통 정해져 있는 길을 가면 편한 것은 맞으니까요.
그런데 집에서 술을 만들다가 술통을 두 번 터뜨렸을 때, 온 벽과 천장에 술이 튄 집안 상태를 보고 ‘부모님께서 이제 술을 만들지 말라고 하시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라고요. 저한테는 큰 충격이었어요. 난장판이 된 집을 어떻게 치울지에 대한 생각보다 술을 더 만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 더 걱정됐거든요. 그때 술에 대한 저의 관심이 자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느꼈어요. 제 진심을 느낀 그 사건이 이 일을 놓치지 못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최근 도전하고 있는 작업이 있나요?
-제가 개인적으로 만들고 있는 술이 있습니다. 만들기 까다로운 것으로 손꼽히는 누룩을 활용한 술을 만드는 도전입니다. 누룩을 사용하면 양조 과정에서 qc(품질관리: quality control)가 안 된다는 문제점이 있거든요. 그래서 보통은 누룩을 사용하기를 꺼려하거나 배치(batch)라는 표현을 이용해서 새롭게 브랜딩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저만의 연구를 통해 누룩을 활용한 맛 좋은 술을 지속적인 퀄리티로 잘 만들어보고 싶다는 목표가 있습니다.
△젊은층이 전통주를 즐기다 보니 새로운 도전이 생겨나고 있는 반면 전통 가치의 훼손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저의 개인적 가치와 '꿀꺽 하우스'를 기준으로 말씀드리자면, 꿀꺽 하우스가 사실 전통적인 양조 기법만으로 술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이 전통성을 중요시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안 좋게 들릴 수 있다고도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저는 '전통'이란 지금부터 만들어가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적인 색깔에 현대의 사람들이 새로운 색깔을 입히고, 새로운 전통을 세계에 소개한다면 아무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전통주 생산업을 목표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나요.
-국가가 운영 지원하는 전통주 교육 기관이 지역별로 생각보다 많이 있어요. 부산이나 다른 지역에서 들을 수 있는 교육 과정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또한 양조가 아닌 소믈리에, 커뮤니티 운영 등 전통주에서 나온 파생 산업에 종사하고 싶으면 서울에 있는 교육기관에 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 술이라는 장르가 젊은 세대에게 이렇게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있다면요.
-즐거운 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뭔가 막걸리라고 하면 보통 '머리가 아프다', '부어라 마셔라'하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거든요. 하지만 사실 우리 술도 부담 없이 편하고 즐겁게 마실 수 있는 다양한 제품과 장르가 많아요. 전통주가 급속도로 화제가 되면서 무서워하시던 분들도 많은 것 같은데,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니니 부담 갖지 마시고 언제나 일상 가까이에서 즐겨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