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 PC주의 게임·영화가 부른 뜨거운 논쟁

-다양성과 포용성으로 시작한 PC -문화·스포츠·상업 등서 등장했지만 -점차 외면 당하거나 비판 받고 있어 -"진리·정치 등 논의 활발해져야"

2023-11-30     조승완 보도부장

지난 10월 24일 게임 <마블 스파이더맨2>가 중동판매를 위해 LGBTQ(성소수자를 칭하는 약어)을 상징하는 요소를 검열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인섬니악 게임즈’가 개발 당시에는 넣은 LGBTQ 요소를 중동에서는 삭제해 발매했다는 것이다. 일부 누리꾼들은 “정치적 올바름(PC)을 위해 억지로 집어넣은 요소를 판매량을 위해 포기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PC적 요소를 사용하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는 주장도 일었다.

이처럼 게임, 영화, 음악 등 미디어에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 요소를 가미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올해 개봉한 흑인 주연의 영화 <인어공주>나 내후년 개봉을 앞둔 히스패닉 주연의 <백설공주>, 근래 LGBT요소를 추가한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등 다양한 분야에 PC 요소가 등장했다. 이를 두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방향이 옳은 것이냐’ 혹은 ‘과도한 정치적 선동이냐’ 등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채널PNU>는 이번 ‘정치적 올바름’ 기획을 통해 PC의 등장과 성장을 짚어보고 요즘 청년들이 생각하는 PC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PC가 가미된 대표적인 콘텐츠들. 왼쪽에서부터 인어공주, 스파이더맨, 브리저튼이다. [출처: 디즈니, 소니, 넷플릭스]
흑인의 인권신장을 위한 캠페인 'Black Lives Matter'의 시위 모습 [출처: PEXELS]

우선 PC라는 용어를 이해하려면 약 100년 전 20세기 초반 공산주의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PC는 누군가 공산당의 지침에 부합하지 않은 발언을 하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지적하기 위해 사용됐다. 1930년대에는 미국의 정치·언론계가 독일의 나치즘을 비판할 때 사용한 단어였다. 이후 1980년대 들어 미국에서 인권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지식인 사회 △사회운동 계열에서 널리 사용됐다. 이 단계에서부터 점차 PC는 사회운동 계층 본인을 뜻하는 말이 아닌 비판적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인권 운동이 활발해지는 것에 반감을 느낀 보수 세력이 ‘사회운동 계층은 본인들이 정치적으로 옳은 줄 안다’는 식의 비꼬는 용어로 사용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점차 PC에 포함되는 요소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그 목소리도 강해지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 경제적 계급 모순만을 사회의 모순으로 봤던 PC의 개념이 △가족 △교육 △종교 △젠더 △섹슈얼리티 △인종 △민족 정체성 △미디어 등을 포괄적으로 포함하는 의미로 확대된 것이다. 우리 대학 김지훈(정치외교학) 교수는 “하나의 논제 혹은 담론이 부상하게 되는 시점을 명확히 정하기는 쉽지 않다”며 “1990년대를 즈음한 언어학적 전환(linguistic turn), ‘미투운동’ 등 자유민주주의와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의 확산, 대중문화의 확산에 따른 정치의 문화화(culturing of politics) 등 여러 계기로 인해 서구에서 활발히 논의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개념의 확대와 함께 ‘가부장제’, ‘성차별’ 등의 개념을 PC에 포함하면서 다양한 운동이 촉발됐다. 김 교수는 “법적 차원에서는 2001년 위헌판결이 난 △‘군가산점 폐지’ 정치적 차원에서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2018년 미투운동 문화적 차원에서는 △2016년 <82년생 김지영> 출판을 꼽을 수 있다”고 말헀다.

■필연성과 강제성의 대립

현재 PC에 대한 반응은 극명하게 나뉜다. ‘소수자의 권리를 투영하는 올바른 행위’라는 주장과 ‘동의를 강요하고, 정작 실속이 없다’는 주장 등이다. 사실상 ‘PC’와 ‘반PC’다. 최근 개봉한 영화 <인어공주>의 경우 이러한 현상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다. 실사 영화 <인어공주>는 주인공 에리얼 역에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를 캐스팅하고 그외 여러 배역에 동양인, 흑인 등의 유색인종 배우들을 대거 기용했다. 일부 영화 관객들은 SNS를 통해 '#NotMyAriel'이라는 해시태그를 걸고 흑인 배우 캐스팅에 대한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반면 이를 반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기존에 PC를 추구하는 이들은 ‘세상의 편견과 선입견에 당당히 맞서는 영화’라며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여론 충돌의 결과로 <인어공주>는 해외 영화 평가 사이트 메타크리틱에서 유저 평점 2.3점, 국내 네이버 영화 관객 평점 6.40점을 기록하는 등 저조한 실적을 보였다.

다양성과 포용성으로 시작된 PC는 점차 외면 받고 있다. 흑인이 주류를 이루는 스포츠인 미국 프로농구 리그(NBA)는 2020년부터 흑인의 인권신장을 위한 캠페인인 ‘Black Lives Matter 운동(이하 BLM)’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지난해까지 영국 1부 축구리그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서도 선수들이 경기 전 그라운드에 모여 한쪽 무릎을 꿇으며 인종차별 반대 메시지를 표하기도 했지만 점차 캠페인에 의문을 표하는 반대 목소리를 직면했다. 지난해 EPL 선수 윌프리드 자하는 “BLM 운동은 아무 의미 없는 형식적인 캠페인에 불과하다”며 이를 비판했다. 결국 EPL은 올해 해당 캠페인을 종료했다.

성소수자를 의미하는 무지개 무늬를 적용시킨 '버드라이트' 맥주 [출처: 버드와이저]

PC를 기용하는 기업을 두고 진위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지난 4월 미국 맥주 업체 버드와이저가 유명인 트렌스젠더의 인스타그램을 ‘버드라이트’ 맥주 홍보에 활용한 뒤 온라인상에서 불매운동이 확산됐다. 마케팅을 위해 보여주기식 홍보에만 집중하는 일명 ‘레인보우 워싱’에 반발한 결과다. 김 교수는 “소비자의 비판은 기업이 내세우는 바와는 다른 방식의 기업문화 혹은 행태가 기업 내·외부적으로든 보여질 때 그 ‘진위성’을 두고 이뤄진다”며 “근래 많은 이슈가 되었지만 최근에는 크게 대두되지 않는 ESG 경영과 비교해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PC 논쟁이 갈 길

이러한 격렬한 논쟁 속, PC가 그 취지를 되찾기 위해선 구체적인 가치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올바름’이라는 언어 △‘진리’에 대한 태도 △‘정치’에 대한 개념적 정의 등을 핵심 논제로 꼽았다. 우선 기본적으로 ‘맞고 틀림’의 기준에 따라 틀림을 교정하는 취지가 담긴 ‘올바름(Corretness)’이라는 단어의 사용에 대한 논의다. 김 교수는 “현대 사회는 어떠한 가치에 대해 누구도 획일적인 가르침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며 “다양성을 포용하는 상황 속에서 나타날 수 있었던 PC가 그 다양성을 훼손하는 위험을 상정하지는 않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느끼는 부분에 대한 의문 제기가 필요하다는 현대인의 태도가 PC에서 드러난다”며 “회의주의(skepticism)와 자기 확신 사이에서 인간의 인식적 한계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우리가 ‘정치적’ 대상으로 삼을 영역이 무엇일지 더 넓은 차원에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어떤 컨텐츠는 매우 도덕적이지만 무용하고, 어떤 컨텐츠는 PC적으로 용인하기 어렵지만 유용할 수도 있다”며 “사적 영역의 보호를 국가와 정부의 목적으로 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사적인 취향과 판단이 공적 담론화될 수 있는 영역은 어떻게 한정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