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지역의료 살릴 대책은 제자리

-정부·의료계 대치 길어졌지만 -공공의료 활성화 대책은 빠져 -민영화 위한 술수 아니냔 지적 -"지역의사제 등 건설적 논의를"

2024-06-07     유승현 보도부장

올해 상반기 가장 큰 이슈였던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싸고 정부와 의료계가 여전히 대립하며 의료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국민들까지 타격을 받고 있다. 정부는 필수의료를 강화하기 위해 의료인의 수를 늘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시민단체는 이러한 증원책이 의료 민영화로 가기 위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올해 상반기 정부의 의료 패키지 정책 발표 이후 대한의사협회와 전국 의과 대학이 집단 행동에 나서며 의료 서비스에 차질을 빚고 있다. [윤지원 기자]

7일 <채널PNU> 취재를 종합하면 윤석열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적극 추진했지만 국내 의료의 가장 큰 문제인 필수의료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마련되지 않아 목적 전치 현상을 낳았다는 비판이 인다. 윤 정부는 지난 2월 1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여덟 번째 민생토론회에서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하고 의대 정원 증원을 추진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의대 증원이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며 의학교육의 질 저하 등을 불러온다는 주장과 함께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의료인 증원하더라도

전문가들은 의료인 증원 필요성에 동감하면서도 실질적인 의료 환경 개선을 위한 계획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의료인 증원이 현재 의료 정책의 필요조건이라고 설명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소속 오영호 연구위원은 “현재 의사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상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인데 여기서 한의사를 빼면 인구 1,000명당 2.1명으로 감소한다. OECD 국가 전체 평균 의사 수가 3.7명인 것을 고려했을 땐 상당히 적은 수라는 것이다. 그는 “근본적으로 의사 수를 늘리지 않으면 지역에서 나타나는 필수의료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오 위원은 “물론 의료인 공급만 많이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의료가 국민의 기본 권리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필수의료의 공급은 각 지역에 적정하게 분포돼 있어야 한다”며 “누구나 KTX를 타고 한 두 시간 걸려 서울에 가면 진료를 받을 수 있겠지만 응급 상황에선 골든타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의 정형준 정책위원장도 의료인 증원만 추진할 것이 아니라 후속 계획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보건 정책에서 “의사의 수는 상수가 아닌 변수”라고 말한다. 의사 수를 확정하고 다른 정책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를 구상하고 그에 맞는 의사 수가 충원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채널PNU>와의 전화 통화에서 “현재 정부의 의대 증원과 관련된 의료 정책이 문제가 되는 것은 증원하겠다고 밝힌 의료 인원에 대한 배치 계획도, 교육 계획도, 재정 계획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의료 민영화’ 수순?

의대 증원 외에 실질적 필수의료 강화 정책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자 시민사회는 현 정부의 의대 증원책이 의료 민영화를 위한 명분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고 있다. 지난 4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은 현 사태를 두고 대국민 담화에서 “의료산업 발전에 따라 바이오, 신약, 의료 기기 등 의사들을 필요로 하는 시장도 엄청나게 커질 것”이라며 “의료서비스의 수출과 시장 개척 과정에서 의사들에게 더욱 많은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같은 날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무상의료운동본부)는 이번 의대 증원이 ‘가짜 의료 개혁’이라며 혹평했다. 김재헌 무상의료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채널PNU>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처럼 필수의료에 대한 배치가 없는 상황에서 의사 수만 늘리면 민간 병원들이 영리를 추구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며 “돈만 보고 경쟁에 내몰리는 의사가 아니라 정부가 책임 있게 필수 의료 부분에서 일할 수 있는 의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전했다.

덧붙여 “의료 서비스 민영화로 필수 복지 서비스가 상품이 된다면 결국 소득 수준에 따른 의료 불평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국민들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전혀 목표를 두고 있지 않은 정부의 태도 때문에 지금의 정책 패키지도 의료 민영화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가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필수·지역의료 살려야

필수의료를 되살리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으로 정치권에선 일본과 대만을 포함한 해외 각국에서 시행 중인 ‘지역의사제’가 거론되고 있다. 의료 취약 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의대 인력을 양성하는 동시에 그들이 해당 지역에서 활동하도록 지원과 의무를 마련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입학정원의 일정 비율을 10년간 도내 공공보건의료기관 등에서 의무적으로 복무하도록 하는 ‘지역의사양성법(지역의사제)’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현재 정부의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에도 지역의사제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이 역시도 의대 증원이라는 이슈에 묻혀 활발히 논의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전문가들 역시 ‘지역의사제’처럼 지역 정주 의사를 늘리는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며 현재 ‘필수의료 문제는 지역의료 문제와 불가분의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필수 의료가 부족하다는 말은 대체로 의료가 취약한 지역에 필수의료 인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란 것이다. 오 연구위원은 “‘의사 수가 적어도 보건 진료 횟수가 많아 현 의료 체계에 문제가 없다’는 의협 측의 주장은 서울과 수도권에 해당하는 이야기”라며 “지방이나 의료 취약 지역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공공의대와 공공병원을 증설하라는 목소리도 크다. 의대가 없는 전남 지역 국립대학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공공의대 논의는 각 권역별 국립대학에 공공보건의료를 담당할 공공의대를 설치해야 지역 의료 공백을 막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 제안됐다. 2015년 처음 법안이 얘기된 지 9년이 지나, 현재는 새롭게 발의된 공공의대 설립을 위한 근거 법안이 지난해 12월 보건복지위원회 소위를 통과한 상태다. 정 정책위원장은 “하동 같은 의료 취약 지역에는 응급 시 이용할 수 있는 민간의료기관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말하며 “지역의사제와 연계해 증원되는 의료 인력이 인기 전공으로만 집중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 연구위원도 “새롭게 지어지는 공공의대의 경우 기존 의대 운영 방식과 달리 해당 지역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해야 의대 증원으로 우려하는 수도권 및 인기 전공 쏠림이 해소될 수 있다”며 “의료 취약 지역에선 해당 지역의 의대 지역 맞춤형의 의료 교육을 시행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