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벽] “같은 학교도 아냐” 도 넘는 밀양캠 차별
-멀티캠퍼스 운영중인 우리 대학 -밀양캠 차별적 발언·인식 ‘심각’ -지난해 학생회 선거서도 드러나 -밀양캠 47.6% 차별 경험 '있다' -부산·양산캠은 10~12% 불과
“입학하기 전에는 그냥 촌에 있는 이원화 캠이 이렇게까지 욕먹을 수 있는지 몰랐다. 이런 (비하하는) 글들 보면 진짜 맘이 너무 안 좋아서 가끔 그냥 자퇴하고 고졸로 사는 게 더 나은 거 같기도... 아니면 성적 맞춰 부경대 본캠을 갔어야 하나.”
우리 대학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한 학생이 지난해 4월 24일 올린 게시물의 일부다. 자신을 우리 대학 밀양캠퍼스(밀양캠)에 재학중이라고 밝힌 이 학생은 2년 이상 학교를 다녔는데도 밀양캠을 비하하는 글을 보면 여전히 힘들다고 했다. 게시물에 첨부된 캡처본에는 ‘느그끼리 밀양촌 동네서 거기서 평생 처박혀 썩어 제발...ㅋㅋ’, ‘밀양대 출신 아무도 부산대 출신으로 안 봐요’, 등 노골적인 캠퍼스 비하 발언이 포함됐다.
우리 대학 멀티캠퍼스 중 하나인 밀양캠퍼스에 대한 차별적 발언과 인식이 도를 넘고 있다. 부산대학교와 밀양대학교는 2006년 공식 통합해 20년 가까이 하나의 대학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밀양캠을 ‘다른 학교’로 여기는 건 여전하다. ‘부산대학교’로 표기되는 졸업장은 동일하지만, 양 캠퍼스 학생들 간 보이지 않는 ‘벽’은 그대로인 셈이다. <채널PNU>는 그 ‘벽’이 주는 학내 반목 현상의 심각성에 주목해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등을 시리즈 기사로 심층 보도한다.
■수면 위로 드러난 ‘우리 안의 벽’
밀양캠에 대한 차별적 인식은 에브리타임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우리 대학 학생들만 접속 가능한 폐쇄성과 글쓴이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익명성은 차별과 혐오 표현을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실제로 에브리타임에서는 밀양캠을 아예 다른 학교 취급하거나 무시하는 발언을 흔히 볼 수 있다. 지난 5월 28일부터 30일까지 열린 대동제 기간에는 ‘밀양대가 부산대 축제를 왜 오냐’, ‘자리 없는데 밀양대는 축제 오지 마라’ 등의 글이 여럿 게재됐다.
밀양캠을 ‘밀양대’로 표현하는 캠퍼스 조롱어는 에브리타임에 단시간에 업로드됐다 삭제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럼에도 밀양캠을 ‘밀양대’로 지칭하는 글도 지난 2년간 102개에 달했다(5월 29일 기준). 실제 사용됐던 빈도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100여개의 글이 남아 있다는 것은 그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 준다. 밀양캠의 한 학생은 지난 2월 <채널PNU>에 ”단순히 입시 결과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밀양캠 학우들의 모든 행동이 비난받는다”며 “마치 양반과 천민 관계처럼 생각하는데, 수준이 낮으니 까야(비난해야) 한다고 외쳐 댄다”고 제보했다. 또 다른 학생 역시 “에브리타임 인기 게시글에 밀양캠 글이 올라가면 다른 학교 이야기를 한다고 비난받기도 한다”며 “‘-밀-(밀양캠을 조롱하는 의미)’이라는 댓글이 달리는 것이 다반사”라고 말했다.
밀양캠에 대한 차별 인식은 지난해 12월 실시된 총학생회 선거 결과와 무관치 않다. 선거 초반 우위를 점했던 1번 선거운동본부(선본)는 부후보가 밀양캠 소속이라는 이유로 지지 하락세를 겪은 것이다. 당초 1번 선본은 제한된 기간 내에 가장 많은 추천 서명을 받고 기호 1번으로 입후보하면서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또한 2번 선본 후보가 1번 선본과 달리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저학번이어서 군필 여부에 민감한 대학생 사회에서는 1번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지 않겠냐는 전망이 선거 초반에 자리했다. 그러나 1번 선본의 부후보가 밀양캠 소속이라는 사실이 에브리타임에서 급속히 퍼져 나가자 판세가 뒤집혔다.
‘밀캠 VS 미필’로 선거 구도가 재정의되며 에브리타임에서의 공방은 치열했고 “밀양대가 부산대 총학을 왜 하냐”는 직접적인 비난까지 일었다(<채널PNU> 2023년 11월 17일 보도). 문신 등 기타 논란이 존재하긴 했지만 밀캠 학생이 우리 대학 전체를 대표할 수 없기에 당선을 막아야 한단 것이 중론이었다. 2번 후보는 24.96%P 차이로 압승했다. 익명을 요구한 밀양캠의 한 학생은 총학 선거 당시 여론을 떠올리며 “단순히 입학 성적을 중시하는 능력주의 때문에 일어난 병폐가 아니었다”며 “그저 밀양캠 자체를 같은 학교 학생이라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결속력 없는 ‘멀티캠퍼스’
취재 결과 우리 대학 학생들은 여러 캠퍼스로 운영되는 우리 대학이 하나라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대학은 ‘멀티캠퍼스’를 내세우지만 흩어져 있는 캠퍼스 구조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는 한 학교라는 인식 자체가 옅은 것이다. <채널PNU>가 지난 2월 14일부터 17일까지 4일간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우리 대학 학생 130명 중 82명(63.1%)이 캠퍼스 간 통합 정도가 낮다고 응답했다. 통합 정도가 높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9명(6.9%)이며 ‘매우 높다’고 응답한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캠퍼스별 결과를 살펴보면, 통합 정도를 낮게 평가한 부산캠 학생은 54.9%에 그친 반면 밀양캠과 양산캠은 60%를 상회했다(△밀양캠 69.8% △양산캠 62%). 이유로는 △지리적으로 너무 멀어서(38명·86.4%) △학내 만연한 캠퍼스 차별 풍조(33명·75%) △수업, 동아리 등 교류 방법 부족(18명·40.9%) 등이 꼽혔다.
실제로 밀양캠 학생은 자신이 학내 ‘이방인’이라고 느낀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밀양캠 학생 63명 중 30명(47.6%)이 캠퍼스로 인한 차별과 비난을 경험한 적 있다고 응답했다. 둘 중 한 명 정도가 단지 밀양캠퍼스라는 이유로 피해를 입은 것이다. 부산캠은 9.8%, 양산캠은 12.5%로 훨씬 적었다.
설문에 응답한 밀양캠 학생은 “새벽벌도서관에 과잠을 입고 갔는데 비웃음을 당한 적이 있다”며 “그분들은 작게 이야기하셨겠지만 ‘밀양캠이 여기에 왜 왔대’라는 말이 들렸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서울에서 하는 모임에서 우연히 부산대 동문을 만났는데, 밀양은 동문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양심상 어디 가서 부산대라고 말하고 다니지 마라”는 말을 들은 경우도 있었다.
■“문제 논의할 공론장 필요”
상황이 이렇지만 학교 측의 문제 인식은 낮은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3월 12일 취재진이 만난 우리 대학 고위 관계자 A 씨는 “학생들 사이에서 밀양캠 학생들에 대한 차별과 비난이 있다는 사실은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처음 알았다”며 “이야기를 듣고 많이 놀랐고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학교는 밀양캠에 충분한 지원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A 씨는 “학내 부처장들이 참석하는 정책회의에 다른 캠퍼스는 안 오지만 밀양캠 생명자원과학대학 부학장은 참석 권한을 준다”며 “밀양캠의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과 요구사항을 본부에 전달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놓고 있다”고 말했다.
캠퍼스 간 차별과 비난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학생들 간 자정작용을 기대하는 입장도 있었다. 우리 대학 고위 관계자 B 씨는 문제를 인지하고는 있지만 소수의 잘못이기에 대학이 나서기엔 조심스럽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지난 3월 18일 <채널PNU>와의 인터뷰에서 “실제 에브리타임에서 안 좋은 말 하는 학생은 소수에 불과할 텐데, 몇몇이 비뚤어진 가치관을 가졌다고 해서 차별이 실재한다고 보기엔 어렵다”며 “대학 차원에서는 캠퍼스 간 학습환경 격차에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 대학 다양성위원회(위원회)는 보다 적극적인 학교의 노력을 주문한다. 위원회는 지난 2월 <2023 부산대학교 다양성보고서>를 내고 밀양캠을 포함한 다원화캠퍼스 구성원 소외 문제를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다양성위원회가 재학생 4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다수의 학생이 에브리타임 등에서 벌어지는 학내 캠퍼스에 따른 △서열화 △무시 △배제 △낙인찍기가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해당 설문에 참여한 학생들은 “타대생이 왜 부산대 커뮤니티에 있냐는 등 선 넘는 발언들이 많다”며 “본캠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와 혐오를 당했다”고 경험담을 제시했다.
위원회 위원들은 보고서를 통해 부산캠을 제외한 3개 캠퍼스를 ‘다양한 사각지대에 있는 집단’으로 규정하고 이를 포용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내 구성원 중 소수 집단에 속하는 학생들이 함께 교육받을 수 있는 시설과 제도 점검도 필요하다고 했다.
보고서 발간에 참여한 다양성위원회 김인선 여성연구소장은 지난 3월 19일 <채널PNU>와의 인터뷰에서 “수도권 대학으로부터 ‘인서울’ 못 했다고 차별받는 것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똑같이 부산대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가 있는 또 다른 이들을 약자 삼는 것은 모순”이라며 “그들 때문에 입결 혹은 대학의 네임밸류(유명세)가 떨어진다는 비난은 아무 의미도 효과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정말 부산대를 ‘모든 사람이 오고 싶어 하는 대학’으로 만들려면, 누군가를 차별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를 어떤 분위기로 만들어 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며 “똑같은 행태(차별·비난)를 반복하고 있는 모습을 거울처럼 직면하게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공론의 장이 대단히 필요하다”고 밝혔다.
*채널PNU 특별취재팀: 윤다교, 임하은, 전형서, 정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