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벽] 통합·유대 강화는 빠진 멀티캠 정책 18년
-인프라 격차·능력주의에 -캠퍼스간 차별 강화됐지만 -축제 교류·셔틀 40회 운행 등 -타대학과 달리 통합 정책 없어
우리 대학 내 밀양캠퍼스(밀양캠)를 둘러싼 학생들 간의 반목이 여전하자 멀티캠퍼스 정책이 캠퍼스 간 유대를 강화하는 데 소홀했단 지적이 나온다. 캠퍼스 특성화에 집중한 나머지 캠퍼스 통합을 유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단 것이다.
7일 <채널PNU> 취재를 종합하면 우리 대학은 현재 4개의 캠퍼스로 구성된 멀티캠퍼스를 운용 중이나 같은 방식의 다른 대학과 달리 캠퍼스 간 통합을 위한 노력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입결(입학성적 커트라인)이 낮은 학과들이 먼 거리에 모여 있다는 점, △같은 대학임에도 학내외 인프라를 비롯한 여러 여건까지 차이 나는 점 등이 밀양캠을 같은 학교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을 공고히 하고 있었다.
■능력주의 만연한 시대
밀양캠퍼스는 이원화 캠퍼스, 즉 분리된 분교(分校)가 아니라 ‘같은 학교’인 본교(本校)다. 이원화 캠퍼스는 고등교육법상 동일한 대학이 여러 캠퍼스(교지 분할)로 분리된 형태고, 분교는 이름’만’ 같은 전혀 다른 대학을 타 지역에 새로 설립한 것에 가깝다. 따라서 별도의 대학으로 취급되는 분교와 달리 본교는 학사 등 행정, 회계, 정부 지원을 비롯한 모든 업무가 한 몸으로 진행된다. 졸업증서 역시 △건국대(충주캠) △고려대(세종캠) △동국대(WISE캠) △연세대(미래캠) △한양대(에리카) 등 분교의 경우 분교임이 표시되지만, 우리 대학을 포함해 △경북대(상주캠) △연세대(국캠) △전남대(여수캠) 등 이원화 캠퍼스는 본교명만 기입된다.
밀양캠이 이 같은 본교임에도 분교 또는 타대학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가장 큰 근거는 ‘입결’이다. 능력주의 풍조가 만연한 대학생들이 모인 에브리타임 등 학내 커뮤니티에서는 부산캠 내 학과들에 대해서도 미미한 입결 차이를 가지고 학과 간 차별이 일어난다. 대학본부에 의하면 올해 밀양캠의 수시 입결은 부산캠 평균에 비해 1.1등급 가량 낮다.
실제로 학내 커뮤니티 내 밀양캠을 차별하는 글에선 주기적으로 입결 데이터를 가져와 차별의 근거로 정당화한다. 반대로 7~8년 전 밀양캠의 입결이 그다지 낮지 않았다는 자료로 ‘반박’하기도 한다. 일부 학생들은 학내 커뮤니티의 익명성에 기대 혐오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대동제 기간에도 ‘밀양대 XX들이 부산대 축제에서 부끄럽지도 않냐’거나 ‘(대동제에) 사람이 많아서 화가 나는데 밀양캠은 오지 못하게 해서 인원을 줄이자’고 하는 등 학우를 타자화한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지나친 능력주의와 혐오 풍조가 이 같은 행태를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입시 성적이 누군가의 능력을 판단하고 구분 짓는 ‘정당한’ 잣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산교대 사회교육학과 전진성 교수는 “과거엔 이념을 통해 사회 안정이 이뤄졌지만, 냉전이 끝나며 혐오의 시대가 도래했다”며 “학생들의 차별 정서도 그 일환”이라고 했다. 능력주의에 대해선 “우리 사회엔 경제력의 차이 같은 여러 권력관계가 존재하지만, 이를 모두 무시하고 입시와 같이 결과로만 평가하는 건 옳지 않다”며 ”(어떤) 학생들은 ‘능력대로 대우받는 것’이 공정함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결과만 본 것이고 기회와 여건이 다를 수 있기에 공정하지도 정당하지도 않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냈다.
■교류·통합 정책 미흡
상황이 이렇지만 밀양캠과 물리적으로 통합된 후 캠퍼스간 교류와 유대를 유도하는 멀티캠퍼스 정책은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대학 멀티캠퍼스 정책은 지난 2006년 부산대와 밀양대가 통합되며 시작됐다. 1950년대부터 부산대병원이 있는 아미캠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종합대학 캠퍼스가 부산캠 외에도 생겨난 건 밀양캠이 처음이다. 당시 대학 본부는 밀양대와 통합한 뒤 양산캠을 신설해 △인문사회·기초과학(부산캠) △나노·바이오(밀양캠) △의생명과학(양산캠) △부산대병원 의료(아미캠)로 4개 캠퍼스 특성화를 시도했다. 2008년부턴 밀양캠을 ‘국제화 특화 캠퍼스’로 만들어 우리 대학 신입생 전원의 밀양캠 국제화 교육 수강을 계획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밀양캠 특성화·국제화 교육은 이뤄지지 않았고 밀양캠 출범 초 교양수업도 열리지 않았다. 불편을 호소한 나노과학기술대는 2012년 실험 수업을 제외한 모든 수업을 부산캠으로 옮겼다. 밀양캠에 생명자원과학대학만 남은 상황에서 수요가 적다 보니 교양 수업은 여전히 적고, 계절학기는 열리지 않고 있다. 캠퍼스 간 셔틀 버스도 하루 7회에 불과하다.
멀티캠퍼스를 운영 중인 많은 대학에서는 캠퍼스 간 교류 촉진을 통해 캠퍼스 간 통합에 적극적이다. 연세대는 1학년 전원이 송도캠(국제캠)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외국어, 문화예술, 스포츠 등 교양수업을 듣는 RC(Residential College) 프로그램을 수강하도록 한다. 이후 2학년부터는 신촌캠에서 수업을 듣는데, 재수강이나 선후배 간 서로 캠퍼스를 방문하는 경우가 잦다. 당초 양 캠퍼스에서 순환버스가 하루 12회 운행했지만, 학생들의 불만이 제기되자 42회로 증편되어 캠퍼스 간 이동에도 지장이 적다.
성균관대 역시 수업과 학교 행사를 양 캠퍼스에서 진행해 학생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성균관대는 서울캠(인문사회과학캠) 과 수원캠(자연과학캠)이 각각 문·이과 특성화로 분리했기에 학생회장도 별도로 존재하고 캠퍼스 간 교류가 없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발생했었다. 이 대학은 LC(Learning Community)라는 학습공동체를 운영 중인데, 단과대학 단위로 하던 것을 양 캠퍼스가 섞이도록 계열을 넓혔다. 또 양 캠퍼스에 필수 교양 과목을 개설하고, 양 캠퍼스가 격년으로 번갈아 가며 축제를 진행한다.
캠퍼스 간 셔틀버스 역시 하루 16회로 우리 대학에 비해 많은 편이다. 김민선(성균관대 사과계열, 19) 씨는 “일부러 교양을 듣거나 복수전공을 하지 않는 이상 갈 일이 없는 캠퍼스를 방문하게 된다”며 “두 캠퍼스 간 교류가 늘어나 폭넓은 인간관계와 식견을 가질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대학 내에서도 캠퍼스 간 교류 행사가 일회성으로 열린 적은 있다. 우리 대학 의과대학(양산캠)은 지난해 8월 의예과 1~2학년 학생 120여 명이 부산캠 등을 포함한 캠퍼스 투어를 진행했는데 캠퍼스 간 교류 부족이 계기였다. 당시 의과대학 장철훈 학장은 “우리 학생들이 부산대 학생이라는 소속감을 갖거나 정체성을 확립할 기회가 없는 것이 늘 안타까웠다”고 했다(<채널PNU> 2023년 9월 8일 보도). 행사가 끝난 뒤 의과대 학생회 측은 다음에도 행사가 이어지길 기대하며 호평했지만 별 다른 교류 행사가 추진되진 않았다.
밀양캠의 한 교수는 <채널PNU>와의 인터뷰에서 “연구자와 학생들이 와야 랩(연구실)을 꾸리고 특성화를 할 수 있는데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오히려 빠져 나간다”라며 “대학 본부에 공청회를 비롯해 여러 요청을 했지만 묵묵부답”이라고 했다. 또 “도서관 리모델링을 비롯해 시설을 개선해 준 건 고맙지만, 이 정도 해주면 되는 거 아니냐며 밀양캠에 관심을 깊이 가지지 않는 것 같다”며 “이전 총장 역시 밀양캠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 이제는 몇몇 시설에 대한 투자가 아닌 밀양캠 발전을 위한 종합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채널PNU 특별취재팀: 임하은, 전형서, 정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