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벽] 정답은 우리에게 있다

2024-08-30     임하은 특별기자

지난해 11월, 6년 만에 열린 경선이라는 총학생회 선거 소식은 그야말로 가슴을 부풀게 했다. 두 후보간 선거 운동과 정책 토론이 치열하게 오가며 건강한 학생 사회가 부활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는 예상과 전혀 다르게 전개됐다. 온갖 네거티브 공방이 선거의 본질을 흐렸고, 정책보다는 ‘미필’, ‘군필’, ‘밀캠(밀양캠퍼스)’ 등 후보자 자격과는 동떨어진 키워드들이 학생들의 입을 오르내렸다. 특히 오프라인 공론장이 부재한 현재, 학생 여론의 중심 커뮤니티로 자리매김한 ‘에브리타임’에서는 그 정도가 더욱 심각했다.

선거와 관련한 여러 혐오 표현들이 에브리타임에 난무한 가운데, 필자가 가장 심각성을 느낀 것은 밀양캠을 향한 차별이었다. 이는 단순한 비속어 문제를 넘어 선거 결과에도 영향을 미쳤다. 부후보가 밀양캠 소속이었던 1번 선본은 자격 의심을 받다가 최종 낙선했다. 익명 커뮤니티의 소수 여론으로 치부됐던 밀양캠 차별이 부산대 학생 공동체 전체가 공유하는 인식으로 수면 위에 떠오른 것이다.

이번 취재는 오프라인으로 번진 밀양캠 차별을 방치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밀양캠 후보의 낙선에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밀양캠에 대한 비난을 여전히 ‘인터넷 드립’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에브리타임에서 시작돼 학생들 내면에 자리 잡은 명백한 차별 의식이다. 소수의 인터넷 여론이나 장난이라고 호도하는 것은 피해자를 무시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취재 과정이 녹록지만은 않았다. 학내 차별을 공론화하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조심스러운 반응이 많았다. 기사화를 원치 않는 경우가 많아 기사에 미처 담지 못한 내용도 있다. 기자와 인터뷰한 밀양캠 학생은 피해 사례를 말하면서, 익명을 지켜 줄 것을 거듭 강조했다. 학교 관계자와 교수진 역시 차별을 언급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반응이 많았다. 한 고위 관계자는 인터뷰를 수락했지만 녹취는 허용하지 않기도 했다.

어떻게 해야 밀양캠을 향한 ‘우리 안의 벽’을 잘 풀어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보고 들은 이야기에 비해 기사에 쓸 수 있는 부분이 적어 우려도 컸다. 그러나 학내 구성원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들으면서, 캠퍼스 간 차별이 이대로 방치돼선 안 된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이미 일부 밀양캠 학생은 부산캠 학생을 방관자로 인지하며 상처를 호소하고 있다. “특정 소수만 비난을 한다는 것에 숨어 대다수의 부산캠퍼스 인원들이 차별과 폭언을 일삼는 것 같아요”, “욕을 하지 않는 장전캠 학우들 또한 방관자와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제지를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니까요”. 소수의 인터넷 여론이니 무시해도 된다는 마음으로, 나 역시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마음 깊이 고착화된 차별적 인식이 기사 하나로 해결될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학교에서 의식적으로 캠퍼스 간 교류를 늘리고, 제도적인 처우를 개선하더라도 삽시간에 변화가 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 스스로 문제의식을 갖고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당장 내 앞에 같은 부산대 학우가 넘어져 발길질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동문’, 어쩌면 인간 대 인간으로 손 내밀어 일으켜 줄 수 있는 상황에 ‘캠퍼스’를 운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터넷에서만 그러니까’, ‘소수가 욕하는 거니까’라는 변명으로 상처받는 학우들을 무시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봤으면 한다.

이제는 직면해야 할 때다. ‘부마민주항쟁’의 발상지이자 ‘총장직선제’를 지켜낸 자랑스러운 부산대다. 캠퍼스가 다르다는 이유로 조롱을 내쏟고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정녕 민주주의의 대학이라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정답은 우리에게 있다.

임하은 채널PNU 특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