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학생이 부르는 청춘, 해운대를 물들이다

-새롭게 부활한 '대학 가요제' 가보니 -명곡 떼창하며 '세대 통합의 장' 방불 -참가자들, 현 시대의 사랑·자유 불러 -"창작 음악 문화 확산에 기여할 것"

2024-08-29     정윤서 기자

한 여름 밤, 부산 해운대 백사장이 대학의 청춘이 담긴 노랫소리로 물들었다. 잇따른 폭염에 피서를 즐기는 가족과 바닷가를 산책하던 연인, 바다를 찾아 멀리서 온 관광객 모두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청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오래 전 추억 속으로 사라진 대학가요제가 세대를 아우르며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지난 8월 10일 <채널PNU>는 새롭게 부활한 ‘대학 가요제’를 찾았다. 대학가요제는 1977년부터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개최된 가요제로 2012년경 MBC에서 마지막으로 열린 뒤 △MBC플러스 △부산MBC △각 대학에서 대학 가요제의 이름을 빌려 무대를 열어왔다. 36년의 시간 동안 대학가요제에선 △산울림 △심수봉 △노사연 △배철수 △신해철 등 시대를 풍미하는 수많은 스타가 탄생한 바 있다.

지난 8월 10일 해운대해수욕장 특설무대에서 진행된 '해운대 대학가요제'. [정윤서 기자]
해운대 대학 가요제 참가자 밴드 '뮤(MEOW)'가 폭염 아래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다. [정윤서 기자]

이날 해운대 해수욕장 한편(웨스틴조선호텔 앞)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열린 ‘해운대 대학가요제’는 지난 5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린 ‘한강 대학가요제’와 함께 ‘대학가요제 조직위원회’가 주최했다. 대학가요제 조직위 측은 2012년과 2002년 명맥이 끊긴 ‘MBC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를 이어가기 위해 올해 처음 행사를 열었다고 밝혔다.

무대에는 지난 7월 15일 전국 대학생 및 대학원생 참가자를 대상으로 최종 예선을 마친 뒤 본선에 진출한 13팀이 올랐다. 참가팀은 모두 자신들이 직접 작곡한 음악으로 무대를 채웠다. 행사는 △한강 대학가요제 수상자 공연 △참가자 사전공연 △본 경연 △래퍼 키썸의 축하공연 순으로 진행됐다.

폭염주의보가 발효되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데도 참가자들의 열정은 불탔다. 오후 2시경 취재진이 본격적인 행사 시작에 앞서 리허설 현장을 방문했다. 세션은 하나하나 꼼꼼히 음향을 체크하고 보컬은 미리 준비한 무대 멘트를 연습하고 있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온 밴드 ‘뮤(MEOW)’의 보컬 서경대 이수연(실용음악학) 씨는 “이렇게 핫한 장소에서 경연한다는 것 때문에 잘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무대가 시작되기 전 긴장감과 함께 참가자들은 이번 행사를 통해 자신들이 직접 만든 음악을 선보인다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 씨는 “우리의 멜로디가 메아리치고 파도처럼 퍼져 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뮤’라는 팀명을 정했다며 “(팀명처럼) 대학가요제를 통해 청중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려 한다”고 말했다. 퓨전 알앤비(R&B) 밴드 ‘민선’의 리더인 동아대 박찬혁(음악학, 19) 씨는 “사람들에게 저희의 음악을 처음으로 들려주는 자리여서 기대가 되기도 하고 공감을 잘 샀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해운대 대학가요제. [정윤서 기자]
경연 세 번째 순서인 밴드 '플로시브'는 자작곡 '흐릿한 밤'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정윤서 기자]
마지막 순서인 밴드 '구구'가 활기찬 무대 매너로 관객들을 일으켜 세웠다. [정윤서 기자]

가요제가 시작되자 공연장은 세대를 넘어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통합의 장과 같았다. 사전 공연에서 참가자들은 함께 무대에 올라 각각 1985년과 1988년에 ‘MBC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았던 높은음자리의 ‘바다에 누워’와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를 불렀다. 시대를 관통하는 유행가가 연이어 나오자 관객석 여기저기서 노래를 따라 ‘떼창’이 터져 나왔다. 박민정(46, 서울 강남구) 씨는 “옛날에 듣던 노래가 나오니까 따라 부르고 싶고 너무 좋다”고 말했다. 준비된 1,500개의 좌석이 가득 차자 무대와 객석을 두른 펜스 바깥까지 관객들이 하나둘 모여들더니 무대 바로 옆 백사장과 백사장으로 내려오는 계단도 만석이 됐다.

대학 가요제의 낭만을 기억하는 세대는 다시 돌아온 대학가요제를 보며 지난 청춘을 회상했다. 김주연(40, 경남 김해시) 씨는 “어릴 적 즐겨봤던 대학가요제가 부활한다는 소식에 궁금해서 행사에 방문했다”며 “좋아하는 가수가 강변 가요제 출신인데 그때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이들과 함께 대학 가요제를 새롭게 접하는 세대도 무대를 한껏 즐기는 모습이었다. 대전대 조세희(아동교육상담학) 씨는 “역시 믿고 보는 대학가요제”라며 “그 위상을 실감했다”고 얘기했다.

무대에 올라선 참가자들이 선보인 노래에는 저마다의 청춘이 담겨 있었다. 요즘 대학생들의 △사랑 △대인관계 △진로에 대한 고민부터 △희망 △자유에 대한 가치가 녹아 있었다. ‘피세리카(P.serica)’ 팀은 자작곡 ‘How we love’에 대해 “서툰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냈다”며 “사랑뿐만 아니라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 때 느끼는 불안감과 그 불안감을 넘어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희망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연 마지막을 장식한 밴드 ‘구구(GuGu)’는 등장부터 활기찬 무대 매너를 선보이며 관객들을 일으켜 세웠다. 구구의 힘찬 에너지를 연상시키는 초록빛 조명이 무대와 객석을 물들였다. 구구의 자작곡 ‘가장 완벽한 느낌표’에는 인생에 대한 그들의 가치관이 담겨 있었다. 구구는 “요즘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확신이 아닌 물음표를 많이 던지는 것 같아, 한 번 뿐인 인생에 물음표가 아닌 확신의 느낌표를 가지고 살아가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대학가요제 금상을 수상한 밴드 '피세리카'가 상과 꽃다발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윤서 기자]

이날 본선에 진출한 13개 팀 중 대상은 자작곡 ‘지나간 그 짧은 시간 속에도’를 준비한 ‘양치기소년단’에게 주어졌다. 대상 수상 팀에겐 장학금 1,000만 원이 수여됐다. 이외에도 △금상 피세리카(P.Serica) △은상 우수현밴드 △동상 코모(CoMo) △동상 구구(GuGu)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양치기소년단은 “대상을 처음 받아보았는데 저희를 좋아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린다”는 수상 소감과 함께 마지막 앙코르 무대를 선사했다.

이번 행사는 1970·80년대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의 명맥을 이어 △명랑한 대학 문화 조성 △창작 음악 문화 확산을 목적으로 열렸다. 대학가요제 조직위원회 윤다혜 씨는 <채널PNU>와의 전화 통화에서 “대학생들이 직접 만든 순수 창작곡으로 대회에 오름으로써 명랑한 대학 문화 조성에 힘을 보태고자 한다”고 행사 취지를 밝히며 “(부산 해운대가) 문화 도시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해운대에서 이번 행사를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윤 씨는 최근 가요계의 신인 발굴이 상업성 위주의 오디션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을 지적하며 “상업성을 탈피하고 창작 음악 문화 확산에 기여하고자 행사를 진행하게 됐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