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힙'에 눈 뜬 20대, 북페어 인산인해
-20대 놀이 문화로 스며든 독서 -부산서 열린 북페어 관심 높아 -“편하게 책 접하는 문화 필요”
청년들의 독서 문화가 변화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청년들은 SNS에 독서 인증 게시물을 올리거나 북토크를 방문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독서를 즐긴다. 정보 습득의 도구로 상징됐던 것과 달리 ‘독서’는 이제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청년들의 독서 문화 변화에는 ‘텍스트 힙’이 한몫했다. 텍스트 힙은 글을 뜻하는 ‘텍스트’와 개성 있다는 의미의 ‘힙’이 합쳐진 합성어로 ‘책을 비롯한 텍스트로 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멋지다’는 젊은 층의 인식을 반영한다. 영상 콘텐츠와 숏폼이 남발하는 시대에 소수만 즐기는 텍스트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눈에 띄는 요소가 된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올해 발표한 ‘2023 국민독서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약 6명이 1년에 책 1권도 읽지 않는 현실 속에서, ‘텍스트 힙’을 통해 줄어드는 독서율을 극복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나온다.
■변화하는 2030 독서 문화
텍스트 힙 유행에 청년들 사이에서는 △북 팝업스토어 △도서전 △북토크 등을 방문하거나, 책을 읽고 감상문을 SNS에 올리는 문화가 활기를 띄고 있다. 실제로 2030 세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소셜미디어인 인스타그램에 ‘북스타그램’을 검색하면 8월 28일 기준 604만 개의 게시물이 검색될 정도다. 이러한 새 문화를 취미생활로 즐기고 있다는 노수정(27세, 부산 부산진구) 씨는 “최근 책을 읽고 블로그에 독후감을 쓰는 친구들이 점점 많이 보인다”고 전했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책을 고르는 방식도 변화했다. ‘2023 국민독서실태조사 보고서’의 도서 관련 정보 수집 경로 통계에 따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SNS △주변 사람 △유튜브 △책 방송 △신문 △베스트셀러 홍보 등을 통해 책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연령대가 낮을수록 ‘SNS와 인터넷’, ‘유튜브’ 등을 통해 정보를 얻는 비율이 두드러졌다. 20대 이하에서는 43.1%, 30대 중에서는 40.8%다. 실제로 유명 아이돌 '뉴진스'의 멤버가 뮤직비디오에서 고전 소설 ‘순수의 시대'를 읽는 장면이 공개되자 해당 소설판매량이 8배 급증하기도 했다.
이러한 새 문화가 청년세대의 보여주기식 독서라는 지적도 일지만, 출판업계는 책에 대한 관심을 반기며 마케팅 전략을 바꾸고 있다. 출판사 문학동네는 지난해 9월 9일부터 9월 17일까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출판을 기념해 성수동에 ‘무라카미 하루키 스테이션’이라는 팝업을 열었다. 또 다른 출판사 ‘퍼블리온’의 박선영 대표는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독자들은 (책이) 다른 콘텐츠보다 재밌어 보여야 책을 본다”며 “대형 출판사들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거나 SNS를 적극적으로 하는 등 마케팅 전략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독립 출판사 발코니의 안희석 대표는 “우리나라는 독서라는 걸 너무 무겁게 생각한다”며 “책을 조금 편하게 읽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독서 축제 ‘북페어’, 부산서도 열려
텍스트 힙을 중심으로 한 문화에 힘입어, 전국적으로 ‘북페어’가 많은 이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북페어는 다양한 출판사들을 초청해 도서 관련 행사를 진행하고 독립서적들을 발굴하는 박람회인데, 최근 트렌디한 감각적 요소와 결합해 많은 청년세대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지난 6월 서울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는 15만 명이 방문했으며 약 70%가 2030대였던 것으로 집계됐다.
북페어의 인기는 부산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 23일부터 8월 25일까지 부산 벡스코(BEXCO)에서 제1회 ‘북앤콘텐츠페어’가 열렸다. 북페어를 주최한 ㈜마루컨벤션 안명선 대표에 따르면 부산에서 전문 전시장을 활용하는 대규모의 도서전이 열린 건 이례적이라, 독서에 관심을 가지는 부산 청년들의 기대를 더욱 끌어모았다. 이번 부산 북페어를 찾은 노수정 씨는 “부산에서 최초로 북페어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양질의 도서들을 만나면서 책 추천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방문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부산 북페어 현장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읽고 즐길 거리가 다양하게 마련됐다. △독립 출판사 △오컬트 전문 출판사 △프랑스 번역서 전문 출판사 등 다양한 분야의 출판사들이 전시를 진행했다. ‘웹툰 작가가 되는 방법과 웹툰 이야기’ 등 여러 주제로 만화가·동요 작사가 등 11인의 강연 프로그램과 150개의 체험 및 전시 부스도 마련됐다. 전시장 한편에는 좋아하는 글과 책을 공유할 수 있도록 포스트잇을 붙이는 벽도 마련됐다. 노지원(21세, 부산 금정구) 씨는 “생각보다 독립 출판사가 많이 와서 대형 서점에서 보지 못했던 책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며 “체험할 수 있는 존도 많아서 책을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재밌었다”고 말했다.
독립 출판사 발코니의 안희석 대표는 “서울국제도서전에도 참여했었는데, 두 전시 모두 20대 30대의 방문 비율이 눈에 띄게 높아 인상적이었다”고 감상을 밝혔다. 행사를 기획한 안명선 대표 역시 “(부산 북페어에도) 생각보다 많은 관람객이 방문해 주시고 다음 북페어를 기다리겠다는 후기가 많아 북페어라는 행사를 준비한 목적이 많은 사람들에게 와닿은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