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학습자] 미리내 대학, 회색지대를 밝히다

-우리 대학, 지난 3월 전국 최초로 -경계선 지적 기능인 교육시설 운영 -자립 목표로 문화예술 등 수업 다양 -실습·취업 등 지원 범위 확대 예정

2024-11-08     오정린·임승하 기자

지능 검사상 IQ 71~84 사이는 비장애인과 지적장애 사이의 ‘경계선 지능’에 해당한다. 경계선 지능에 있는 사람은 제한된 인지능력과 신체적 어려움으로 인해 대인 관계나 일상생활에서 문제를 겪는다. ‘느린 학습자’는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계선 지능인’의 다른 표현이다. 단지 배움이 비장애인보다 느릴 뿐 사회적으로 지원하고 노력하면 사회생활이 개선될 수 있음을 뜻한다. 하지만 법률상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 회색지대에 선 느린 학습자를 위한 교육 시설이 우리 대학에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이 않다. 우리 대학의 ‘미리내 대학’은 19~30세 사이의 성인 느린학습자를 위한 평생교육 3년제 비학위 과정 대학으로 지난 3월 전국 최초로 문을 열었다. 2022년 10월 우리 대학 통합예술치료학과 대학원생들의 연구가 밑거름이 된 미리내 대학은 현재 기획연구과제 예산과 국립대육성사업비 보조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

<채널PNU>는 2학기 강의가 열린 미리내 대학을 지난 9월과 10월에 찾았다. 미리내 대학은 현재 우리 대학 박은화(무용학) 교수가 책임교수를 맡고 10명의 강사진이 수업한다. 5명의 학생들이 주 3회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열 과목을 배우고 있다.

미리내 대학 책임교수인 우리 대학 박은화(무용학) 교수. [윤지원 보도부장]
지난 9월 13일 열린 '음악으로 만나는 소마' 수업에서 사용한 악기가 놓여 있다. [윤지원 보도부장]

과목은 주로 실습 위주가 많았다. △신체를 활용하는 소매틱 교육 △문화 예술 교육 △스트레스 관리 및 진로 선택을 위해 다양한 분야를 체험하는 특화 교육 △기본 소양 습득을 위한 교양교육 등이 대표적이다. 박은화 교수는 “학생 개개인이 갖고 있는 특성과 긍정적 자원을 발견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특히 실습 위주의 특화 교육을 제공해 스스로 자신의 꿈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며 “안전하고 창조적 표현활동으로 일상생활, 사회생활 및 경제생활에 있어 삶의 질을 제고하는 데 목적이 크다”고 설명했다.

심리 치료 수업인 ‘푸드표현 마음 요리’에 참여한 학생들은 색지 위로 소금을 뿌려 눈사람을 만드는 등 작품에 열중한 모습을 보였다. 초코파이를 잘게 부숴 모양을 만들고, 이를 이쑤시개로 연결하며 각자만의 소중한 것을 표현했다. 학생 A 씨는 “(소중한) 학교 친구들을 표현했다"며 ”모든 친구가 하나되길 바라는 희망을 담았다”고 말했다. B 씨 “제목은 ‘행복한 눈사람’”이라며 “나도 눈사람처럼 행복한 마음을 갖고 싶다”고 전했다.

수업을 담당한 미래시민교육원 미리내대학 이정민 강사는 “식재료를 직접 손으로 만짐으로써 학생들은 사회로부터 받은 심리를 치료하고 자존감 회복을 목적으로 한다”며 “수업을 통해 마음을 꺼내본 학생은 자신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되겠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음악 치료 수업인 ‘음악으로 만나는 소마’에서도 학생들의 열정은 이어졌다. 핸드벨, 실로폰 등의 악기를 손에 쥔 학생들은 ‘반짝반짝 작은 별’, ‘미뉴에트’ 등 강사의 지휘에 맞춰 연주했다. 독주를 마친 학생에게는 손뼉을 치며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수업을 담당한 김석주 강사는 “틀려도 괜찮다는 것도 허용을 받아봐야 하고, 완벽하지 않아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미리내 대학은 교육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위한 취업도 지원할 예정이다. 공예와 푸드 표현 등 과목을 이수한 후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게 하고 외부 기관과 현장실습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티소믈리에와 바리스타 실습교육, 협동조합 ‘매일매일즐거워 스마트팜’과의 현장실습 등이 협의 중에 있다. 박 교수는 “한 학기 수업만으로도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며 “학년별 학생 수준과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교과 내용을 변경해 효율적으로 (교육이) 이뤄지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리내 대학은 현재 대학자원을 활용해 전문적인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해 사회 취약계층에 공평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박 교수는 “우리 대학이 거점국립대학인만큼 사회적 취약 계층에 대한 책무성을 강화하고 있다”며 “느린 학습자가 가족과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삶의 질을 높여 자립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리내대학은 오는 11월 11일부터 15일까지 2025학년도 입학원서를 접수 받는다. 올해와 동일하게 △공통교양 △문화예술 △소매틱 △특화 4개 분야의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기초생활 관리 △대인관계기술 △직업 소양 교육(컴퓨터기초활용·교양영어Ⅰ) 등 10개 수업을 진행한다. 연 1회 학생 발표회가 열리며 수료 후 총장명의의 수료증이 발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