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학습자] "성장 가능성 고려된 정책 마련돼야"

-경계선 지능인 지속 지원 위한 -시설은 부산 지역 내 단 2곳뿐 -취업 연계 및 기업 지원책 필요

2024-11-08     임승하·오정린 기자

경계선 지능인 혹은 느린 학습자로 불리는 이들은 낮은 인지 기능으로 인해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지만 장애는 아니라는 이유로 공적 지원 대상에 소외되고 있다. 지난 7월 교육부가 발표한 ‘경계선 지능인 지원 방안’에 따라 올해 하반기 실태조사가 예정된 가운데 이들을 위한 일자리 대책이 함께 강구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지난 11월 4일 기준 부산시 경계선 지능인 지원현황. (c)박건희 기자

8일 <채널PNU> 취재를 종합하면 부산 지역 내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공적 지원은 조례 제정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시는 경계선 지능인을 진단부터 취업까지 맞춤 지원하기 위해 ‘부산광역시 경계선 지능인 지원에 관한 조례’를 지난해 4월 5일 제정했다. 그로부터 1년 반이 흘렀지만 아직은 경계선 지능인과 취업을 연계해 주는 시스템이나 고용 기업을 위한 지원도, 이들을 위한 지원센터도 마련돼 있지 않다.

부산 지역 내에서 경계선 지능인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된 곳은 우리 대학 미래시민교육원의 미리내 대학과 수영구청이 운영하는 차근차근 스테이션 2곳이다. 이밖에는 대부분 일시적이거나 단편적인 정책 단계에 그친다. 미리내 대학은 지난 3월부터 3년간 비학위 교육과정을, 차근차근 스테이션은 지난 9월부터 3개월간 △문화예술교육 △직무체험교육 등을 제공하고 있다.

두 기관은 제도적 한계로 인해 경계선 지능인의 취업을 지원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장애인 고용 기업에 대한 지원책과 달리 경계선 지능인 고용 기업에 대한 지원 정책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수영구 복지정책과는 “차근차근 스테이션의 최종 목표는 취업 연계이지만 아직은 취업처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경계선 지능인을 고용해도 지원이 나오지 않아 선뜻 나서서 고용하겠다는 곳이 현재로선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충분한 교육은 물론 이들이 사회에서 일자리를 가지고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9월 27일 국회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경계선지능 청년 지원을 위한 제61차 EDI 정책토론회’에서는 경계선 지능인의 취업에 관한 어려움이 논의됐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의 변민수 선임연구원은 “경계선 지능인이 일반적인 직업훈련 후 직업 소개를 받아 취업해도 단기간 내에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 사회가 체계적으로 경계선 지능인을 배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경계선 지능인 고용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기업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경계선 지능인 10명과 함께 스마트팜 회사 ‘매일매일즐거워’를 운영하는 황태연 대표는 <채널PNU>와의 통화에서 “경계선 지능이 있는 분들은 업무 습득 시간이 남들 보다 많이 늦지만, 성실한 분들은 오랜 시간 경험을 쌓으면 또 다른 인재가 된다”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경계선 지능인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사회적 비용이 드는 것보다 이들을 고용한 기업을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 전체 사회 비용을 줄이는 방향일 것”이라고 말했다.

경계선 지능인 지원 정책은 이들의 ‘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특수교사이자 경계선 지능인의 부모로서 유튜브 채널 ‘경계를 걷다’를 운영하고 있는 이보람 씨는 지난 8월 28일 국회에서 개최된 ‘경계선지능인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토론회’에서 “경계선 지능인에게 인생은 선택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지만 주어진 인생에 대한 반응은 선택할 수 있다”며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법안의 패러다임을 지원과 보호의 관점이 아닌 이들의 성장 가능성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패러다임 시프트(인식의 전환)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일관된 매뉴얼을 제공할 중앙기관 명시 △장애인고용촉진법과 경계선 지능인 고용 정책 연계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 제정을 제안했다.

토론회를 개최한 국민의힘 김희정(연제구) 국회의원은 취재진에 “신체적 특징이나 사회적 배경 때문에 사람 간 경계가 지어져선 함께 사는 사회가 될 수 없다”며 “그동안의 법안 내용을 보완해 가급적 많은 의원의 서명을 받고자 한다”고 말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경계선 지능인들에 대한 교육이나 권리 보장 등에 관한 법률이 여러 건 발의되었으나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