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신호' 켜진 부산 감정노동자 보호
-감정노동자보호법 시행 6년차 -부산 판매직 노동자 84% '위험' -열악한 근무 환경도 문제 원인 -"감독 없는 제도 개선 무의미"
부산지역 판매직에 종사하는 감정노동자의 10명 중 8명이 감정노동 보호체계의 ‘위험’ 수준에 해당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감정노동은 개인이 자신의 기분을 다스려 조직에서 요구되는 표정이나 신체 표현을 드러내야 하는 것을 말하는데, 부산의 많은 판매직 노동자가 이로 인해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고 있단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10월 18일 부산노동권익센터(센터)가 주관한 ‘부산지역 판매직 노동자 감정노동 실태와 정책과제 토론회’에서 드러났다. 부산광역시의회 중회의실에서 열린 이번 토론회는 감정노동자보호법(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 시행 6주년을 맞아 부산에서의 감정노동 실태를 파악하고 개선 방안을 찾기 위해 마련됐다. 우리 대학 김영(사회학) 책임연구원과 부산노동권익센터 전필녀 연구위원 등이 발표를 맡고 정책연구소 이음 한인임 이사장 등이 참여했다.
토론회에선 부산의 감정노동자들이 보호받고 있지 못한 상태라는 사실이 지적됐다. 센터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고객 응대 근로자의 감정노동 평가 지침(2021.12)’에 따라 부산지역 16개 구군의 판매직 노동자 1,02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4.1%가 감정노동 보호체계의 위험 수준에 해당했다.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언어폭력(60.4%) △직위·성별·나이에 따른 차별(50.9%) △위협·괴롭힘(32.4%) △신체적 폭력(8.6%) △성적 접촉·성희롱(18.9%) 등을 겪고 있었다.
감정노동자들이 피해를 호소하는 주요 배경으로는 ‘고객의 과도하고 부당한 언행 및 요구’와 ‘불만고객 응대 시 서비스 중지 등에 대한 자의적 결정 불가’ 등이 꼽혔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참여자의 절반 이상이 ‘고객응대가 힘들어 업무시간이 끝날 때쯤이면 아무 생각을 할 수 없다’, ‘이직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센터 측은 “불만 고객 응대 시 서비스 중지 결정 권한이 노동자에게 주어져야 실질적 대응과 감정노동자 보호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근무 환경이 열악한 점도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원인으로 제시됐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평균적인 노동 시간이 확대되고 강도도 높아진 점이 문제의 온상으로 꼽혔다. 센터에 따르면 팬데믹 대비 판매직 노동자 인원이 43.9% 감소한 데 이어 엔데믹 후 노동자들에게 온라인 판매 업무까지 가중됐기 때문이다. 설문 결과를 보면 근무 환경마저 △의자 △휴게실 △화장실 사용 불가 등의 문제 발생이 빈번한 상태로 나타났다.
토론회에선 이와 같은 환경으로 인해 감정노동자들의 신체적·정신적 피해가 크다는 점이 지적됐다. 설문 결과 100명 중 3명이 자살 충동을 경험(3.5%)하고 있다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외 10명 중 6명이 화병(61.0%)을, 10명 중 5명은 우울증(50.2%)과 하지정맥류(50.1%)를 겪고 있었다. 공황장애(21%)와 방광염(20.9%)을 앓고 있단 답변도 이어졌다.
센터 측은 노동자들의 고충이 극심해진 가운데 감정노동수당 지급과 상담 및 치료비 지원 등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감정노동자의 22.6%만이 감정노동수당을 받고 있었고, 신체적 질병(17.1%)과 정신적 질환(13.1%)에 대한 진료비 지원도 미미한 상태란 것이다. 부산노동권익센터 전필녀 연구위원은 “감정 노동 역시 노동임을 인정하고 감정 노동 수당, 감정 노동 휴가 등 적정한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며 “감정노동에 대한 인정이 감정노동수당으로 이어지지 않고, 인정도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을 수당 상황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감정노동자들 역시 자신들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의 마련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응답자의 80% 이상은 ‘고객 응대와 관련해 근무지(원청) 차원의 노동자 보호가 제도화돼야 한다고 답했다. 전 연구위원은 “감정노동자에 대한 조직 차원의 관리방안이나 조치, 직장 내 지지체계는 여전히 모자라다”며 “실질적으로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감정보호체계와 직장내 지지체계 형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대학 김영(사회학) 교수는 “감정노동 그 자체를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감정노동은 의식적으로 하는 노동인 만큼 과도한 요구를 자제하고 더 많은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속적인 제도 관리를 통해 감정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정책연구소 이음 한인임 이사장은 “중앙정부 관련 부처의 보호체계 구축도 시급하지만, 부산시의 특화된 감정노동자 보호체계를 구축할 필요도 있다”며 “현행법이 생긴 지 5년이 경과하고 있지만 여전히 감정노동자 보호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에, 지속적인 감독이 없는 제도개선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