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이 아니더라도 책은 읽자

2024-11-06     임영호(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명예교수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탔다. 덕분에 썰렁하던 도서관 서가에서 한강의 책이 모두 사라지고, 책 판매량이 적어도 수백 배 이상 늘어났다. 순식간에 한국 사회에 독서 열풍이 몰아친 듯하다. 물론 이 열기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책의 소멸을 우려하는 조짐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한창 책을 읽어야 할 대학생조차 책 대신 모바일만 들여다본다는 한탄이 퍼진지도 오래 됐다.

도대체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유튜브나 넷플릭스로 세상을 공부하고, 구글과 네이버로 정보를 수집하는 이 시대에는 대학생에게 책을 들먹이면 으레 사춘기 자녀 같은 표정만 되돌아온다. 이제는 귀찮은 글쓰기도 챗GPT 같은 AI에게 떠맡길 태세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도 머스크나 주커버그 같은 재벌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소비자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 사회에서 작은 역할이나마 하는 주도적 인생을 살고 싶다면 독서는 필요하다.

고백하자면 톨킨의 소설을 영화화한 <반지의 제왕>을 아주 좋아한다. 이 영화는 영상물이지만 고전 소설 여러 편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감동적인 대작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이 영화는 최고의 영상기법의 집약체이지만, 고전과 인문학 전통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영화 대사 곳곳에서는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고전문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플랫폼과 AI의 시대에 독서가 필요한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첨단 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시대에도 창의성과 상상력은 필요하고, 이는 독서를 통해서만 기를 수 있다.

독서가 인문학적 상상력을 기르는 데 유용하다고 해서, 문과생에게만 적용되는 사항이라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나는 전자기기를 구입할 때마다 매뉴얼을 들여다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곤 한다. 전문용어투성이의 설명을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매뉴얼이 필요 없을 것이고, 설명이 절실한 사람은 어차피 이해하지 못할 거다. 공학자도 결과물을 시장에 내놓을 때에는 전문가가 아니라 나와 같은 소비자를 상대해야 한다. 이들도 대중의 감성을 이해하고 대중의 언어로 쉽게 자신의 구상을 설득하는 소통 능력이 필요하다. 더구나 대학에는 전공이 있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졸업 후 전공과 무관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독서에는 정도가 없다. 교양필독서 100선 추천식의 전략은 학생들을 오히려 책에서 멀어지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독서도 단계적 훈련과 적응이 필요하다. 추리소설에서 재미를 찾든, 대중교양서에서 마음의 위안을 찾든, 전문서에서 지식을 구하든 사람마다 독서의 의미는 다를 수 있다. 즐거움과 지적 호기심을 자극할 수만 있다면 모두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희망적인 소식도 있다. 최근 온라인 서점의 집계에 의하면 지난 5년간 10대와 20대의 독서율이 증가했지만 50대 이상의 독서율은 더 떨어졌다. 책읽기가 평생 지속되는 습관이라면 이 상반된 추세는 나름대로 고무적이라 봐야 할 듯하다. 책 안 읽는 사람들은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농사일도 아닌데 독서에 무슨 계절이 있나? 그냥 계절은 무시하고 노벨상 수상 소식이 없더라도 틈나는 대로 책을 읽자. 알고 보면 책 읽기도 나름대로 재미있다.

                                                   임영호(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