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부대콘텐츠상] 최우수상 산문 '구인구직'

2024-10-31     채널PNU

2024 부대콘텐츠상 '최우수상(총장상)'

-작품명: 구인구직

-출품자: 이효진(문헌정보학, 22)

"나는 싫어. 너 노인네들 성격 몰라? 노인네들 비위 맞춰주다 우리 할 일도 밀린다?"

서희 쌤의 주장은 합리적이었다. 노인복지센터에서 매일 같이 노인을 상대하는 우리에게 일흔 살 할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것은 정말로 사양하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상황일 때의 이야기이지 지금의 우리는 이것저것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저도 알죠. 그런데 우리 센터에 지금까지 지원자 한 명이라도 있었어요? 없었잖아요!”

머릿속에서 지난 1년간 사람이 없어서 생겼던 수많은 사건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인터넷에 공고를 올린 지 1년이 지나도록 지원서는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행정복지센터에 현수막을 걸고 동네 곳곳에 포스터를 붙여도 마찬가지였다. 시내로 나가는 데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촌 동네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희 지난 1년 동안 너무 힘들었잖아요. 매일같이 야근하지, 지원자는 없지. 어차피 젊은 애들은 안 와요. 우리 센터 노인네들 상대하는 거 고역이라고 소문 다 났단 말이에요.”

나는 메마른 눈가를 닦는 척하며 서희 쌤을 설득하기 위해 세치 혀를 아롱거렸다.

“이이제이 알죠? 노인네는 노인네로 잡는다. 어쩌면 할아버지가 진상들 다 잡아주실지도 모르잖아요.” 진상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말에 서희 쌤의 몸이 움찔거렸다. 사실 단시간 계약직에게 민원인 응대를 맡기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서희 쌤도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신경 안 쓸 테니까, 네가 알아서 연락드리고 면접 일정 잡아 봐.”

하지만 민원인이 줄어들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아넘길 서희 쌤은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서희 쌤의 허락이 떨어지는 동시에 전화기를 들었다.

“오늘 3시에 바로 면접 보러 오시겠대요!”

서희 쌤은 뭔가 영 못마땅한지 불만 가득한 얼굴로 한숨을 푹푹 쉬었다.

“할아버지도 참 대단하시네. 그 나이에 일을 하려고 하시다니. 사정이 많이 어려우신가?"

“에이 설마요. 요즘 지원이 얼마나 잘 나오는데. 적적해서 그러시는 거겠죠.”

“그런 게 이유라면 일 중독이야 일 중독. 그것도 병이라고. 인간은 놀이하는 동물이라는말도 있잖아. 본능이 놀고 싶게 설계되어 있는 거야. 나는 퇴직하면 아무것도 안 할래. 집안 사정 어려워지면 그냥 없는 대로 살 거야.”

동감이었다. 나로서도 퇴직 후에 일을 한다는 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도 상상하기 어려운 건 매한가지였다. 우리 센터에 방문하는 수많은 노인을 떠올려보았다. 대게 나이 들어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 몇은 우리에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괴팍하게 소리를 지르곤 했다. 혹시 나도 그렇게 늙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소름 돋는 상상을 하던 와중, 창문 너머로 자동문 앞을 서성이는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자동문 버튼을 못 찾는 할아버지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나는 밖으로 새어 나오려는 한숨을 안으로 꾹 눌러 담고 버튼을 대신 눌러주었다.

“아이고, 버튼을 그기 숨카놨네.”

할아버지는 민망했는지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할아버지의 말씨에서는 경상도 사투리가 짙게 묻어났다. 나도 할아버지를 따라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아, 저 면접 보러 왔습니더.”

“그럼,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할아버지에게서는 면접을 위해 공을 들인 티가 났다. 회백색의 단정히 다듬은 머리는 멀끔했으며, 언제쯤 유행했는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잘 다려진 두루마기는 할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옷이 틀림없어 보였다.

“간단한 질문 몇 개만 할게요.”

나는 냉장고에서 할아버지에게 드릴 비타민 음료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

“일할 때 대부분은 센터에 계시겠지만, 가끔 면사무소나 우체국에 가셔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어요. 혹시 괜찮으실까요?”

“하모예, 아직 관절 튼튼합니다. 동네 마실 나가면 두 시간은 걸어요.”

할아버지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종아리를 걷어 올렸다. 검버섯 핀 다리가 훤히 드러났다. 나는 때아닌 노출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할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릎을 과장되게 구부렸다 폈다 하며 자신의 건강을 과시해 보였다.

“보니까 선생님 댁이랑 거리가 좀 있어 보이는데, 출퇴근은 어떻게 하실 예정이세요?”

“출퇴근 걱정은 마이소. 집 앞에 버스가 자주 다닙니다.”

"선생님 근무 시간은 오후 1시에서 5시까지인 건 알고 계신가요?"

"예."

"근무 시간이 짧아서 한 달 급여가 생각보다 적으실 수도 있어요."

“그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습니더.”

뜬금없이 종아리를 걷어 올린 것만 제외하면 할아버지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었다. 5분 간격으로 내는 가래 끓는 소리만 고쳐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았다. 아마 할아버지가 간단한 잡무 몇 가지만 봐주신다면 적어도 매일 같은 야근만큼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희 쌤과 나눴던 대화가 마음 한편에서 걸리적거렸다. 처음으로 찾아온 지원자를 잃고 싶지는 않았지만, 사회복지사로서의 기본적인 도리는 해야만 했다.

“선생님. 혹시 일이 필요하신 이유가 금전적인 이유 때문이면 다른 방법으로도 도와드릴 수가 있어요.”

“에이, 돈 때문에 온 거 아입니다.”

할아버지는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지만, 얼굴에는 이미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황한 기색을 놓치지 않고 다시 한번 추궁하자 할아버지는 잠시간 뜸을 들이더니 입을 떼었다.

“슨생님, 사실 지가 말씀드리지 않은 게 있습니다."

“뭘까요?”

할아버지는 투명한 책상 유리에 붙은 조직도를 만지작대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아주 작게 속삭였다.

“사실은 지가 올해 일흔이 아니라, 아흔입니다.”

나는 커피를 마시려다 깜짝 놀라 숨을 크게 들이켠 탓에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폐에 구멍이라도 난 사람처럼 콜록대며 할아버지의 얼굴을 다시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아흔 살로는 보이지 않았다. 시골 사람치고는 정말 심각한 동안이었다. 세상에 저 얼굴이 아흔이라니. 머리가 새하얘진다는 것을 이토록 실감해 본 건 처음이었다.

“아흔이라고 했으면 어디 면접이나 봤겠습니꺼. 그래도 말 안 하니까 아흔으로는 안 보이지예?”

“네···. 정말로요. 그런데 그 연세에 일자리가 필요하실까요? 너무 힘드실 텐데요.”

할아버지는 쓴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실은 한 달 전에 친구가 죽었습니더. 마지막 남은 친구였어예. 이제 우리 동네에는 내 또래가 없습니더. 노인이라고 다 똑같은 노인이 아인기라. 칠팔십 하는 젊은것들은 오늘내 일하는 늙은이 낑가가 다니기 싫어하이 내는 혼자가 돼뿐거지. 내는 인제 갈 데가 없어요, 선생님.”

나는 그제야 할아버지에게 일자리가 필요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감정이 북받치는지, 고개를 떨구고 흐느끼며 미안하다는 말만 연신 반복했다.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더 이상 면접을 진행하긴 어려울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감정을 추스르는 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동안 나는 밀려오는 자괴감과 마주해야만 했다. 나는 할아버지가 나가는 길을 부축해 드렸다. 아흔 살이라는 얘길 들으니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할아버지가 무사히 버스를 타고 떠나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사무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멀쩡히 들어오신 할아버지가 부축을 받으며 나가는 걸 이상하게 본 서희 쌤이 다가와 물었다. “웬 부축? 넘어지기라도 하셨어?”

“아뇨. 일흔이 아니라 아흔이시래요.”

나는 서희 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서희 쌤의 눈이 동그래졌다.

“세상에, 난 일흔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어휴, 할아버지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아흔은 아무래도 좀 힘들지. 일하다가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쩔 거야.”

“근데요. 전 아흔도 괜찮은 것 같아요.”

 

▶수상소감

나는 오래된 것들을 좋아한다. 빛바랜 동화책, 구식 폴더폰, 프레임이 뚝뚝 끊기는 16비트 게임, 어릴 적 보았던 만화영화 같은 것들.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유독 마음에 와닿는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다. 그들이 들려주는 옛이야기는 마음 한구석에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깊은 여운을 남기곤 한다. 그래서 내가 쓰는 글에는 늘 정겨운 할머니,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이 소설은 노인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춘석’과의 소통을 통해 풀어나가는 내용으로 전개하였다. 작 중의 ‘나’와 ‘서희 쌤’은 신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작 중의 ‘춘석’은 기성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나’와 ’서희 쌤’은 일하고 싶어 하는 ‘춘석’의 입장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나와 다르기 때문에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춘석’과의 대화를 통해 그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임을 알게 되고 그에게 가졌던 선입견을 반성하게 된다.

나는 평소 호흡이 긴 글을 즐겨 쓰는 편이라, 원고지 15매 내외라는 적은 분량의 단편 소설을 쓰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아무리 글을 수정해도 마음에 들지 않아 밤새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친구에게 새로이 수정한 글을 보여주고 감상을 물으며 괴롭히기도 했다. 시행착오 끝에 탄생한 부족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총장상이라는 좋은 결과로 돌려받게 되어 무척 감사한 마음이다. 오늘은 친구와 함께 맛있는 저녁을 사 먹으러 가야겠다.

이효진(문헌정보학,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