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항쟁 기획] 전문가 3인이 진단한 '침묵하는 대학가'

-부산대 설선혜(심리학) 교수 “지속적인 대면 토론 이뤄져야 침묵 깰 수 있어” -전남대 박구용(철학) 교수 “사회 변화와 청년 사이 담론 형성 필요” -심리연구소 ‘함께’ 김태형 소장 “청년 이익 대변할 수 있는 조직 구성 필요”

2024-11-22     정수빈 기자

<채널PNU>는 지난 9월 대학생들은 사회 문제를 말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무력감, 목소리를 내봤자 득보다 실이 많다는 인식이 있어 사회 참여를 꺼려한다는 경향을 보도했다. ‘침묵하는 대학가’를 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위해 △부산대 설선혜(심리학) 교수 △심리연구소‘함께’ 김태형 소장 △전남대 박구용(철학) 교수를 전문가로 섭외했다.

지난 11월 4일부터 15일까지 서면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개인주의 문화 △초연결사회로의 발달 △세대 내 갈등이 침묵하는 대학가를 만든다고 분석했다. 이어 대학생들의 침묵을 깨기 위해 △토론 기회 확대 △사회 변화 및 청년 사이 담론 형성 △청년 이익 대변 집단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설선혜 교수(왼쪽부터)와 박구용 교수, 김태형 소장 전문가 3인이 청년들의 침묵에 대해 분석했다. [취재원 제공]

△오늘날 청년의 사회 참여 행태는 어떠한가.

-부산대 설선혜(심리학) 교수(이하 설 교수) : 각자 중요히 여기는 사회적 가치를 우선시한다. 또한 미디어의 발달로 사회 문제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직접 행동하지 않아도 자기 의사 표현 욕구가 충족된다. 원한다면 유튜브, SNS에서 누구라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옳은 일이라 생각해도 익명으로 말하거나 입을 닫는 경우가 많다.

-전남대 박구용(철학) 교수(이하 박 교수) : 오늘날 청년은 각자의 삶에서 잘못된 부분에 항의함으로써 사회에 참여하지만, 집단으로 표출하는 힘은 부족하다. 1990년대엔 민주주의라는 극복할 거대한 문제가 있었지만, 요즘은 청년 사이 극복이 필요하다고 공감할 만한 문제가 잘 생기지 않는다. 학업, 아르바이트 등 해야 할 과제도 많고, 청년 내부에서도 다양한 문제가 있어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심리연구소 ‘함께’ 김태형 소장(이하 김 소장) : 90년대 이후 집단 간 경쟁에서 개인 간 경쟁으로 바뀌며 개인화·파편화됐다. 과거의 청년 세대는 놀이를 통한 공동체 경험을 했고, 학창 시절에도 개인 간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다. 요즘 청년 세대는 철저히 개인 단위로 성장한 사람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아닌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청년의 개인화가 두드러진 요인은 무엇인가.

-설 교수 : 글로벌화에 따라 사회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과거 청년들은 국가·지역·대학생으로서의 정체성 등 사회적으로 부여받은 역할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다. 그래서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게 주요 과제였지만 지금은 나의 권한, 자유, 선호가 더 중요하다. 그러니 관심이 없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박 교수 : 지금의 청년 세대는 2000년대 초 신자유주의가 강타하던 시기에 태어나 어린 시절을 각자도생의 흐름 속에 보냈다. 사회 분위기상 스스로 체제에 흡수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강박이 생긴다. 그러니 △사회 △타인과의 연결 △공동의 삶에 대한 고민보다는 사회에 안착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데 집중한다.

-김 소장 : 자기 위주의 사고와 무력감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혼자 해결하며 사회에 맞서기 어렵다는 걸 학습해 무력감에 시달린다. 과거엔 같은 대학, 학과라는 이유만으로 소속감과 유대감이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군가 문제가 생겨도 남 일처럼 대하고, 공분을 느껴도 함께 움직일 사람이 주변에 없다.

△그밖에 지금의 청년이 하나로 모이기 힘든 이유가 있다면.

-설 교수 : 과거엔 종교, 정치가 옳고 그름의 기준을 알려줘 사회 전반에 공유된 가치 체계가 있었다. 각자 우선시하는 가치가 달라지며 지금의 청년은 옳고 그름, 공동체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성취, 타인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과거엔 교육이 획일적이고 소통 창구가 단편적이라 공통된 관심사가 만들어지기 쉬웠지만, 강압적 요소가 없어진 지금은 공유된 가치가 사라져 초점이 개인에게 쏠린다.

-박 교수 : 세대 내 갈등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성별에 따른 차이나 불평등이 자연스레 받아들여졌으나, 지금은 각자가 완강한 입장을 가지고 갈등한다. 세대 간 갈등도 문제다. 과거엔 윗세대가 아랫세대에 혜택을 대물림하는 순환구조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따라서 청년은 내부 갈등만으로도 견디기 어려워져 문제를 회피해 공동의 목표를 갖기 어렵다.

-김 소장 : 각자도생 시스템으로 인한 청년의 심각한 생존 불안 때문이다. 사회 문제를 언급하면 불이익을 받아 생계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심해 분노함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개인 간 경쟁이 지속되는 한국 사회의 특성도 작용해 개인 차원에서 관심이 있더라도 청년 집단에선 무관심으로 표출되는 듯하다.

지난 11월 4일부터 15일까지 서면 인터뷰한 전문가 3인이 꼽은 청년들이 사회 문제에 침묵하는 이유. (c)정혜미 기자

△지금 청년 세대는 어떻게 사회에 참여하는가.

-설 교수 : 온라인으로 사회 문제에 참여한다. 오프라인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의 불편함, 관계가 깨질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온라인은 이러한 부담감을 덜 수 있다. 다만 온라인상의 의견 공유는 현실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SNS에서의 단편적인 행위로 사회 문제에 충분히 참여했다고 착각해서다. 게다가 개인 맞춤형 SNS를 통해 사회 이슈를 접하는 경우가 많아 청년 사이 공통의 문제가 형성되기 어렵다.

△청년 세대 내부에서 갈등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박 교수 : 지금의 청년들에겐 사회 문제에 대한 공동의 학습이나 토론이 부족하다. 학교 수업과는 무관하게 청년 사이 우리의 문제, 그 문제의 기원에 대한 물음,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드물다. 그러니 사회적 행동도 산발적·임의적이다. 특히 SNS를 통해 불만을 표시할 때 두드러진다.

△지금 청년 세대를 움직이게끔 하는 것은 무엇인가.

-김 소장 : 자신의 이익 침해가 곧 집단적 이익 침해라는 공동의 목표가 생기면 행동에 나설 수 있다. 자신의 밥그릇을 위협하는 일이라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 전체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청년 사이에 형성되면 함께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익 집단 내 집단행동은 오히려 활발하게 벌어질 수 있다.

△청년들이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설 교수 : 청년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다거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함께 협력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선 함께 목소리를 내고 연대할 필요가 있는데 이런 부분이 교육 현장에서부터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온라인 교육은 지식전달에 효과적일 수 있지만 사람 간 교류와 소통, 협력을 배우기엔 최선의 방법이 아닐 수 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개인이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대화와 소통을 통해 협력해야만 해결 가능한 문제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기화와 긍정적 경험을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박 교수 :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다만 청년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구세대로부터 형성된 체계, 능력주의나 지나친 경쟁 체계의 문제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우리가 원하는 건 무엇인지에 대한 담론을 먼저 형성해야 한다. 그에 따라 자신이 만들어 갈 세대가 곧 우리의 세대라는 인식과 각오가 필요하다.

-김 소장 : 청년 전체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이후 내가 겪는 문제가 청년 집단 모두의 일이고, 해결을 위해선 서로 경쟁할 게 아니라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쪽으로 인식이 전환될 필요가 있다. 이 집단에서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목표를 제시한다면 지금보다 큰 규모의 집단적 움직임이 발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