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 원대 영화 제작비에 등골 휘는 학생들

-우리 대학 예술문화영상학과, -필수전공 과정인 영화 제작에 -인당 평균 200~300만원 부담 -아르바이트·대출·휴학도 동원 -학교 지원금 없어 대책 절실

2024-11-28     정윤서 기자

“과제로 영화 한 편을 찍으려면 휴학까지 고민해야 할 정도에요.” 우리 대학 A(예술문화영상학, 22) 씨는 예술문화영상학과에서 필수 전공을 수강하기 위해 수백 만 원에 달하는 사비를 부담해야한다고 토로했다. 졸업을 위해선 반드시 들어야 하는 수업이지만 학교 지원엔 한계가 있어 아르바이트나 대출을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28일 <채널PNU> 취재를 종합하면 우리 대학 예술문화영상학과 학생들이 필수 전공 수업인 ‘영화제작실습’을 수강하기 위해 영화 제작비로 평균 200~300만 원에 달하는 사비를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제작하는 영화 규모에 따라 많게는 700~1,000만 원까지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인건비 상승과 함께 학생 영화가 상업화될 수 없는 현실적 제약 탓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학교 차원의 해결책은 전무하다.

우리 대학 예술문화영상학 전공생들이 필수 전공 수업인 '영화제작실습'을 위해 영화를 촬영하고 있다. [취재원 제공]

■학생영화도 제작비 부담

영화제작실습을 이수하기 위한 과제는 영화 한 편 제출이다. 그러기 위해선 △배우 섭외 △로케이션 대여 △기자재 대여 △인건비 등의 지출이 불가피하다. 특히 인건비 명목으로 영화 스태프의 △식대 △교통비 △간식비 △회식비까지 고려하면 연출비는 금세 200만 원 이상으로 높아진다. A 씨는 “저예산으로 찍고자 하면 (인건비를 아껴) 할 수 있으나, 그렇게 되면 스태프 복지에 제약이 생긴다”며 “(스태프들도) 시간 내서 도와주러 오는 건데 밥도 못 먹고 일하면 서럽지 않겠냐”고 말했다.

수백만 원에 달하는 영화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대출을 받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비용이 부담돼 수강을 미루는 학생들도 많다. B(예술문화영상학, 21) 씨는 “영화 제작비를 충당하려면 학업과 아르바이트 2~3개를 병행하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비용 마련을 위해) 휴학하는 경우도 봤다”고 전했다. 유다영(예술문화영상학, 21) 씨는 “금전적인 어려움 때문에 수업을 드랍(수강취소)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며 “학생들이 영화 제작비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영화계 관계자들은 학생들의 영화 제작이라도 상당한 비용이 수반된다고 말한다. 기자재 대여와 같은 기본비 외에도 인건비가 들고 소품 구입 등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 영화연구소 김충국 연구원은 “아무리 아껴 본들 밥값만 100만 원 대인 상황”이라며 “‘돈타령’하지 말고 작품에 대한 욕심을 낮추라는 충고도 이제는 무의미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영화연구소 홍진혁 연구교수도 “상업영화 현장의 표준계약서 논리를 학생 영화제작 과정에도 적용하려는 분위기 때문에 인건비 지출 문화가 생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 영화 등 비상업 영화를 소비할 관객층과 인프라가 적은 것도 제작비 부담의 원인이 된다. 현재 학생 영화 상영과 배급이 소수의 일부 영화제에만 기대고 있는 실정이다. 투자 받기 힘들고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너도나도 주목받기 위해 상업영화에 버금가는 규모로 제작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다. 홍 연구교수는 “학생 영화를 상영할 기회가 적다 보니 외부의 투자나 지원을 받을 수 없어 학생이 온전히 제작비를 부담할 수밖에 없다”며 “제한된 상영·배급 기회를 두고 경쟁이 심화하는 것도 제작비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 외로운 싸움

과도한 제작비에 부담을 느낀 학생들은 학교 측의 금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해당 수업은 미수강 시 졸업을 하지 못하는 전공 필수 과목임에도 불구하고 학교가 지원하는 제작비는 없다. B 씨는 “학생 입장에서 (제작비가) 적은 금액이 아니다 보니 매년 학생들 사이에서 불만이 많다”며 “실습에 사용하는 비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농담도 한다”고 전했다. 유다영 씨도 “영화가 아닌 진로를 희망하는 친구들에겐 영화 제작 실습 과목은 특히 부담된다”며 “학과 차원의 제작비 지원이 있다면 이런 친구들이 좀 더 마음 편하게 (수업에) 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수업을 주관하는 예술문화영상학과와 소속 단대인 예술대학은 현재 영화제작실습 수강생에게 실습 기자재를 무료로 빌려주고, 비교과 사업으로 공모전을 진행해 장학금을 지급하거나 외부 공모전 등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는 한계가 있다. 높은 경쟁률과 복잡한 신청 절차로 인해 모든 학생이 혜택을 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술대학 행정실 측은 “학교 예산을 학생에게 금전 형태로 지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학교 예산인 실험실습비로 촬영에 필요한 기자재를 구입해 학생에게 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술문화영상학과 측은 “외부 지원 사업 등을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있다”며 “지금 학과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말했다.

■체계적 지원·관리책 필요

전문가들은 교육과정의 일부인 영화 제작이 학생 개인 지출에 의존해선 안된다고 지적한다. 김 연구원은 “교과과정에 수반되는 비용은 원칙적으로 학교 등록금 외에 필수 지출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며 “학교가 장비 제공자로서의 역할에만 안주한 채 손을 놓고 있어선 안 된다”고 전했다.

또한 계속되는 학생들의 제작비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서는 인건비 상승을 완화할 방안이 시급하다. 김 연구원은 “학교 차원에서 △학교 간 인력 풀(Pool) 구성 △영화 제작 기간 분산 배치 등을 시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근 대학 간 영화 제작 인력을 공유해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사람을 채용하거나 인력 수요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하고 영화제작실습과 졸업 작품 제작 시기 등 영화 제작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학교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학교는 학기와 방학 전체를 놓고 학생들의 제작 기간을 연간 단위를 기준으로 배치하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출품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 경쟁을 낮추고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홍 연구교수는 “대학과 영화제, 영화관 등 관계기관의 협력을 확대해 영화의 상영 및 배급 기회를 확보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인 지원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예술종합학교처럼 학과 측에서 장기적인 조교 자리를 만들어 학생 영화의 영화제 배급을 담당하게 하는 것도 효과적”이라며 “학과 차원에서 학생 영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관리해 출품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