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원 스케이프] 서동, 한 집 건너 한 집은 비었다

-우리 대학 부산캠 있는 금정구 -빈집 절반 이상이 서동에 몰려 -낙후한 동네에 주인 잃은 집들 -재개발 지연에 어려움 가중

2024-11-29     오정린 기자

“재개발 때문에 집을 팔고 나간 사람이 많아요. 이 옆에 집도 비었고 여기도 저기도 다 비었어요.” 부산 금정구 서동에서 35년을 살았다는 정말분(75, 부산시 금정구) 씨가 빈집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책이주지 지정 이후 사람들로 가득했던 서1동과 서2동에 걸쳐있는 서금사5재정비촉진지구와 그 일대 집은 주인을 잃은 채 재개발만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11월 10일, 서금사5구역과 서동의 전경. [오정린 기자]
지난 10월 5일, 서금사5재정비촉진지구에 빼곡이 들어찬 집들 사이로 주민이 지나가고 있다. [오정린 기자]

우리 대학 부산캠퍼스가 위치한 금정구에는 정책이주지로 형성된 서동이 있다. 수도와 전기 등 기반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경사진 산에는 성인 한 명이 두 팔을 벌리면 닿을 거리의 골목을 두고 단칸방 문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과 귀향 동포의 삶의 터전이기도 했던 이곳은 인근 금사공단 노동자의 거주지 역할을 담당했으나 고질적으로 열악한 주거 환경에 더해 공단의 쇠퇴와 일자리 감소까지 더해지며 1990년대 중반부터 빈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부산시 빈집 실태조사(2020년)에 따르면 금정구에 있는 빈집 370채 중 220채가 서동에 있을 정도다. 최근에는 재개발을 앞두고 더 늘어난 빈집으로 심각한 슬럼화를 겪고 있는 서동을 <채널PNU>가 조명했다.

■귀향동포·피난민 몰려든 서동

지난 11월 11일, 서동 정책이주지 근처 판자촌 마을. [오정린 기자]
지난 11월 9일, 서금사5구역의 집과 집 사이의 좁은 틈 사이로 버려진 쓰레기들. [오정린 기자]

우리 대학 우신구(건축학) 교수에 따르면 1968년 부산시 사업으로 정책이주지로 지정된 서동에는 귀향동포·피난민·영주동 판자촌 거주민이 대거 강제 이주했다. ‘부산시 정책이주지의 변화과정 연구-금정구 서동 정책이주지를 중심으로(논문)’에 따르면 판자촌 거주민은 한국전쟁 피난민과 귀향 동포가 대다수였다. 시는 저소득 주민들이 감당할 수 있도록 저렴한 가격으로 획일적인 대지를 단시간에 공급했다. 다만 당시 16세대가 살던 소규모 농촌이었던 탓에 이주민은 △일자리 부족 △대중교통·편의시설 등 인프라 부족 문제를 겪어야만 했다.

정책이주지에 속하지 못한 이들이 서동 일대에 정착하며 판자촌까지 생겨났다. 우 교수는 “정책이주지에도 못사는 사람들이 그 뒤 산에다가 집을 짓기 시작해 저절로 생긴 마을”이라며 “정책이주지보다도 더 열악하다”고 말했다. <채널PNU>가 방문한 지난 11월 10일, 판자촌의 일부 집들은 벽 한쪽이 허물어져 있거나 벽에 금이 가 있는 등 방치돼 있었다.

■금사공단·서동시장

지난 11월 9일, 금사공단 내 위치한 빈 공장. [오정린 기자]

1990년대 금사공단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2만여 명의 종업원이 종사할 정도로 황금기를 맞기도 했으나 △1990년대 초반 부산 신발업계 타격 △IMF △타 도시로의 공장 이전 등으로 타격을 입기도 했다. 현재 금사공단 일대는 임대를 내놓은 공장도 찾아볼 수 있다.

금사공단과 함께 황금기를 맞았던 서동시장도 활기를 잃었다. 서동시장에서 47년을 종사한 B 씨는 “금사공단이 문을 닫고 뉴타운이 들어온다 하니까 사람들이 이사를 해서 장사가 안 된다”라며 “미리 팔고 나간 사람들은 3억쯤 비싼 값에 팔고 나가 아파트도 사고 용돈도 했는데 다시 집값이 내려가 죽도 밥도 안됐다”고 말했다. 50년 동안 시장에서 일한 정봉선(75, 부산 금정구 명장동) 씨는 “2, 3년 전 재개발 때문에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 집이 다 비었다”라며 “시집왔을 때는 금사공단이 있어 사람이 바글바글해 시장길을 다니기도 힘들었고 물건을 갖다 놓으면 다 팔리곤 했다”고 말했다.

■재개발 앞뒀지만

지난 10월 5일, 서금사5구역의 한 주택 골목. [오정린 기자]

사람들이 빠져나가며 생긴 빈집은 몇 십 년째 방치돼 있으나 당장 해결은 어렵다. 금정구청 건축과 직원에 따르면 빈집 정비 사업을 시행하고 있으나 투자 목적으로 사람들이 집을 소유한 탓에 사업 적용이 어렵다. 서1동 행정복지센터 직원은 “(서금사5재정비촉진지구 주택은) 재개발이랑 연관돼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며 “빈집 정비는 사적 영역에 가깝다”고 말했다.

사업 중복으로 환경 개선도 어렵다. 금정구청 도시재생과 담당자는 “재개발 추진 지역은 도시재생활성화 지역과 중복으로 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구주택기초조사 통계조사원 C 씨는 “서동을 조사하러 갈 때 무섭고 위험한 부분도 있었다”며 “주민 수가 적고 재개발 지역이더라도 아직 살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공공기관에서 관리는 해줘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열악한 서동 일대을 개선하기 위한 재개발 사업마저 더딘 실정이다. 2007년 뉴타운 사업으로 재정비촉진지구로 선정됐으나 △사업성 결여 △주민 비협조 △시공사 선정 어려움 △추진위원회 전문성 결여 및 이권 다툼 △행정 한계를 겪은 탓이다. 이로 인해 서금사5재정비촉진지구는 지난 7월 29일에 이르러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받았다.

하지만 빈집 문제가 대두대고 있는 만큼 전문가는 서동 일대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우 교수는 “건물이 지어진 지 40년이 넘어가면서 많이 노후화됐고 방수가 잘 안돼 거주 환경에 위생적으로 문제가 있다”라며 “내진 성능이 거의 없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엔 재난 우려도 크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부곡 4동 등 재개발구역에서 빠진 지역은 재개발 대신 도시재생 같은 사업으로 조금씩 주변 환경을 개선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