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UP, 개성UP' 청년들이 이끄는 업사이클링
-최근 유니폼 업사이클링 리폼 문화 확산 -창업하고, 주문하고 문화 향유하는 청년들 -환경 보호, 패션 아이템 등 이유도 다양 -전문가 "환경보호 시발점 될 수 있어"
#1 “밋밋한 기본 유니폼에 패치와 배지를 달아서 특색 있는 짐색(sack)이 됐어요.” 부산 동래구에 거주하는 김 모(22세) 씨는 이달 개막하는 야구 시즌을 기다린다. 팀을 이적한 선수의 등번호를 제거하고 남은 유니폼 원단으로 만든, 이른바 ‘직관 가방’을 메고 야구장에 가기 위해서다.
#2 의류학 휴학 후 디지털 매거진에서 근무 중인 장 모(23세, 서울 성동구) 씨는 ”자주 바뀌는 트렌드에 맞춰 옷을 새로 사는 것보다 업사이클링해 입는 게 나은 것 같다“며 "방치된 옷의 불편한 목 부분을 오프숄더로 만들어 입었을 때 더 스타일리시하고 빈티지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3 야구를 좋아하는 박민수(경영학, 24) 씨는 평소 인스타그램 피드를 들여다보며 업사이클링 계정에 흥미를 느꼈다. 그는 “매 시즌 새로운 유니폼을 사면서 이전 시즌 유니폼을 활용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가방으로 리폼해서 사용하는 것을 보고 흥미로웠다“며 ”새 시즌이 개막하면 이전 시즌 유니폼을 활용해 팬심을 크게 나타내보려 한다“며 업사이클링을 이용해 볼 의향을 드러냈다.
최근 버려진 물건을 그대로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업사이클링(upcycling)’이 기존의 재활용을 대체할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시즌이 지나거나, 선수가 이적하면 버려지기 십상이던 유니폼을 활용해 자신만의 가방으로 만드는 것이다.
폐기물을 원료로 분해한 후 다시 새로운 제품으로 만드는 재활용 ‘리사이클링(Recycling)’과 달리 업사이클링은 기존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창의적인 변화를 통해 제품의 가치를 높인다. 업사이클링과 리사이클링 모두 자원 고갈과 환경 오염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지만, 업사이클링의 경우 재가공 과정에서 소모되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물리적·화학적 처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채널PNU>는 지난 2월 한 달간 다양한 계기로 업사이클링 사업을 진행하는 청년들의 이야기와 함께 이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들었다.
■‘환경 보호’를 위한 마음으로
'핸디샵'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업사이클링 가방 사업을 하고 있는 강민성(27세, 대구 서구) 대표는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본업이 셰프였던 강 씨는 “(셰프로 근무하면서) 기온이 상승하는 등 환경 문제로 식자재 단가가 폭등하는 일이 빈번했다”며 “자연스레 환경에 관심이 생기게 됐다”고 밝혔다. 강 대표의 또 다른 관심사는 야구였다. 강 대표는 “좋아하는 야구선수가 팀을 이적하면 유니폼이 주인을 잃는 게 안타까웠다”며 “비전에 맞는 유니폼 가방 주문 제작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주문 제작 가방이 오랫동안 쓰일 수 있도록 방수천 등 질 좋은 안감을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본인의 업사이클링이라는 도전이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핸디샵의 업사이클링 제품을 알게 돼 제주도에서 폐현수막을 보내오는 이도 있었다. 강 대표는 해당 현수막을 무료로 작업했다. 강 대표는 “예전에는 나 하나 재활용 잘한다고 세상이 변할지 의심했다”며 “무심코 시작한 사업이지만 (업사이클링 사업을 하고 있는 만큼) 남들에게 보이지 않더라도 환경을 위해 직접 업사이클링해 만든 보냉백을 사용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값을 매길 수 없는, 그래서 명품 같은
업사이클링 리폼 제품을 판매하고 주문 제작을 받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이스코드’ 이동건(22세, 경남 김해시) 대표는 패션에 대한 관심으로 업사이클링 사업을 개시했다. 이스코드는 스마트스토어에서 리폼 제품을 판매하고, 구글 폼으로 주문을 받는다. 주문서 작성 후 기재된 이스코드의 주소로 옷을 보내면, 택배 수령 다음 날 오전부터 재단 및 미싱 작업이 시작된다. △안감 작업 △마감 작업 △끈 작업 △옵션 작업 등 다양한 작업을 거쳐 가방으로 탄생한다. 업사이클링 사업 이전, 그는 구제시장에서 중고 옷을 가져와 판매하는 온라인 스토어를 운영했다. 이 대표는 “재고를 정리할 방법을 생각하다 업사이클링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업사이클링 사업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남녀노소 상관없이 ‘나만의 것’에 욕심이 있다”며 “‘지저분하거나 망가진 부분도 살려달라’는 주문에도 충분한 이유가 있고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패션에 관심을 두고 시작한 일이라 “환경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고 “가방뿐만 아니라 더 다양한 업사이클링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 싶다”며 업사이클링 문화 확산을 기대했다.
헌 의류뿐만 아니라 △돗자리 △현수막 △타월 등을 넘겨받아 업사이클링 가방으로 재탄생시키는 청년도 있다. 업사이클링 사업 '글루크'를 운영하는 김지은(25세, 전남 목포시) 대표는 "하나의 원단으로 두 개의 새 제품을 만들어내거나 두 가지 원단을 콜라보해 하나의 제품을 만들어낼 때 흥미를 느낀다"며 "기존의 형태가 크게 변하지 않는 리사이클링보다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어내는 업사이클링이 더 가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환경과 개성을 동시에 추구하Z
업사이클링에 펑크스타일을 적용하여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방안을 연구한 바 있는 이윤경(의류학) 교수는 청년들이 업사이클링에 관심을 갖는 이유로 △환경 관심 △개성 표현 수단 등을 꼽았다. 이 교수는 “각종 연구조사 결과 MZ세대가 환경에 관심이 높은 세대”라는 점을 언급하며 “환경을 고려하며 의류 소비를 하는 청년 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청년들은 소비에서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드러내는 ‘미닝아웃 소비’ 역시 업사이클링 문화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그는 “(청년들 사이에서) 대중의 유행보다는 개인의 필요성을 충족시키는 소비가 유행한다"며 “친환경과 개성을 중시하는 청년들에게 ‘업사이클링’이 확산되는 것은 아주 좋게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업사이클링에 대한 인식도 점점 제고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교수는 “한국 20대는 미국 20대에 비해 세컨핸즈(새로운 주인을 통한 두 번째 사용) 제품 사용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는 (과거) 연구 결과가 있다”며 “기존에는 남이 사용하던 것을 구매하는 것 자체에 원초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사이클링 제품 소비가 유행함에 따라 “재사용과 새사용의 인식이 차차 개선”되고 있어 “환경과 관련한 캠페인이나 움직임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세컨핸즈 제품에 대한 인식이 개선된 사례도 있다. 경북대학교에 재학 중인 송명언(의류학, 23) 씨는 세컨핸즈 제품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사진과 다른 퀄리티의 제품을 받거나 사기를 당할까 봐 중고 제품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며 실제로 접하기 전에는 의심이 컸다고 답했다. 그러나 "다양한 소재로 업사이클링을 한 가방이나 지갑을 판매하는 기업인 프라이탁을 알게 됐다"며 "시간을 들여 창의적인 디자인을 첨가해 환경적으로나 상품성으로나 이점을 가진 업사이클링 제품에 애정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업사이클링’ 계속되려면?
부산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부산지속가능발전협의회’의 김지현 사무처장은 청년 사이에서 업사이클링 문화가 확산되는 것을 긍정적인 변화라 조명했다. 부산지속가능발전협의회는 지속가능발전목표 이행에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다. 김 사무처장은 “개인적인 의미가 담긴 아이템을 가방이나 키링 등으로 변형하는 과정이 지속 가능한 소비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기존 제품을 새로운 형태로 활용함으로써 자원의 낭비를 줄이고 순환 경제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고 업사이클링의 장점에 대해 논했다.
업사이클링이 일회성 유행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업사이클링의 본래 목적에 맞게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과 품질을 고려해야 한다. 김 사무처장은 “(업사이클링이)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소비되면 의도와 달리 과소비를 촉진할 가능성이 있다”며 “저작권 문제를 확실하게 인지하고, 단순한 패션 트렌드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소비’라는 가치가 잘 전달됐으면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