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타 돋보기] 온라인 '지성의 요람' 되려면

-양극화 사회, 청년들 혐오‧왜곡 쏟아내 -건전한 공론장 원하는 목소리 크지만 -에브리타임, 문의·신고에 무응답 운영 -전문가, 법 제정‧서포터즈 운영 등 제안

2025-04-04     정수빈 보도부장

한때 대학생의 온라인 공론장으로 평가되던 에브리타임이 익명성에 기댄 혐오와 왜곡된 담론으로 인해 ‘반지성의 요람’이라는 오명까지 쓰게 되자 이를 바로잡을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와 에브리타임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꼽은 에브리타임에서 혐오 표현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과 해결책. (c)정수빈 기자

4일 <채널PNU> 취재를 종합하면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혐오와 왜곡된 담론을 바로잡을 자체 시스템이 미흡한 것으로 파악됐다. 에브리타임은 이용 규칙을 위반하거나 신고가 들어오면 AI 커뮤니티 운영 시스템에 의해 △게시물 삭제 △작성자의 이용 권한 제한 등의 조처를 하고 있으나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이용자가 혐오 게시글을 신고해도 삭제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아예 처리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취재진도 에브리타임의 입장을 취재하기 위해 메일을 보내거나 문의를 넣는 등 여러 방법을 취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회사에 불편 사항을 제기할 수 있는 공식적인 경로는 앱 내 ‘문의하기’ 메뉴가 전부지만 이용자들은 그조차도 답변을 받기 어렵다고 말한다. 에브리타임 신고 기능을 이용해 봤다는 A 씨는 “에브리타임 신고 및 문의 기능의 효과가 아예 없진 않으나 미미했다”며 “회사와 소통도 안 된다고 느꼈고 신고가 처리되는 과정을 공개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 대학 재학생 B(20) 씨는 “명목상 시스템이 마련돼있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받지 못했다”며 “취업 게시판에 적힌 오픈 채팅에 들어갔다가 개인정보 유출을 당했는데 에브리타임은 글 삭제나 글쓴이 계정 정지 등의 조치를 해주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애초 에브리타임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설립됐기에 이 같은 자정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단 분석이 나온다. 2011년 출시된 에브리타임은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한 사기업이 운영한다. 즉, 광고 노출 등을 위해 게시글의 조회수와 이용자의 체류 시간이 중요해 자극적인 글이 곧 수익으로 이어지는 구조인 셈이다. 에브리타임을 지난 10년간 연구한 중앙대 교양대학 최유숙 교수는 “에브리타임은 공적 담론 형성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 철저히 상업성이 작용하는 공간이다”며 “혐오를 자정하거나 막으려는 의지는 전혀 없고 오히려 조장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혐오가 점점 강화되는 측면이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에브리타임의 주요 특징인 ‘익명성’은 혐오와 왜곡된 담론을 성행하게 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자신의 발언에 대한 책임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약해 현실에서는 하기 어려운 말도 꺼내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특정 인물을 향한 공격적인 언사가 게시돼도, 작성자를 특정하기 어려워 신고가 어렵다. 우리 대학 재학생 C(21) 씨는 “예전부터 에브리타임을 봐 왔는데 익명에 숨어, 하지 못할 말들을 너무 많이 해서 실명제를 도입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에브리타임의 이용자가 동질성과 이질성을 함께 띠고 있다는 점도 혐오 표현을 유발하는 요인 중 하나다. 여타 온라인 커뮤니티와 달리 에브리타임의 구성원은 같은 대학교 학생들이다. 동시에 △성별 △학과 △성적 등 차이도 존재하며, 취업 시장에서 경쟁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신상을 파악하기 쉬운 환경에서, 학생들은 만만하다고 생각되는 상대를 향해 혐오 표현을 내뱉는다. 전북연구원 전아람 연구원은 “(같은 학교 학생들이 이용하는) 에브리타임은 특성상 구성원 간 정서적 유대가 강화돼 사회에 비판을 제기하기보다 타자화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혐오를 분출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우리 사회에 자리한 정치적 경제적 양극화로 인해 청년들이 혐오 표현을 가까이하게 된 점도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속 혐오 표현 성행의 배경으로 보인다. 한국은 두 거대 정당이 대립하며 각자의 세력을 규합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양극화와 국가 경제의 악화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입장이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부정하는 것이 일상적인 것이다. 최유숙 교수는 “사회가 어려운 상황에서 대학생들은 자신의 불만을 해소할 창구가 필요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를 말하기 어려우니 온라인으로 혐오를 드러내는 것”이라며 “또한 온라인에서 소위 ‘분탕’을 치는 소수의 사람은 글을 다수 게재하기 때문에 그들이 마치 여론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2030세대에게 익숙한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도 혐오 표출을 강화한다. 경쟁 체제에 놓인 청년들은 원하는 사회·경제적 지위를 획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무력감이 지속할수록, 개인은 자신의 불평등이 선천적인 능력과 차이로 인한 당연한 결과라는 믿음에 몰입하게 된다. 전아람 연구원은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는 하향 경쟁을 주도해 (다른 사람을) 자신보다 못난 사람으로 만들고, 그들을 자신의 밑으로 끌어내린다”며 “불확실성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의존성을 높이고 외부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심화한다”고 말했다.

■에타가 공론장 되려면

학생들은 에브리타임을 뒤덮은 혐오 표현에 피로감을 느끼지만, 대체할 플랫폼이 마땅치 않아 이용을 지속하고 있다. 다양한 학내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이 에브리타임 외에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우리 대학의 다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마이피누’도 에브리타임의 편의성에 밀려 신규 게시글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라 대안이 되지 못한다.

우리 대학 재학생 D(경제학) 씨는 “학교 공식 앱이나 지인이 전해주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어 에브리타임을 이용한다”며 “에브리타임을 삭제하면 정보를 구할 곳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 대학 재학생 E(경영학, 22) 씨도 “대부분이 학내 커뮤니티로 에브리타임을 쓰고 있고 마이피누와 같은 커뮤니티는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다”며 “하지만 (에브리타임에) 올라오는 글이 자극적인 내용뿐이고 쓸모없는 정보도 많아 특정 정보가 필요할 때만 보게 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에브리타임이 혐오로 얼룩진 공간에서 탈피해 공론장으로 기능할 수 있길 기대한다. 각종 혐오 표현으로 난무한 게시글은 삭제되고, 학내 주요 사안에 대해 정확하고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싶다는 것이다. 우리 대학 재학생 F 씨는 “에브리타임의 순기능이 있는데 안 좋은 것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장점이 가려진다”며 “순기능이 부각될 수 있도록 규제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대학 재학생 G 씨는 “외부 이용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인증과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같은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에브리타임은 상업성을 띠는 기업이기에 신고나 처벌의 강화를 적용하기 어려워, 더 넓은 범위에서의 제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다. 최 교수는 “혐오 표현을 할 수 없도록 법률이 제정되면, 혐오 표현과 관련된 개념이 규정되고 사람들의 행동에 제약을 걸 수 있다”고 말했다.

에브리타임에 혐오 표현을 필터링하는 기능을 도입하자는 시각도 있다. 최근 네이버와 카카오 등 포털 업계는 욕설‧혐오 표현 등을 탐지하고 차단하는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을 도입해 자정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하며 에브리타임의 이용 행태를 분석했다는 경북대 최시내 사서는 “연구 당시 학생분들과 인터뷰했을 때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는 점은 에브리타임의 관리가 미흡하다는 점이었다”며 “대형 포털 사이트나 게임의 경우 욕설이 필터링되거나 입력 자체가 금지되는 기능이 있는데, (에브리타임에도) 이러한 기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 씨는 “혐오 표현이 들어간 글은 안 보이게 하는 필터가 있으면 유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이 나서 인권센터나 학생회 차원에서 올바른 온라인 소통을 독려하는 서포터즈를 운영하거나 관련 교육을 제공하는 것도 여러 방안 중 하나다. 최 교수는 “실험 중에 (커뮤니티에 난무하는) 나쁜 댓글 사이에 좋은 댓글을 달았더니 나쁜 댓글을 잠재우는 효과가 있었다는 결과를 도출한 경우가 있다”며 “학내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용자 스스로가 상호 존중의 태도를 바탕으로 커뮤니티 언어 습관을 자정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혐오 표현의 근간이 되는 고정관념과 편견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들여다보고, 이를 건전하게 해소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때 책이나 토론을 통해 나와 다른 의견을 수용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전 연구원은 “에브리타임이 공론장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모두가 상호 존중의 태도로 의견을 개진하고 여론을 만들어가는 자정 노력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정 및 반론보도. (4. 30. 18:31)  

기사 발행 이후 4월 30일자로 정정 및 반론보도문을 게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