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인문학] 대학과 사회를 주도했던 인문대학
-부마항쟁부터 총장 직선제까지 -민주화 거점 역할 한 ‘인문대학’ -취업난 속에 점차 명성 잃어가 -“인문학은 인류의 변함없는 가치”
“‘인·공·자·동(인문대·공대·자연대·동아리)’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문대학의 위상은 상당했어요. 1979년 부마민주항쟁에서도 인문대학 교수와 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의 주축으로 거리로 나섰죠. 하지만 요즘은 취업난 속에서 학생들이 사회적 가치보다는 개인적 삶에 집중하면서 인문학에 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줄었어요. 학과 통폐합과 축소·폐지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인문학은 그럴 학문이 아닙니다.”
지난 3월 31일 만난 우리 대학 인문대학 24대 학장이었던 이준규(한문학) 교수는 과거 인문대학을 한국 민주화 운동의 주요 거점이자 학문 연구의 중심지로 기억했다. 이송이(불어불문학) 교수 또한 인문대학은 민주화의 상징이라며 뜻을 같이했다. 이준규 교수는 “인문관을 비롯한 학내 공간이 지식과 토론의 장”이었으며 “교수와 학생들이 사회적 변화에 앞장섰다”고 입 모아 말했다. 하지만 현재 학령인구 감소와 취업 중심의 교육 환경 속에서 인문학의 입지는 줄어들었고 덩달아 인문대학의 위상도 약화하고 있는 현실에 이들은 안타까워했다.
9일 <채널PNU>의 취재를 종합하면, 우리 대학 인문대학은 개교와 동시에 1946년 국립부산대학교 인문학부로 출발해 1953년 문리과대학이 되었다가 1981년 인문대학과 자연대학으로 분리되어 지금의 형태가 됐다. 인문대학은 우리 대학의 모든 단과대학 중 가장 먼저 설립된 단과대학으로, 사실상 우리 대학과 수명을 같이 해 단과대학의 역사만 79년에 달한다. 현재는 12개 학과에 1,600여 명의 학부생과 80명의 교수가 속해 있다.
개교 이래 인문대학은 학문의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인문대학 소속의 고고학과는 1989년 전국 최초로 설립됐으며, 언어학을 배우는 언어정보학과는 우리 대학을 포함해 전국 5곳에 불과하다. 국어국문학과의 경우 ‘사하촌’을 집필한 소설가 김정한, ‘시론’으로 유명한 이준오가 우리 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1946년 설립된 사학과와 철학과를 비롯해 1948년 국어국문학과와 영어영문학과가 설립되고 이후 대부분 학과가 1980~90년대 설립됐다. 12개 학과가 평균 50년 이상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셈이다.
인문대학은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2010년 9월 교육과학기술부가 △거점 국립대학의 단계적 법인화 △총장 임명제 전환 △단과대학장 직선제 폐지 등을 포함한 ‘국립 대학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자 인문대학 교수 81명은 단과대학 차원으로는 전국 최초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나섰다. 2015년에는 고(故) 고현철 교수가 ‘총장 직선제 폐지’에 반대하며 대학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문대학은 학문 연구를 넘어 사회운동의 중심지였다. 이준규 교수는 “부마항쟁은 물론 특히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학생 시위나 행사에는 인문대 학생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학문적 상징이자 역사 자산이었던 인문관은 캠퍼스의 중심이었고 인문대학은 그 중심에 있었다. 대학본부가 있는 본관이 현재의 건물로 이전된 이후 인문관에 인문대학이 들어선 것은 당시 인문학의 가치를 인정해 캠퍼스의 핵심적인 건물을 할양한 것으로 해석된다. 1959년 10월 31일 건립된 인문관은 한국 근대 건축의 거장 고(故) 김중업 건축가의 작품으로 건축학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2012년 부산시 지정 근대건조물 6곳 중 하나로 선정됐고, 2014년에는 국가등록문화재 제641호로 지정됐다. 이송이 교수는 “인문관은 오랜 세월 동안 같은 자리에서 변함없이 우리를 맞아주고 있다”며 “(인문관은) 인문학이 지향하는 변하지 않는 가치와 그 가치를 찾아가는 인문학도들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전했다.
과거 우리 대학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인문학이 힘을 잃고 있는 현실에 대해 교수진들은 안타까워했다. 이송이 교수는 “20세기 말 무렵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언론을 통해 퍼지면서, 인문학을 위축시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며 “인문학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인류의 변하지 않는 가치를 전승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위기를 겪을 학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준규 교수는 “인문학은 단순한 전공이 아니라 모든 학문의 근본”이라며 “사회가 효율성과 실용성을 강조할수록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더욱 중요해진다”고 강조했다.
한편 인문대학은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효원인문day’를 지난해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다. 전국 국공립대학교 인문대학장 협의회 회장직을 이종봉(사학) 교수가 맡고 2015년에는 학회 역사상 처음으로 지역대학 교수인 배만호(영어영문학) 교수가 한국영어영문학회 제34대 회장으로 선출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