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상처만 남긴 의정갈등

2025-05-09     정수빈 보도부장

1998년 이래 윤석열 정부는 가장 완강히 의대 증원을 추진했다. 의료계와 교육계의 우려를 무시한 채 발표된 증원 방침에 따라 의사면허 박탈 경고, 업무 개시 명령, 의대 동맹휴학 승인 금지 등 강경한 대응이 이어졌다. 하지만 지난 4월 17일 교육부가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증원 이전 규모로 되돌리겠다고 발표하면서, 의료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추진된 정책은 번복될 위기에 처했다. 손바닥 뒤집듯 바뀐 정책에 혼란은 국가 전체로 퍼졌다. 국민 사이에선 ‘무엇을 위한 개혁이었냐’는 여론이 들끓는다. 의료계와의 신뢰도, 국민과의 공감대도 모두 잃은 꼴이다.

특히 지지부진한 대립이 휩쓴 대학에는 텅 빈 강의실과 무기력한 대학 행정만이 남았다. 그간 수업을 거부하는 의대생들의 처분을 놓고 대학은 우왕좌왕하기를 반복했다. 설상가상으로 대규모 유급을 앞둔 우리 대학은 세 학번의 신입생이 함께 1학년 수업을 듣는 ‘트리플링’까지 감당해야 하지만, 뚜렷한 해법은 없다. 설령 대책을 마련하더라도 교수 인력과 실습 자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교육의 질을 보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의대 증원은 제자리로 되돌아갔고 늘어난 의대 신입생 1,500여 명마저 선배를 따라 수업을 거부하는 지금, 의료 개혁은 얻은 것 하나 없이 온통 상처투성이다.

학칙을 초월한 ‘의대생 특혜’에 일반 학생들은 쓴소리를 내뱉었다. 전국 대학이 의대생에 보여준 ‘배려’는 일반적 경우라면 감히 상상도 못 할 수준이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은 의대생을 붙잡기 위해 지난 1년간 복학 기한 연장, 등록금 납부 유예, 출석 기준 완화 등 전례 없는 학사 유연화 조치를 남발했다. 학칙이 의대생에게만 유연하게 작동하는 현실은 형평성 논란에 불을 지폈다. 대학가에서는 ‘의대가 아닌 다른 학과였으면 한 달 만에 제적당했을 일’, ‘결국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냉소 어린 시선이 쏟아졌다.

의정 갈등과 줏대 없는 정책 추진 속에 의대가 의학이라는 공공복리를 위한 학문을 배우는 곳이라는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난 모양새다. 의학은 단순한 직업의 개념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는 학문이다. 그렇기에 의대생은 높은 윤리의식과 공동체적 책임이 요구된다. 제적과 유급이라는 최후통첩에도 수업에 복귀하지 않고, 총장과의 복귀 노력 약속마저 저버린 그들의 집단행동은 공공학문을 배우는 이들에게 바라는 사회적 기대와 거리가 멀었다.

의료 개혁이 발표된 지 1년이 지난 현재 정부는 오락가락한 태도로 국민의 신뢰를 스스로 저버렸고, 의료계 역시 공공복리 학문으로서의 책무를 외면한 채 집단행동에 몰두했으며 이로인한 피해와 상처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남았다. 조기 대선을 앞둔 지금, 새로운 정부는 의료계와의 합의를 바탕으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의료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의대생 또한 자신의 권익이 국민의 건강권이라는 공공의 가치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해야 한다. 공적 책임의 무게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다.

 

정수빈 보도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