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벌로부터] '대의'를 잃은 학생회
우리 대학은 매 학기 ‘민족효원 대의원총회(대총)’를 연다. 모든 단과대학과 학과의 회장들이 학내외의 주요 현안에 숭고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곳. 회칙의 재·개정, 대의원 제재, 감사 결과 확정, 총학생회 재정 심의 및 해임 의결 등 각종 사안의 건전한 담론이 그곳에서 오고 간다. 하지만 지금의 대총에는 최대 138표를 행사할 수 있는 ‘규격 외’ 존재가 있다. 총학생회칙으로부터 의결권 위임 권한을 받은 총학생회장이다.
대총은 1985년 총학생회칙의 재정 이후 부산대학교의 주요 현안을 의결해 왔다. 2013년 총학생회장이 무단으로 사퇴한 이후 대학본부와 협상에 나설 직무대리를 정한 것이 대총이었고, 2015년 총학생회의 한국대학생연합 탈퇴 결정과 2019년 여론 조작 논란에 휩싸인 총학생회 ‘위잉위잉’의 해임 역시 대총에서 이루어졌다.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칙은 대총을 학생총회 다음의 최고 의결기구로 규정하고 있다. 전체 재학생 2만여 명 중 절반 이상이 참석해야 하는 학생총회의 현실적 개회 확률이 낮은 것을 감안하면, 대총은 사실상의 최고 의결기구다.
하지만 지금의 총학생회칙은 대의원이 의장 즉, 총학생회장에게 의결권을 위임할 수 있다. 해당 조항은 역설적으로, 본인의 퇴임을 논의하자는 대총 개회 요구를 두 번이나 묵살한 당시 총학생회장이 신설했다. 지난해 하반기 대총이 출석의원 부족으로 무산된 뒤 저조한 참석률 속에서도 대총을 개회하기 위한 방책으로 대두됐다. 대총에 오지 않으면 총학생회장이 마음대로 결정해버리겠다는 경고. 대의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총의 기본 원리를 철저히 무시하는 대목이다. 문제는 해당 조항이 단순히 대총 정족수를 확보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총학생회장에게 의결권 자체를 위임했다는 것이다. 투표장을 가지 못해 투표권을 위임하는 대리 투표와 다를 것이 없다.
해당 조항으로 인해 총학생회장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됐다. 40명의 위임을 받은 총학생회장과 30명의 대의원이 대총을 열었다고 가정했을 때, 대의원 30명 모두가 반대하더라도 총학생회장 혼자서 안건을 통과하거나 부결시킬 수 있다. 명색이 대의원이라는 작자들이 40명이나 위임할까 싶지만, 실제로 지난 임시 대총에서 최수인 총학생회장은 24표를 위임받았다. 다행히 해당 24표가 의결을 좌우하지는 않았으나 앞으로의 대총에서 해당 조항이 어떠한 파장을 일으킬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대학 정치외교학과 서재권 교수는 지난해 <채널PNU>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조항이 의장에게 너무나 포괄적인 권한을 줄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해결책은 두 가지다. 우선 조항의 대대적인 수정이다. 개정의 방향으로는 재적인원 확보만을 보장해 의결권을 침해하지 않는 방법 혹은 대총에 지속적으로 불참하는 대의원에게 강력한 처벌을 주는 방향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최 회장은 <채널PNU>와의 당선 인터뷰에서 조항에 문제 소지가 있음을 인지하고 여름방학 중 개정에 힘쓰겠다고 밝혔으나, 정작 임시 대총에서는 본인의 위임표를 사용했다. 자신의 한 표에 어떤 무게가 달려 있는지 한번더 숙고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의원들도 학생 현안에 관심을 가지고 대총 참여 의지를 보여야 한다. 대총에서 어떤 담론이 나올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은 가벼이 의결권을 위임하는가. 대의원 한 사람의 표는 학생들로부터 위임받은 대의 민주주의의 정신이다. 적어도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하지 않겠나. 이제는 총학생회와 대의원 모두에게서 책임감을 바라야 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