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대 르네상스 열리나··· '서울대 10개 만들기' 대학 변혁 예고
-지난 9월17일 정부 국정과제로 발표 -부산대 포함한 거점국립대 집중 투자 -SKY 병목 문제·지역 균형 발전 기대 -"정책 추진력과 실행 의지 중요해"
정부가 추진 중인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고등교육의 수도권 쏠림 구조를 해소하고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핵심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 대학을 포함한 전국 9개 국가거점국립대(거점국립대)를 서울대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집중육성해 수도권 중심 고등교육 체계를 개편하겠다는 계획이다. 26일 <채널PNU>는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인 이 정책 배경을 짚고 기대효과를 살펴봤다.
교육부는 지난 9월 17일 ‘이재명 정부 교육 분야 6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공식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 정책의 구상은 2021년 경희대 김종영(사회학) 교수의 저서 ‘서울대 10개 만들기’에서 처음 제안됐으며,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22대 총선 공약에 포함되고 이재명 대통령의 21대 대선 공약으로 채택되면서 현재 국정과제로 구체화된 상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3일 진행된 전국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수도권 일극 체제는 단순한 불균형 문제가 아니라 국가 생존을 위협하는 구조”라고 진단하며, “균형발전은 지방에 대한 시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필수 전략”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날 교육부가 내놓은 보도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우선 거점국립대에 대한 전략적 투자와 체계적 육성을 위해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 수준으로 단계적·전략적으로 상향 조정하고, 집중 육성 분야를 중심으로 교육·연구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아울러 학문 분야의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교수를 선정하는 ‘국가석좌교수’ 제도를 신설해 국·공·사립대 모두에서 정년(65세) 제한 없이 임용이 가능하도록 하고, 최고 수준의 연구 활동을 보장할 방침이다.
또한 ‘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재구조화도 추진된다. 교육부는 5극 3특 행정체계 개편과 연계해 초광역 단위의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지역대학 간 교육과정, 교원, 연구 장비, 시설 등의 공유·협력을 고도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지자체와 대학 간 협력을 강화하고, 한계사립대학의 적정 규모화와 기능 전환을 유도하는 등 고등교육 구조개선도 병행할 계획이다.
■SKY 병목 구조 해소 대책
이 같은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나온 배경에는 우리나라 고등교육이 안고 있는 가장 구조적인 문제인 ‘소수 명문대 중심의 병목 구조’가 있다.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로 대표되는 수도권 최상위권 대학에 교육 자원과 인재가 집중되고, 이로 인해 지방 대학은 상대적으로 고사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이러한 불균형 구조 속에서 입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사교육비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으며, 수도권 과밀과 지방소멸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연세대 최성수(사회학) 교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특히 교육 측면에서 서울과 지방간 불균형을 지적한다고 본다"며 "해당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대와 거점국립대 간 격차는 여러 지표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학생 1인당 교육비 △연구비 △전임교원 수 등에서 이 같은 차이가 두드러졌다. 대학알리미 공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서울대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약 6,059만 원에 달한다. 반면 거점국립대 평균은 2,400만 원대 수준에 머물며, 우리 대학은 평균보다 조금 높은 2,602만 원이다. 연구비 규모도 큰 차이를 보인다. 2023년 기준 교내·교외로부터 지원받은 서울대의 총 연구비는 약 7,341억 원인 반면, 부산대는 약 2,200억 원 수준이다. 2023년 연구 과제를 수행한 전임교원 수는 서울대는 2,334명, 부산대는 1,446명이었다. 이에 대해 전남대 염민호(교육학) 교수는 “거점국립대의 실질적인 학생 기초 역량과 교수 연구 역량 수준은 높고 수도권 대학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지만 서울대에 비해 정부가 거점국립대에 투자하는 비용은 낮다”고 말했다.
이러한 교육 불균형은 수도권 중심의 성장 전략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경제, 정치, 문화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지방은 점차 주변화됐고, 지방 대학은 고등교육 인프라로서의 역할조차 약화됐다. 최 교수는 고등교육의 급격한 확대가 지방대와 전문대의 소외를 초래했다고 지적하며 “제도적 정비 없이 양적 팽창 위주로 진행된 고등교육 정책이 구조적 불균형을 심화시켰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정부는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 간 심화한 격차 문제를 △수시·정시 비율 조정 △입시 간소화 △고교학점제 확대 등 입시제도 개선을 통해 해결하고자 시도해왔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 같은 방식이 병목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보다는 경쟁의 방향만 바꿔놓는 데 그쳤다고 지적한다.
반면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단순 입시 제도 개선이 아닌 대학의 구조와 위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김 교수는 저서를 통해 “SKY로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단 하나뿐이라는 것이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라며 “이 고속도로를 10개로 늘려야 SKY라는 하나의 길로 몰리는 병목 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서울대 하나에 집중된 교육 자원과 기회를 전국 9개 거점국립대로 분산함으로써 교육의 질과 접근성을 전국으로 확장하겠다는 것이 정책의 골자다.
염 교수는 “거점국립대는 이미 학생과 교수의 기본 역량이 검증된 기관”이라며 “서울대 수준의 재정 투자가 이뤄진다면 전반적인 질적 향상은 물론, 지역 산업과 연계한 일자리 창출도 가능해져 지방 학생들이 굳이 수도권으로 이동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단순히 교육을 넘어서 국가의 인재 분포와 산업 구조를 전면적으로 재편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균형발전 기대와 우려 교차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기존 정책들과 구조적으로 차별화된 점도 주목된다. 글로컬대학30이나 RISE와 같은 기존 사업이 모든 지방대에 기회를 부여하는 ‘경쟁형’ 구조였다면, 이번 정책은 전국 9개 거점국립대를 대상으로 한 ‘선별 집중’ 전략을 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염 교수는 “기존 사업이 대학 간 경쟁을 유도해 결과적으로 양극화를 키운 반면,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경쟁 없이 보편적 예산 지원을 통해 안정적인 수준 제고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정책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도 있다. 경국대 안상준(사학) 교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기능과 효용의 관점에서 대학에 접근하지만, 대학 자체의 본질적 기능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가 없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적 공약”이라고 비판하며 “좋은 대학의 필요 조건은 충분한 재정 지원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며 “정작 중요한 것은 교수 역량과 대학의 자율적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단순히 거점국립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국립대와 사립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위계와 기능 등 대학체제 전반에 대한 현황 파악을 토대로 고등교육 대계 수립에 착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책의 접근 방식에 대한 비판도 있다. ‘서울대 수준’이라는 표현이 거점국립대의 정체성과 다양성을 획일화시킬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거점국립대만을 중심에 두는 정책 방향이 다른 지방대·전문대를 배제할 수 있다는 우려다. 최 교수는 “거점국립대가 쇠락해 가는 것은 분명 문제지만, 여전히 한국 대학 서열구조 상 상위권에 있으며, 거점국립대 외 다수 지방대와 전문대의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며 “거점국립대만을 부흥시키는 것이 전체 교육 불평등의 해법처럼 포장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거점국립대를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거점국립대 외 대학들에 대한 담론과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며 “한국 고등교육 전반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리더십과 더불어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