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날] 물건 취급 받는 동물, 법적 사각지대 속 동물원
-삼정더파크, 6년째 법적 분쟁 중 -폐장 직후 개체 수 45%가량 줄어 -전국 동물원 안전 위협 사례 많아 -동물 법적 지위 개선 목소리 커져
올해로 폐장 6년 차에 접어든 부산 유일 실외 테마파크형 동물원 ‘삼정더파크’를 비롯해, 전국 각지 동물원이 법적 분쟁에 휘말리며 동물들이 방치 위험에 놓이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행법상 동물의 법적 지위가 ‘물건’에 불과하다는 점을 근본 원인으로 지적했다. <채널PNU>는 오는 10월 4일 ‘세계 동물의 날’을 앞두고 동물원과 법제도 문제를 점검했다.
1일 환경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 동물원은 총 127개이며, 이 중 60% 이상이 민간 운영시설이다. 부산에는 현재 6개의 동물원이 있으나, 대부분이 실내 위주의 소규모 형태다. 2022년 12월 개정된 동물원수족관법은 일정 규모의 시설만 갖추면 됐던 등록제에서 안전관리계획, 전문인력 자격 증명 등을 요구하는 허가제로 전환하며 진일보했다. 하지만 여전히 민간 운영에 맡겨져 있어 경영난이나 법적 분쟁이 발생하면 동물들은 사실상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방치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6년째 소송 속 장담할 수 없는 동물 안전
2014년 개장한 삼정더파크(부산 부산진구)는 1987년부터 2005년까지 운영됐던 성지곡 동물원의 후신이다. 개장 당시 전국 최초로 ‘도보형 사파리’라는 타이틀을 내세우며 부산의 주요 유원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2014년 개장 이후 적자가 누적되며 2020년 4월 폐장했다. 운영사인 삼정은 개장 당시 부산시와 맺은 매수 협약에 따라 2017년 부산시에 동물원 매입을 요청했으나, 시는 동물원에 설정된 사권이 없어야 한다는 협약 내용을 이유로 매수를 거부했고, 2020년 6월부터 양측은 소송에 돌입했다. 이 분쟁은 지난 7월 18일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돼 6년째 이어지고 있다.
폐장 이후 동물들은 여전히 더파크 내에 남아 있으며, 삼정 측은 자체 관리 중이다. 부산시 올해 5월, 동물 먹이 대금으로 예비비 1억 6,000만 원을 지원했지만, 향후 지속 여부는 불투명하다. 부산시 공원여가정책과는 “동물원 동물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시가 더 지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처럼 지속적인 지원을 장담할 순 없다”고 말했다. 담당자는 “삼정 측 요청에 따라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했으나 9월까지만 (예산 지원이) 예정됐다”며 “지속 지원은 어렵고, NGO와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삼정더파크에 남아 있는 동물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며 우려하고 있다. 환경부가 발표한 자료와 부산시 공공데이터 포털에 따르면 삼정더파크는 폐장 직후 158종 930마리의 동물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올해 기준 128종 509마리로 급감했다. 종 수는 19%, 개체 수는 45%가량 줄었다. 시는 자연 폐사에 따른 감소라고 해명했지만, 동물보호단체 ‘라이프’는 “장기 휴장에 따른 긴축 운영으로 사육사 1인당 동물 수가 늘거나, 사료 질이 저하됐을 수 있다”며 “동물들이 열악한 환경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갈비사자’… 반복되는 전국 동물원 사태
동물 안전에 대한 우려는 실제로 현실로 드러나기도 한다. 복수의 동물보호단체에 따르면, 경남 김해시 ‘부경동물원’과 대구시 수성동 ‘실내 동물원’은 모두 같은 소유주가 운영했던 시설로 개장 초기부터 열악한 사육 환경과 동물 학대 논란이 이어져 왔다. 부경동물원은 2013년 개장 이후 코로나19 시기 운영난으로 매출이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해, 2023년 8월 중순 휴업에 돌입한 뒤 같은 해 11월 폐업했다.
같은 소유주가 운영한 대구 수성동 실내 동물원도 상황은 유사했다. 해당 시설은 동물 학대로 2023년 11월 대구시로부터 3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은 뒤, 휴업 신고를 제출하고 3개월간 문을 닫았다. 이후 다시 운영을 재개했지만, 재차 동물 학대 논란이 불거지며 결국 2024년 10월 폐업에 이르렀다.
문제는 폐업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았다. 현행법상 동물이 ‘사유재산’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두 동물원 모두 이관처나 판매처를 찾기 위한 시간이 길어졌고, 이 과정에서 동물들이 반년에서 최대 1년 가까이 방치되는 일이 벌어졌다.
특히 부경동물원은 2023년 8월 SNS를 통해 뼈가 드러날 정도로 야윈 ‘갈비사자’가 알려지며 논란이 됐다. 해당 사자는 기침을 지속하고 제대로 먹지 못하는 등 심각한 건강 이상을 겪고 있었다. 이와 함께 라쿤은 털이 너무 자라 시야를 가렸고, 오랫동안 씻지 못해 악취가 심하게 나는 등 기본적인 위생조차 관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취재진이 만난 시민단체 관계자는 “기초적인 돌봄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전형적인 방치 상황이었다”고 증언했다.
이를 계기로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동물자유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고발에 나섰고, 구조 활동이 본격화됐다. 당시 부경동물원 동물들을 직접 구조한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연합)의 김애라 대표는 “방치된 동물들의 상태가 엉망진창이었고 주변 환경 또한 좋지 못했다”며 “동물들이 제대로 먹이를 먹지 못했고 진료 같은 경우도 거의 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사회 변화보다 느린 법
동물보호단체는 이러한 문제의 핵심 원인으로 동물의 법적 지위를 지적한다. 현재 대한민국 민법상 동물은 ‘물건’으로 정의된다. 민법 제98조는 물건을 “유체물 및 관리 가능한 자연력”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동물은 이에 포함된다. 이 때문에 동물은 의자나 책상처럼 소유 가능한 대상으로 취급되며, 법적 권리 주체로서의 지위가 없다. 동물자유연대 이지은 활동가는 “동물이 물건으로 규정되는 한, 지자체도 개입할 법적 근거가 부족해 사실상 손을 놓게 된다”고 말했다.
현행 동물보호법도 극단적인 학대 상황에만 처벌할 수 있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실제로 그늘 없이 햇볕에 노출되거나, 며칠에 한 번씩 사료를 받는 경우, 방치된 상처가 있어도 명확한 피해로 보기 어려워 처벌이 어렵다. 이지은 활동가는 “법률이 명확한 상해나 사망 등 가시적 피해만 다루고 있어, 장기적 방치나 환경 열악은 빠지게 된다”고 비판했다.
이와 같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제3의 법적 지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은 이미 민법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조항을 명시하고 있으며, 캐나다 퀘벡주, 체코 등도 동물의 독립적 법적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한국은 2021년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문구를 민법에 신설하려 했지만,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라이프 심인섭 대표는 “법이 사회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동물은 여전히 물건으로 묶여 있다”며 “현행법은 사람 1명이 50마리 동물을 관리해도 위법이 아니기 때문에, 구조적 학대를 양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동물을 보호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법률상 독립된 주체로 인정하는 개념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