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민주적 위임 조항 손보려다 '대총 개회 불가' 딜레마

-총학, 의결권 위임 10% 제한 개정 추진 -민주주의 훼손 논란은 여전한데다 -대총 무력화 우려까지 더해져 논란 -이달 중 확운위 거쳐 서면 의결 예고

2025-09-19     송민수 기자

우리 대학 총학생회가 대의원의 투표권인 ‘의결권’을 총학생회장에게 위임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한 지 약 1년 만에, 위임장 인정 개수를 제한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여전히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한다는 비판과 함께 향후 대총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 9월 9일 오후 7시 대학본부 3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2025년도 하반기 민족효원 대의원총회(대총)’. [송민수 기자]

19일 <채널PNU>의 취재를 종합하면 제56대 총학생회 ‘Around Us’는 지난 9월 9일 오후 7시 대학본부 3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2025년도 하반기 민족효원 대의원총회(대총)’에서 ‘2025학년도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칙·세칙·규칙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채널PNU> 2025년 9월 11일 보도). 개정안에는 ‘위임장은 재적 위원의 최대 10분의 1까지만 인정한다. 이를 넘길 경우 해당 회의는 무효로 한다’는 내용의 제16조의3 3항이 포함됐다. 이 조항은 지난해 10월 임시대총을 통해 신설된 ‘의결권 위임’ 조항(제16조의3 1항·2항)을 보완하기 위해 마련됐다.

문제는 이번 조항 신설만으로 ‘의결권 위임’ 조항이 안고 있는 본질적인 한계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의원의 의결권을 총학생회장에게 위임할 수 있는 조항을 두고 전문가들은 “학생 자치의 근간인 민주주의와 거리 먼 규정”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채널PNU> 2024년 11월 8일 보도). 한 대의원은 “신설된 조항이 위임장 남용을 막기 위한 장치이긴 하나, 총학의 권한이 커지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위임 조항은 지난 10월 서면으로 진행된 임시대총에서 사전 설명이나 논의 절차 없이 통과돼 ‘졸속 개정’ 논란을 빚기도 했다.

실제로 의결권 위임은 대총에서 반복적으로 활용되며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지난 5월 상반기 임시 대총에서는 재적의원 144명 중 29명이, 지난 9월 11일 하반기 정기 대총에서는 142명 중 32명이 의결권을 총학생회장에게 위임하며 실제 표결에 영향을 미쳤다. 지난 하반기 대총에서 학생복지국 사업계획 수정안은 정족수 75명 중 찬성 44명, 반대 3명, 기권 28명으로 가결됐지만, 위임장 32표를 제외하면 실제 현장 찬성 인원은 12명에 불과했다(<채널PNU> 2025년 9월 11일 보도). 재논의되어야할 사안이 총학의 위임권 행사로 통과가 된 것이다. 문헌정보학과 김규진(21) 회장은 “(대총) 현장에서 반대 의견이 많았지만 총학생회장이 가진 위임장 수가 많아 결국 가결되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개정안이 오히려 대총 개회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개정안에 따르면 재적의원의 10% 이상이 의결권을 위임할 경우 대총은 열리지 않는다. 지금까지 의결권을 위임한 규모로 볼 때 대총 개회가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하반기 대총의 재적 의원 142명 중 의결권을 위임한 인원은 32명으로 10%인 14명을 훌쩍 넘겼다. 자연대 이정민(수학, 21) 회장은 “생명자원과학대학처럼 이원화 캠퍼스인 경우 불가피하게 위임장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규모가 대략 11장”며 “10%라는 제한이 너무 적어 개회 자체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정보의생명공과대학 강재한(의생명융합공학, 20) 부회장은 “이번 대총의 실제 출석인원이 5~60명 정도”라며 “갈수록 학생사회 관심이 계속 떨어지는데 해당 10% 제한조항이 유의미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의결권 위임과 같이 대총 자체를 무력화할 수 있는 비민주적 조항이 아니라, 대총 참석을 독려하는 방향으로 논의의 초점을 옮겨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총은 학생총회 다음의 최고 의결기구로서, △총학생회 △단과대학 학생회 △독립학부 학생회 △동아리연합회의 회장·부회장 △학과 학생회장이 모두 참여하는 유일한 공식 행사라는 점에서 학생 자치의 근간이란 평가를 받는다. 1년에 정기 회의가 2회에 불과한 만큼, 대의원들이 미참석 및 의결권 위임이라는 직무유기를 저지르는 것을 막으면서도 대총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 실질적 방안 마련이 필요하단 것이다. 전자 표결, 비대면 회의 수단 활용, 미참석 명단 공개 등이 예로 거론된다.

현재 총학생회는 위임 조항이 갖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전면 폐지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최수인(영어영문학, 20) 총학생회장은 지난 9월 18일 <채널PNU>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의 한 표가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 위임장 조항을 아예 없애고 싶다”면서도 “이번 대총에서 위임장 제출자들의 사유를 듣고 보니 불가피한 상황이 많아 전면 폐지는 어렵다”고 답했다.

이번 개정안을 두고 총학은 오는 9월 23일 확대운영위원회에서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 최 총학생회장은 “대총에서 나온 사안을 향후 논의해 서면의결을 통해 이달 안에 인준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라며 “모든 질의와 대안을 가능성으로 열어두고 충분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대총 현장에서는 권한 위임 구조 자체를 다양화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자연대 이 회장은 “위임 개수를 제한하기보다는, 권한 위임에 대한 선택지를 타 학과, 단과대학, 총학생회장 등으로 다양화하는 것이 취지에 맞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또한 정의대 강 부회장도 “총학생회장에게 집중되는 위임장을 단과대별로 배분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