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에서 아킬레우스 역할 해야"

-어제 교수회 주최 세미나 열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 논의 -조희연 전 교육감·김종영 교수 등 참석 -정책 실효성·예산 분배에 대한 지적도

2025-09-19     박선영 기자

“부산대는 국가거점대학 육성에 있어 ‘아킬레우스’의 역할을 해내야 합니다.” 어제(18일) 우리 대학 교수회 주최로 열린 ‘국가거점대학 육성 정책과 부산대의 역할’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 수행에 있어 우리 대학이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제(18일) 우리 대학 기계관 대강당에서 열린 우리 대학 교수회 초청 세미나 ‘국가거점대학 육성 정책과 부산대의 역할’에서 발표하고 있는 경희대 김종영(사회학) 교수. [박선영 기자]
어제(18일) 우리 대학 기계관 대강당에서 열린 우리 대학 교수회 초청 세미나 ‘국가거점대학 육성 정책과 부산대의 역할’. [박선영 기자]

어제(18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우리 대학 기계관 대강당에서 진행된 세미나는 ‘국가거점대학 육성 정책과 부산대의 역할’ 대주제로 삼고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주요 논제로 다뤘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전국 9개 국가거점국립대(국거대)에 서울대 수준의 재정 지원을 통해 상향 평준화를 도모하는 정부의 핵심 교육 정책이다.

세미나에는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과 경희대 김종영(사회학) 교수가 발제자로 참석했다. 이어 우리 대학 △김려실(국어국문학) 교수 △황성욱(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기획처장 △유인권(물리학) 교수 △주윤정(사회학) 교수 △조인식 국회입법조사관이 패널로 참여해 토론을 이어갔다. 이용재 교수회장은 개회사에서 “한국 사회의 민주화 흐름과 산업화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온 우리 대학의 새로운 비전과 국거대 발전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공론장”이라고 말했다.

■“컨트롤타워를 두고 동반 성장 추구해야”

조 전 교육감은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수도권 중심 체제와 지방 소멸이라는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는 교육 개혁”이라고 정의했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고착된 대학 서열 구조를 완화하고, 국거대 간 연합 체계를 구축해 전국적 균형 발전을 꾀하는 구상이라는 것이다. 조 전 교육감은 “과거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경쟁 중심의 차등 보상을 통해 수직 서열 체계가 고착화됐다”며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수평적 다양성을 실현할 교육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정책의 실현 가능성과 구체적 방법론에 대해 조 전 교육감은 ‘대통령 직속 컨트롤타워’를 제안했다. 행정 체계에 자리 잡은 관료제는 각각의 책임과 의무가 정해져 있으나, 해당 정책은 부서간 뚜렷한 경계가 없어 관료적 분업 체계에 딱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10년간의 행정 경험을 비춰볼 때, 모든 부서는 각개약진하기 마련”이라며 “융합적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국토부의 균형 발전 정책 △산업부의 지역 산업 지원 △과기정통부의 AI 전략 등 타 부처와의 정책 연계를 강조하며 “서울대에 부담을 지우지 않되 공동학위제 등 개방적 협력 구조를 통해 국거대와의 유기적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산대, 적극적으로 투쟁해야”

김종영 교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단순한 교육 정책이 아닌,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의 3.0 버전이라고 규정했다. 이는 2004년 경상국립대 정진상(사회학) 교수가 제안한 입시제도 철폐 및 대학입학자격시험제와 전 국립대가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서 입학생을 공동선발하는 안의 연장선에 있다. 김 교수는 “이제 이 정책은 국가 정책화와 관료화의 단계에 접어 들었다”고 진단하며, 전체 고등교육 체계의 재편과 학벌 타파, 인구 소멸 대응 등 포괄적 전략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김 교수는 우리 대학의 현재 모습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속 전장 밖의 ‘아킬레우스’로 비유했다. 일리아스 신화 속 그리스 연합군에서 가장 강한 전사로 그려지는 아킬레우스가 나타나면 전세가 뒤집히고 승리를 얻어낼 수 있지만, 신화 초반 그는 분노 때문에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방관한다. 김 교수는 이를 우리 대학에 빗대어 “부산대는 아킬레우스처럼 핵심 전력일 수 있으나, 지금까지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며 “개혁은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예산 확보와 정책 실현을 위해 부산 시민, 언론, 정치권, 대학 구성원이 함께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산 분배 기준 설립부터”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는 정책의 실현 가능성과 철학, 구조 등에 대한 다양한 비판과 대안이 제시됐다. 국회입법조사처 조인식 조사관은 “단순한 예산 투입만으로 국거대가 서울대 수준이 되긴 어렵다”며 정책의 근본적인 접근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조사관은 또한 “교육부 관계자로부터 예산 분배 기준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균등 분배인지, 선택적 집중인지에 따라 정책 효과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논의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책 모델로 제시된 ‘미국 캘리포니아 UC 체제’의 국내 적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김려실(국어국문학) 교수는 “부산시가 과연 캘리포니아 주처럼 국거대를 지원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2023년 UC 샌디에이고 방문 당시 연구 환경이 쇠락하고 있어 UC 모델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술 중심으로 편중된 현재의 대학 연구 인프라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유인권(물리학) 교수는 “우리나라 대학은 기술 분야에 편중돼 있어 진정한 의미의 연구중심대학이 아니다”라며 “대학은 교육을 기반으로 기초학문을 살리고 국립연구소를 중심으로 인적·물적 공동 연구 인프라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인문·예술·기초과학 등 비계량 학문의 소외 가능성도 지적됐다. 김려실 교수는 “정책이 글로벌 경쟁력이라는 이름 아래 미국과 중국의 연구 중심대학을 참조하고 있지만, 정작 학문적 다양성과 문화적 기반에 대한 고려는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성과를 계량화하기 어려운 학문들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며 “지역 산업 연계형 특성화 분야에 집중할 경우 결국 학문 간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어 대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주윤정(사회학) 교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 구현에 앞서 ‘지방 소멸’ 현상이라는 오래된 문제에 대한 연구와 고민이 더 필요하다는 점을 짚었다. 주 교수는 “해당 정책을 통해 지역 정주율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대학 생활 동안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전국의 학생들이 부산에 올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세미나에 대해 황성욱(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기획처장은 정책 공론화의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교원으로서 보면 우리 대학 내부에는 아직 ‘이 정도면 됐다’는 안일한 분위기가 있는 듯하다”며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이면 색다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도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획처장으로서 우리 대학이 이제 전장 속의 아킬레우스가 되어야 한다는 지적에 공감한다”며 “대학본부는 모든 구성원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이 역할을 실현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