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원人side] "'살아 움직이는 법', 후배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어"
이미선(법학) 석좌교수 인터뷰 -최연소 헌법재판관으로 화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맡기도 -"노동법 취지 살리는 판결 중요" -"법률 해석은 사회 변화 반영해야"
2019년 최연소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돼 화제를 모았던 이미선 전 헌법재판관이 모교로 돌아왔다. 법관으로서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 사회적 약자를 위해 힘써온 그는 헌법재판소 재직 중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을 맡으며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6년 임기를 마친 그는 올해 4월 헌법재판소를 떠나, 지난 9월 15일 우리 대학 법학과 대학원 석좌교수로 새 출발을 알렸다.
우리 대학 법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1994년 제36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법조계에 입문했다. 이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시작해 청주지법, 수원지법, 대전고법을 거쳐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부 부장판사 등 요직을 역임했다. 법원 내 손꼽히는 노동법 전문가로 평가받으며 2019년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돼 헌정사에 이름을 새겼다. <채널PNU>는 지난 9월 29일 법학관에서 법과 정의를 현장에서 구현해 온 그의 경험과 헌법 연구자로서의 비전을 들었다.
△법조인을 꿈꾸게 된 계기가 있나요?
-특별한 계기라기보다는, 예전에는 공부 좀 한다 싶으면 판·검사하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듣고 자라다 보니 저도 모르게 법조계로 방향을 잡았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시절 사회시간에 ‘법과 제도’를 배웠는데, 따로 암기하지 않아도 이해가 되고 시험 점수도 꽤 좋더라고요. 그래서 법학이 적성에 맞다 싶어 부산대 법학과에 88학번으로 입학했고, 일반대학원 법학과 재학 중이던 1994년 제3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학부생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학부 3학년 2학기부터 본격적으로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학회 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당시에는 사회과학 공부가 대학생의 필수 요건처럼 여겨져서, 동기들과 함께 경제법학회에 들어가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토론도 하며 학회 생활을 했습니다.
△우리 대학에서 학·석사를 모두 마치고, 이번에는 석좌교수를 맡으셨습니다. 모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신 것 같은데요.
-학교에 다닐 땐 모교가 나한테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죠. 하지만 학교를 떠나면 알게 됩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모교는 울타리이자 버팀목’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특히 헌법재판관 임명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는데, 부산대 동기들이 많이 지지해 준 덕분에 무사히 임명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모교에 대한 애정이 좀 각별합니다. 지난해엔 ‘자랑스러운 부산대인상’도 받았는데, 30여 년 동안 탈 없이 공직 생활을 잘 마무리했다고 격려하는 차원에서 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좋은 상을 주셔서 너무 송구스럽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석좌교수로 부임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30여 년 법조인으로 근무하면서 체득한 실무 경험을 모교 후배들에게 전해 주고 싶었습니다. 마침 퇴임할 무렵, 학교 측에서 석좌교수직을 제안해 주셔서 오게 됐습니다. 법률은 실생활에 적용되기 때문에, 이론과 실무에서 작동하는 방법이 꽤 다른데요. 학문으로서 연구하는 법률 이론이 실무에서는 어떻게 작용하는지 소개하고 싶습니다. 헌법이나 법률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구현돼야 하는지,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학생들과 함께 연구하고 고민하고 싶습니다.
△노동법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으신데, 이번에 맡으신 수업 설명도 부탁드립니다.
-사실 대학원에서는 민법을 전공했어요. 법관으로 있을 때도 노동 사건을 많이 다루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2010년부터 약 5년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하며 근로 사건을 담당하게 됐어요. 노동법은 지향점이 있고, 정책적인 내용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법과 차이가 있어요. 그래서 처음 노동 사건을 접할 때에는 좀 혼란스러웠지만, 점차 노동 사건이 우리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걸 알게 됐고, 근로자를 보호하고 노동법의 취지를 살리는 판결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이번 학기 대학원에서도 ‘노동기본권론’ 강의를 맡았는데요. 헌법은 근로의 권리와 함께 노동3권, 즉 단결권, 단체 교섭권, 단체 행동권을 보장하는데, 보통 이 권리들을 노동기본권이라고 합니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기본권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노동기본권이 헌법에서 어떤 지위를 가지는지 등을 발표와 토론 방식으로 수업하려고 합니다. 특히 제가 법원과 헌법재판소에 있을 때 검토했던 판결과 결정들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논점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판사를 하며 힘든 점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검사가 주인공인 드라마는 많지만, 판사가 주인공인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그만큼 판사의 일과는 단조롭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또는 두번 법정에서 재판을 하는 외에는 거의 책상 앞에 앉아 기록과 자료, 판례를 들여다봐서 눈이 빨리 나빠지기도 할 정도인데요. 그리고 일하다 보면 고독할 때가 많습니다. 모르는 게 있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을 땐 동료나 선배 판사에게 물어보기도 하지만, 결국 결정을 내려야 하는 건 담당 판사 혼자입니다. 그 결정이 누군가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기에, (판결하는 입장에서) 상당한 고독감과 중압감을 느낍니다.
△판사로 재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요?
-모든 사건이 다 나름의 무게가 있어 하나만 고르기는 어려운데요. 그래도 ‘출입국관리법’ 사건이 기억에 남습니다. 외국인을 바로 강제 퇴거할 수 없는 경우, 외국인보호소에 수용하는 제도가 있었어요. 하지만 기간에 한도가 없어 신체의 자유가 박탈된 채로 무기한 수용할 수도 있었습니다. 해당 외국인이 형사범이 아닌 경우에도 그랬죠. 당시 국제사회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던 이 제도가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했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이 결정으로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 인권 지수가 좀 상승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소년 사건도 기억에 남습니다. 법원에 근무할 당시 1년간 소년 사건을 담당하면서 소년범 문제는 소년만이 아니라 가정, 학교, 공동체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요즘 소년범이 점차 흉악해지다보니 좀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도 많잖아요. 하지만 저는 관심과 교육을 통해서 소년범이 교정될 기회를 부여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소년범들은 사실상 가정이나 학교, 공동체로부터 방임된 아이들이거든요.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거죠.
△최연소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되던 당시 심정은 어땠나요? 묵묵히 일을 이어오신 원동력도 궁금합니다.
-제가 최연소로 임명된 것이 이례적인 일이라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같이 근무했던 판사님께서 “이 자리에 임명된 건 역사적·사회적 의미가 있을 것이니, 그걸 한번 실현해 보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을 오래 해올 수 있었던 건 우선 재판 업무가 적성에 맞았기 때문이죠. 흩어져 있는 사실들을 정리해서 논리를 구성해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흥미롭고 저와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또 주변 동료들의 지지도 큰 힘이 됐습니다. 무엇보다 가족의 희생도 있었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재판 당시,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국민 여러분께서는 결정이 나오기까지 왜 시간이 오래 걸렸는지 많이 궁금해하시는데요, 당시에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만 진행됐지만, 이후 법원에서 해당 사건과 관련된 형사재판이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 예정되어 있었어요. 이때 헌법재판소와 법원이 인정한 사실관계가 달라지면 결정이나 판결의 신뢰성이 훼손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양 기관의 사실관계 인정에 차이가 없도록 정밀한 사실 확인에 특히 신경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에는 여러 한계가 있다 보니 시간이 좀 걸렸던 것 같습니다.
△헌법이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나요?
-현행 헌법상 행정부에 속해있는 감사원을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기관으로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 해 전, 선거관리위원회의 직원 채용 비리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때 감사원이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해 직무감찰을 시행하였습니다. 그런데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를 행정부에 속한 감사원이 직무감찰을 하는 것이 헌법에 맞는지가 쟁점이 됐습니다. 당시 이를 다룬 권한쟁의심판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해당 문제는 감사원이 행정부에 속해 있어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감사원을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하거나 적어도 국회 소속으로 변경하여 직무감찰의 공정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추가적으로 재판과 민심의 괴리도 얘기하고 싶은데요, 국민들은 주로 언론 보도를 통해 사건을 접하지만, 사건에는 언론이 다루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습니다. 법원은 그러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재판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판 결과가 국민들이 생각한 것과 다르게 나올 수 있는데요, 언론에 나온 것만이 사건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국민들께서 고려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오해가 쌓이다 보면 법원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수 있는데, 그러한 점이 안타깝습니다.
다만, 때때로 법원이 사회나 가치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한 고민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재판은 결국 법률의 해석이고, 법률 해석은 사회 변화를 반영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에게 대한민국 법과 민주주의 체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으신가요?
-‘한국 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헌법재판소의 연구회에서 연구관들이 읽고 토론했던 책으로 기억하는데요. 모든 개인이 사회 속에서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서 평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 정의의 핵심이라는 내용입니다. 이에 대해 저도 공감을 하고 우리 민주사회 법질서의 정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바쳐서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치열하게 살았던 경험은 인생의 훌륭한 자산이 됩니다. 그 경험 덕분에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 있게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 후배들에게 인생의 한 시기만큼은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아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