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예원정’ 청춘의 순간들이 머무른 그곳

[채널PNU 기획] 아듀, 예원정 -내년 초 사회관 개축과 함께 철거 -40년 넘게 자리한 우리 대학 명소 -추억 한 아름 품고 역사 속으로

2025-11-06     송민수 기자

무채색의 건물들 사이 푸르름이 일 년 내내 머무는 예원정은 풍경이 아름다운 명소로서 학내 구성원들의 발걸음 속에 그 존재감을 각인시켜왔다. △미리내골 △콰이강 다리와 함께 우리 대학 명소로 꼽히는 예원정은 단순 휴식 공간을 넘어 사회대 축제인 문창제를 비롯해 다양한 교내 행사와 각종 시위, 학과 수업과 동아리 활동이 진행돼 온 복합 공간이다.

40년 넘게 학내 구성원과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예원정은 다음해 2~3월 사회관 개축 공사로 인해 철거된 뒤 원형 보존 없이 새로운 공간으로 구성된다(<채널PNU> 2025년 9월 26일 보도). <채널PNU>는 1979년 12월 현행 사회관과 함께 조성돼 현재까지 우리 대학 명소로서 명맥을 이어온 예원정의 역사를 살펴보고 이 곳과 얽힌 학내 구성원들의 사연을 들었다.

지난 9월 24일 오후 3시 사회관 앞에 위치한 예원정의 파고라와 원형 잔디밭이다. 원형 잔디밭과 파고라, 붉은 벽돌과 녹색은 예원정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연상 되는 것들이다. [송민수 기자]
지난 10월 1일 오후 2시 사회관 건물 앞에 위치한 문창솔 쪽 진입로를 따라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예원정의 이름을 새겨 놓은 비석이다. 전면에 예원정의 한자 이름이 새겨져 있고 후면에는 비석의 건립일과 예원정이라는이름의 의미가 새겨져 있다. [송민수 기자]
2018년 10월 16일 부산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페이스북에 업로드된 2018년 문창제의 행사 영상이다. 원형 잔디밭 위에  가요제 및 장기자랑을 위한 무대가 설치되고 있다. [부산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페이스북 갈무리]

초창기 예원정은 현재와 비교하면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사회관이 교양학관으로 불리던 초창기 시절 촬영된 교양학관신축공사조감도 사진에 따르면, 단순히 넓은 평지 운동장과 그 주위를 화단과 나무들이 감싸는 형태였다. 기록에 따르면 지금 같은 휴식 공간보단 야구나 공을 차는 작은 운동장으로 사용됐다. 우리 대학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한 사회과학대학 장덕현(문헌정보학) 학장은 과거의 예원정에 대해 “현재 우리 대학 박물관 앞의 잔디밭이나 넉넉한 터의 잔디밭 같은 모양이었다”고 말했다.

예원정이 현재와 같은 원형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85년부터다. 1985년 1월 7일부터 시작한 사회관 앞 잔디밭 보수공사가 학생 휴게시설 설치 공사를 거쳐 현재 예원정의 산책로와 진입로를 비롯한 대부분의 휴게시설이 마련됐다(부대신문 1985년 2월 23일 보도).

지금의 원형 잔디밭 자리에는 연못 형태의 분수대가 있었다. 분수대에 대해 우리 대학 사회복지학과 80학번 출신인 최송식(사회복지학) 교수는 “밖에서 술을 사와 예원정 분수대에서 같이 나눠 마시며 이야기도 나누고, 그러다가 친한 친구들은 또 분수대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비슷한 시기 재학한 장 학장 또한 “분수대 수심이 얕아 무릎 정도밖에 안됐다”며 “쉬는 시간마다 장난친다고 누구 하나씩 물에 빠지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예원정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완성 된 건 1988년 3월 10일 기존의 연못 분수대가 철거되고 잔디밭으로 환원되면서부터다(부대신문 1988년 3월 28일). 이후 1990년대 동안 사회대와 사회대 학생회가 협력해 잔디를 가꾸면서 현재의 원형 잔디밭이 됐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동안 파고라에 그물망과 전등이 설치돼 흙과 벌레가 떨어지는 불편한 문제가 해결되고 쾌적해졌다. 2022년 새벽벌도서관 2층에 새벽별당이 완공되며 새벽별당과 예원정을 연결하는 구름다리가 설치됐다.

한편 예원정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우리 대학 홈페이지 부산대 소식 제671호에 따르면 예원정이라는 이름은 2009년 2월경 당시 진행된 학내 공모를 통해 정해졌다. 해당 공모에서 사회관 건물앞의 소나무인 문창솔도 함께 명명됐는데 각각 이름의 의미를 기리는 비석이 2009년 2월 21일 함께 세워져 지금까지 관리되고 있다. 예원정이라는 이름이 붙기 이전에는 △사잔 △사회대 앞 잔디밭 △사회대 잔디밭 △사회대 정원 △사회대학 앞 정원 등으로 불렸으며 아주 초창기에는 아데나이 광장으로도 불렸다. 예원정이라는 이름은 당시 사회대 행정실 직원이 응모한 것으로 ‘사람다움의 근본인 예(禮)의 근원이 되는 곳’을 의미한다.

■학생 의사 표출의 공간

민주화운동 시절 예원정은 학내 학생들의 시위·집회를 위한 학생운동의 주요 공간이었다. 당 시 학생운동을 주로 사회대 학생들이 주도한 만큼 자연스레 예원정에서 시국 관련 집회나 초청강연이 열렸다. 최송식(사회복지학) 교수는 “당시 시위대가 예원정에서 모여 넉넉한터를 거쳐 학교 밖으로 진출했다”며 “예원정은 우리 대학 학생 민주화운동의 출발점이자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시위하는 학생들이 학내 상주한 경찰에게 체포되지 않기 위해 지금은 제거된 나무에 올라가 버티다 밑에 불을 질러 불탄 나무가 몇 그루 있었었다”고 회상했다.

민주화운동 이후에도 예원정은 학생들의 정치적 의사가 표출되는 공간이었다. 지난해 4월 제56대 총학생회장을 규탄하는 학과점퍼 시위(과잠 시위)가 근래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10개의 단과대학, 21개의 학과에서 모인 64개의 과잠이 4월 3일부터 이틀간 예원정에 나열됐다(<채널PNU> 2024년 4월 5일 보도). 시위를 주도했던 이석재 (정치외교학, 19) 씨는 시위 장소로 예원정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이전 민주화운동 세대 등을 걸쳐 예원정이 의사 표출의 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민주사회 속 분명한 권리인 시위와 집회가 큰 결심이 필요한 행위라는 인식을 허물고자 접근성이 높은 예원정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학생 자치의 거점지

사회대 행사인 문창제 또한 예원정에서 간간이 진행됐다. 2023년 진행된 문창제는 10.16기념관에서 가요제를 운영하고 예원정에서는 사회대 각 학과의 성격을 반영한 미니게임 체험 부스를 운영했다(<채널PNU> 2023년 11월 3일 보도). 2018년 문창제의 경우 가요제와 부스 구별 없이 예원정에서 완전히 진행됐다. 당시 행사를 주도했던 사회대 조한수(정치외교학, 12) 회장은 당시 예원정 원형 잔디밭에 무대를 설치하고 사회대 밴드 동아리인 해도비를 비롯해 학과별 가요제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조 전 회장은 “사회대학생뿐만 아니라 타 단과대 학생들과 외국인 학생들까지 함께 축제를 즐겼던 것이 기억난다”며 “휴식이 필요한 누구에게나 공간을 제공해 준 고마운 쉼터였다”고 예원정을 기억했다.

학생들이 주최한 행사도 예원정에서 열렸다. 최지혜 (정치외교학, 22) 씨는 2023년도 예원정에서 진행된 ‘예원정 시네마’에서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며 “2학기 중간고사 이후 친구끼리 예원정에 모여서 돗자리 깔고 치킨을 먹으며 즐겁게 영화를 봤다”고 말했다. 홍기민(문헌정보학, 19)는 “새내기 때 신입생 환영회 레크레이션을 예원정에서 진행했던 기억이 있다”며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사회대뿐만 아니라 다른 학과도 신입생 환영회 때문에 예원정에 오곤 했다”고 말했다. 2022년 3월 31일 문헌정보학 학생회는 신입생 환영을 위해 AR게임 ‘미션 아카이브’가 예원정에서 열렸다(<채널PNU> 2022년 4월 1일 보도).

■동아리와 배움의 터전

예원정은 다양한 교내 동아리의 활동 무대기도 했다. 우리 대학 중앙동아리인 사진예술연구회는 매년 봄·가을 진행되는 정기전시 오프닝을 예원정에서 연다. 사진예술연구회의 54기 출신인 유영훈(전기공학, 09) 씨는 “학교 인근 상인과 선배 등을 비롯한 많은 분의 지원 덕분에 사진 전시를 열었다”며 “원형 잔디밭을 따라 둥글게 배치된 이젤에 설치한 액자가 떨어져 깨졌던 일도 추억”이라고 말했다. 중앙동아리 매직PNU의 한 회원은 “다른 친구들과 예원정에서 실외 공연에 대비해 스테이지 마술을 연습하곤 했다”고 말했다.

예원정을 배경으로 활동한 동아리도 있었다. 홍기민(문헌정보학, 19) 씨는 예전에 사회관에서 거주하는 고양이들을 돌보는 동아리가 있었다“며 “예원정 풀숲에 고양이 집이 있어 거기에 사회관 고양이인 ‘역시’나 ‘호야’의 밥을 챙겨주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그는 “아픈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가려고 포획망을 들고 예원정을 뛰어다닌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예원정은 재학생들에게 이색적인 학업 공간이기도 했다. 추경주(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20)씨는 “드론을 다루는 실습수업이 예원정에서 열렸다”며 “동그란 예원정을 따라서 드론 조종 연습도 해보고, 멀리서 바라본 학교 등을 찍으면서 애교심도 키울 수 있었다”고 기억했다. 또 다른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의 한 재학생은 “학과 연구회 활동에서 카메라 사용법을 배울 때 학과 선배가 예원정에서 가르쳐줬다”고 말했다.

한편, 예원정을 포함한 사회관 개축 공사는 2029년 완공 및 개관을 목표로 다음해 2~3월 시작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