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지난해 발표대로 통폐합 강행
-"학생 의견 반영 전혀 없어" 반발 여전
-지역 대학들도 학과 줄줄이 통폐합
-생존 전략이라지만 효과 의문 여전

지역 대학의 학과 통폐합 물결이 거센 가운데 우리 대학도 독어·불어교육과를 통폐합하기로 했다. 이로써 부산 지역 유일의 독어교육과와 부산・울산・경남 지역 유일의 불어교육과가 사라지게 됐다. 학령인구 감소와 산업구조 개편 등 변화의 바람에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지만 학과 통폐합이 정답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대학본부와 불어교육과 학생들이 학과 통폐합을 두고 소통의 갈등을 빚고 있다. (c)김신영 기자
대학본부와 불어교육과 학생들이 학과 통폐합을 두고 소통의 갈등을 빚고 있다. (c)김신영 기자

지난 2월 2일 채널PNU 취재를 종합하면, 우리 대학은 3월 들어온 23학번을 마지막으로 독어・불어교육과는 더 이상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고 각각 인문대학의 독어독문학과와 불어불문학과로 통폐합한다. 지난해 3월 31일 열린 제1기 학문단위 구조개편 설명회 이후 해당 두 학과 재학생들의 거센 반발이 일었지만(<채널PNU> 2022년 4월 1일 보도), 대학본부의 입장엔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23학번까지의 재학생들은 기존 교육 과정을 따르며 졸업 연도인 2030년 2월까지만 학과 명칭이 유지된다. 

대학본부는 지난해 3월 설명회 이후 학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었다는 입장이다. 우리 대학 교무과 설우성 팀장은 “지난해 3월 설명회 이후 불어교육과 및 독어교육과 전체 학생 면담(지난해 6월 2일)과 불어교육과 학생대표 면담(지난해 6월 27일)을 갖고 두 차례에 걸쳐 학생들의 의견을 청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학과 학생들은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불어교육과 나웅철 학생회장은 “6월에 만났을 땐 원론적인 얘기는 이미 다 끝났고 통폐합이 확정된 것처럼 면담이 진행됐다”며 “학생들과 아무런 논의 없이 독단적인 진행을 서두르는 게 보였다”고 말했다. 전경옥(불어교육, 21) 씨는 “애초에 학생 의견 수렴이나 토의 등을 건너뛰고 설명회를 개최해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는 점에서 학생 의견을 묵살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마땅치 않았다. 이효양(불어교육, 21) 씨는 “불어교육과의 경우 온라인 폼을 통해 학년별로 의견을 수렴한 적이 있는데, 그 외에 지난해 1학기 이후로 답변을 받거나 간담회를 가진 적은 없다”며 “계속해서 의견을 외부에 알리려고 시도했으나 학과 자체의 적은 인원 때문에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학우들 모두 통폐합을 반대하는 분위기”라며 “면담 당시에도 학생대표는 본부가 내세운 근거로는 학우들을 전혀 납득시키지 못한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폐합을 급속도로 진행하려 했다는 점에 대해 불만을 표했지만 면담을 통해 달라진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학본부 측은 “독어교육과는 현재 비대위 체제로 인해 소집 자체에 어려움이 있으며, 불어교육과는 학생회장에게 추가 의견 청취를 위해 연락했으나 학생회장과 일정이 잘 맞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학과 통폐합이 최선인가

이 같은 학과 통폐합은 지역대가 겪고 있는 전국적인 현상이다. 지난해 9월, 2019~2021년 전국 대학의 통폐합 학과 총 700개 중 지방대가 539개(77.0%)였다. 교육부의 ‘전국 일반대 학과 통폐합 신설 현황 결과’에 따르면, 최근 10년 간 부산 지역 4년제 대학 14곳에서 통폐합된 학과는 306개. 경남지역에서는 148개 학과,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260개 학과가 통폐합됐다. 

교욱부 '전국 4년제 대학 학과 통폐합 현황'에 따른, 최근 10년(2013~2022년) 간 부산, 경남, 대구, 경북 지역 4년제 대학에서 통폐합된 학과들. (c)임하은 부대신문 국장
교욱부 '전국 4년제 대학 학과 통폐합 현황'에 따른, 최근 10년(2013~2022년) 간 부산, 경남, 대구, 경북 지역 4년제 대학에서 통폐합된 학과들. (c)임하은 부대신문 국장

수도권 집중화,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지역 대학은 생존을 위해 비인기 학과 통폐합과 세부 전공 통합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부경대 교무팀 정영하 팀장은 “학교 경쟁률 제고를 도모하고자 학과 구조를 개편했으며 이것이 정시 경쟁률 향상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고 말했다. 우리 대학 대학본부도 △학령인구 감소 △학문단위 간 높은 유사성 조정 필요 △사범대 소속 학과의 경쟁력 확보 △학부 운영 효율성 확보 등을 통폐합의 근거로 들었다.

지역 대학 위기와 더불어 취업률이 낮거나 비인기 학과를 폐지함으로써 대학의 학문단위를 산업적 수요에 맞춰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도 학과 통폐합을 몰아붙이고 있다. 김종기(불어교육) 교수는 “사범대학은 순수학문을 하는 곳이 아니라 특수목적대학인데 임용시험 TO가 20년 넘게 부산 지역에 한 번도 안 나니까 사회적으로 학과를 통폐합시켜서 학교 경쟁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며 “학과 입장에서 유지하고 싶어도 수요가 적은 게 사실이니까 버틸 힘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과 통폐합을 단행해도 지역 대학의 어려움은 여전했다. 부경대는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작년 106개 학과 구조조정(통폐합 42개, 신설 64개)을 단행했지만 입시 경쟁률은 오히려 하락했다. 수시모집 경쟁률 7.13대 1, 정시모집 경쟁률은 6.26대 1로, 2022년(8.4대 1)보다 떨어졌다. 동의대도 2017년에 학과 구조를 대폭 개편(학과 통폐합 42개, 신설 32개)했지만 입시 경쟁률은 2020년 7.4대 1, 2021년과 2022년 5.6대 1로 하락하고 있다. 영산대의 경우, 2013년~2022년 10년간 45개 학과 통폐합, 32개 학과를 신설했지만 입시 경쟁률은 2020년 5.2대 1, 2021년과 2022년 3.6대 1로 크게 하락하고 있으며 올해 정시모집 경쟁률은 공개하지 않을 정도로 좋지 않았다.

■정체성 고민 없는 통폐합

우리 대학에선 사범대학의 학과가 인문대학으로 통폐합되는 방향성을 두고도 비판이 일었다. 이윤권(불어교육, 20) 씨는 “인문대학은 인간의 언어, 문학, 철학 등에 대해 연구하고 새로운 인문학적 진리를 찾는 역할을 한다면, 사범대학은 각 교과를 가르치는 교원을 양성하는 곳이다. 교원 양성뿐 아니라, 교수법 연구・개발, 교과서 편찬 등 많은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그저 같은 언어를 배운다는 한 가지의 이유만으로 합쳐버리는 통폐합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사범대학 학생들은 전원 교직과목을 수강할 수 있지만, 인문대학은 교직과목 수강 인원에 제한이 있기에 독어, 불어교육 전공을 선택한 학생들이 임용 준비에 불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대학본부는 교직과목 이수 인원을 증원해 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설 팀장은 “인문대학의 일반교직 이수 인원을 증원할 수 있는지 여부는 교육부의 승인도 필요하고 학교 내의 여러 가지 요인도 고려해야 하므로 확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산업구조에 학문단위를 맞추려는 대학들의 행보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대학이 ‘배움’이 아니라 ‘취업’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이효양 씨는 “학과 통폐합을 진행함으로써 각 과마다의 특성이 단일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생각한다”며 “다양한 학문을 탐구할 수 있다는 ‘대학’의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경옥 씨는 “단순히 실리적인 이유만으로 폐과하는 섣부른 선택 대신, 고등교육과 학문을 교육하고 연구하는 대학이라는 공간에 걸맞은 선택을 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생은 학교의 주체이자 존립의 이유"라며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고 최우선적으로 학생들을 이해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