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전동차 화재로 192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런 사회적 참사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합리적으로 보이는 비용절감이 위험을 가중시키기도 하고, 시스템 미비 혹은 운영 주체들의 무책임이 중첩되어 참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사회적 참사는 예측이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의 참사로부터 배워야 한다. 과거의 참사를 덮어두기만 해서는 결코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수사당국은, 대구지하철 참사의 1차 원인은 사회 부적응자의 방화이고, 2차 원인은 대구지하철 노동자들의 위기대처 능력 부족이라고 했다. 방화자와 기관사, 사령실, 역무원이 가장 큰 법적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더 질문해야 한다. 사망자 대부분은 불이 난 차량이 아니라, 화재발생 이후 진입한 맞은편 차량 승객들이었다. 왜 맞은편 차량에까지 불이 옮겨붙었던 것일까. 왜 사령실과 기관사는 화재 발생 사실을 알면서도 무정차통과를 지시하거나 하지 않은 것일까. 왜 그들은 현장 대처에 무능력했을까.
지하철 차량의 내장재, 벽면, 천장 등이 불쏘시개였다. 대구지하철공사가 ‘비용절감’을 이유로 불량 내장재를 승인 혹은 묵인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초로 불이 난 차량의 기관사는 소화기를 들고 불을 끄는데 급급하여 사령관실에 제대로 보고하지 못했다. 맞은편 차량 기관사는 ‘중앙로역에 화재가 발생했으니 조심히 들어오라’는 지시를 받고 진입하여, 사령관실의 지시만을 기다리고 우왕좌왕했다. 상명하복과 정시운행이라는 지하철공사의 조직문화, 위험에 대비한 훈련 부족이 문제였다.
유가족들이 끈질기게 원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기 때문에 차량 내장재의 위험이 밝혀졌다. 지금은 전국의 지하철이 모두 불연재로 만들어져있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는 안전보다는 비용절감을 앞세우고, 무인승차와 1인승무 등 인력 감축에 나선다. 아무리 매뉴얼을 많이 만들고 방재설비를 해도, 안전인력이 충분하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자율성이 없고, 판단을 할 수 있는 경험과 훈련이 축적되지 않으면, 지하철 안전은 보장되기 어렵다. 정부는 대구지하철참사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대구시와 대구지하철공사는 이 참사를 빠르게 수습하고 기억을 지우려고 했다. 그들이 현장을 훼손하는 바람에, 유가족들이 고인들의 유류품과 뼛조각을 쓰레기더미에서 찾아내기도 했다. 대구시는 추모공원과 추모묘역 조성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팔공산 추모공원은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라고 불리고, 희생자들은 그곳 잔디밭에 안내문조차 없이 잠들어있다.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참사를 덮으려고만 하니, 개인들은 정부를 불신하고 각자도생하게 된다. 정말로 위험사회가 되는 것이다.
언제 어떤 참사가 발생할지 알 수 없는 복잡한 시대이다. 이럴 때 정부는 시민들의 ‘안전권’을 보장하여 위험의 예방에 힘쓰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하여 훈련하고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세월호참사나 이태원참사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까지 정부는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민들이 중요하다. 진실을 알 권리, 추모하고 기억할 권리, 위험에 대해 알고 참여할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참사를 기억하고 피해자의 곁에서 함께 목소리를 내자. 그래야 정부도 자신의 역할을 다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