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 선언 준비·동참한 김호범(경제학) 교수 인터뷰
-우리 대학 전국 최대 규모 성명
-"왜곡된 역사 인식 자체에 대한 비판"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에 대한 시국 선언의 물결이 대학가를 뒤엎고 있다. 우리 대학에서도 지난 4월 11일 교수 연구자 280명이 동참한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전국 최대 규모로 주목을 받았다. <채널PNU>는 시국 선언을 준비하고 성명에 동참한 김호범(경제학) 교수를 지난 4월 27일 연구실에서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지난 4월 27일 연구실에서 만난 김호범(경제학) 교수. [전형서 기자]

△제3자 변제안에 대한 교수 시국 성명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러 대학에서 시국 성명을 하고 있어요. 부산에서는 동아대와 경성대가 먼저 했고, 우리 대학도 동참했습니다. 우리 대학의 시국 성명 이후에도 부산 지역 교수와 지식인 486명이 연합해서 19일 성명서를 냈고요. 서울대부터 시작해서 고려대, 전남대 등 대학 곳곳에서 제3자 변제안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이렇게 전국적인 움직임이 일어나는 이유는 간단해요. 대다수 국민이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 대학에서도 규탄의 움직임이 있었던 거군요.

-지난 3월 16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이 있었잖아요. 거기서 제3자 변제안이라는, 상당히 낯선 방식이 동원됐죠. 제3자 변제안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큰 문제가 있지만, 그 방식이 제기되기까지의 과정에도 굉장한 문제가 있어요. 그런 방식을 동원하게 만든 현 정부나 주변 참모들 사이에 왜곡된 역사적 인식이 공유돼 있는 거예요. 시국 선언을 하게 된 것도 이것 때문입니다. 이번 시국 선언은 단순 제3자 변제 방식을 넘어, 역사 인식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준비 과정에 대해 소개해 주신다면요.

-구체적으로 관여한 교수는 열 명 정도입니다. 식사를 하면서 현 시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의사 표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역할을 분담해서 빨리 진행하게 됐습니다. 한 교수는 초고를 작성하고, 또 다른 교수는 인터넷과 SNS를 통해 관련 소식을 알렸고요. 플래카드를 작성한다든가 대자보를 부착하는 일, 문장 검토 등 세세하게 나눠서 각자의 일을 했습니다. 나 같은 경우는 대외적인 부분을 맡았어요. 학내 언론사인 <채널PNU>, 그리고 각종 지역 언론에 연락을 돌려 시국 선언 사실을 알렸습니다.

△한번 연기되는 일도 있지 않았습니까.

-원래는 4월 6일이었는데 11일로 연기하게 됐죠. 같은 기간에 2030 세계박람회 실사단 맞이 행사가 있지 않았습니까. 대외적인 관심도 중요한데, 언론 동원 등의 문제에서 어려움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시국 선언과 엑스포 둘 다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고민 끝에 시기를 늦추자는 결론을 냈고, 이틀 전쯤 시간을 바꿔 서명자들에게 연기 소식을 알렸습니다.

△전국 대학 가운데 우리 대학의 시국 선언 규모가 가장 컸는데요. 이렇게까지 많은 인원이 모일 수 있었던 이유가 있을까요?

-부산과 부산대만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저력이 있습니다. 보통 영남 지역을 두고 보수적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난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부산은 상당히 개방적인 도시입니다. 개항, 한국 전쟁 그리고 경제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부산과 영남 지역의 인구가 상당히 증가했거든요. 다양한 인적 자원들이 모이면서 지역 차별이란 게 거의 사라진 거죠. 이런 개방성 덕분에 부산은 변화의 가능성이 높은 도시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 대학 역시 이미 내재된 경험들이 많죠. 1979년 부마민주항쟁이 대표적입니다. 부산에서 시작돼 마산으로 전파되고, 또 정신이 광주 민주화 운동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있었잖아요. 재정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총장 선출 방식에 대해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하고 항의한 적도 있었고요. 여러 역사적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보니, 필요하다고 생각될 땐 대학 차원에서 나설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는 겁니다.

△학계에서는 제3자 변제안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나요.

-기존 주류 학계에서 주장하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르죠. 애초에 가해자가 아닌 사람이 변제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돼요. 예를 들어, 내가 A라는 사람과 싸워서 피해를 입었어요. 그럼 A라는 사람이 나한테 사과를 하고 피해를 보상해 줘야지, 왜 엉뚱한 B가 그걸 갚아주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돈은 많고 적음을 떠나 우리나라 기업의 돈이에요. 기업의 돈이 기업과 노동자를 위해 사용되지 않고 엉뚱하게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건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심지어 2018년 대법원에서 이미 일본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법원이 일본의 식민 지배와 강제 동원이 불법이니 배상하라고 했는데, 정부가 그걸 나서서 부정한 거죠. 사법부에서 내린 판결을 행정부가 거부한 거예요. 당시 우리 외교 당국에서 최소로 요구한 것은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 그리고 가해 기업이 배상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 모두 거부를 해 버림으로써 일본은 식민 지배에 대해 제대로 반성하지 않게 된 거죠.

△사실상 새로운 법적 분쟁을 야기한 셈인데요.

-제3자 변제 방식은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했다기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한일 간 관계를 꼬아 놓을 가능성이 높아요. 해결안이 아닙니다. 나중에 다시 문제를 제기했을 때, 이미 해결된 문제에 대해 왜 반론을 제기하냐는 질문을 받을지도 몰라요. 우리나라가 이런 잘못된 해법을 용인하는 단계로 완전히 가 버릴까 봐 걱정이 됩니다.

△일본과의 관계는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 할까요.

-일본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건 경제적인 문제를 말하는 거지, 우리에게 저지른 일을 없던 것으로 만들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우리 한일 관계가 정말 잘 풀리려면, 결국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배상이 있어야 합니다. 단순한 금전 문제가 아니에요. 당초 국가라는 건 국민을 보호하고 인권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거잖아요. 이건 외교라는 이름하에 피해자들의 인권을 완전히 깔아뭉갠 겁니다.

△현 정부의 태도가 변할 수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돌출된 발언이라기보단, 지난해부터 시작된 정부의 일관적인 입장인 것 같아요. <워싱턴 포스트>에 공개된 걸 보면, 100년 전 일어난 일 때문에 '무조건 무릎 꿇어라'고 한다든가, 사과를 '강요'해선 안 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애초에 '강요'라는 단어가 부당한 걸 요구한다는 뜻이거든요. 그럼 우리의 요구가 부당한 건가요. 전 이것이 단순 단어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외교적인 표현을 검수할 절차가 있을 텐데도 그런 결과가 나온 거니까요. 정부는 비난의 여론을 감수하고서라도 일관된 입장을 유지할 것 같아요. 결국 그걸 바꿀 수 있는 건 국내에 있는, 또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시민들의 생각과 비판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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