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전홍찬(정치외교학) 교수 인터뷰
-질문·답변 주고 받는 독특한 수업 화제
-"생각하는 힘 기르는 수업 만들고자"
-"우리 대학도 홍콩대처럼 될 수 있어"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 걱정스러워"

전홍찬(정치외교학) 교수의 수업 스타일은 독특하다. PPT도 판서도 없이 옛날이야기처럼 흘러간다. 그러나 절대 사담으로 새지 않는다. ‘A는 B다’ 식으로 답을 정해주지 않고, 사례를 통해 알아서 깨닫게 하거나 학생에게 질문을 던져 유추하게 한다. 누가 언제 받을지 모르는 질문이 2~3분에 한번 꼴로 던져지며 학생과 교수는 끊임없이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다.

특유의 수업 방식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2020년 사회과학대학 수업의 질 조사 1위’, 학내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등 수업 평점 4.7/5점, ‘재밌고, 얻어가는 게 많은 가장 대학스러운 수업’이라는 평과 동시에 ‘시험범위가 너무 넓고 예습과 독서, 질문과 참여까지 너무 어렵다’, ‘질문 받을까봐 심장이 두근거려서 무조건 피해 다닌다’. 이런 탓에 누군가는 그의 수업만 찾아서 시간표를 짜고, 누군가는 그 반대로 그를 피해서 수업을 듣는다. 지난 9월 21일 여러 의미로 학생들의 주목을 받는 전홍찬(정치외교학) 교수를 <채널PNU>가 연구실에서 만났다.

지난 9월 21일, 연구실에서 만난 전홍찬 교수. [전형서 전문기자]

△수업 스타일이 독특해서 타과생 사이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편입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그런가요. 사실 다른 사람 수업을 안 들어봐서 어떻게 다른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이론 수업과 달리 제 수업은 판서를 안 한다는 건 알아요. 우선 그런 (암기식) 과목을 너무 싫어했어요. 어차피 책에 다 나오는 내용이고, 학생들은 그걸 읽으면 되니 제가 되풀이할 필요는 없죠. 더군다나 정치학은 사회과학이고, 통찰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한 과목이다 보니 단순 지식의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그럼 뭘 가르쳐야 할까요.

-뭘 가르치기 보다는 생각할 수 있는 능력과 통찰력을 기르는 훈련을 시켜야죠. 최소한 정치학 분야 교수는 ‘티처’가 아니라 ‘트레이너’라고 봐요. 제가 정치외교학과 학생을 가르치면서 회의를 느낀 적이 있는데, 학생들이 졸업한 후에 전공 지식을 살린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너무 적다는 겁니다. 결국 세계, 국가, 사회 전반에 대한 통찰력을 기르는 게 이 전공의 이유라고 생각해요. 수업을 들어도 결국 다 잊어먹는데, 남는 건 생각하는 힘이니까요. 저는 학생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자극을 주는 역할입니다.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 질문을 무척 강조하시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제일 적응을 못하는 게, 고등학생 까지는 다른 사람이 내는 문제에 정답만 찾았다면 이제는 무슨 문제가 중요한지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문제에는 정답이 있지만 사회에는 없습니다. 복수정답도 있고 뭐든 대가를 치러야 하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으려면 문제 파악이 더 중요해요. 질문을 주고받는 크로스 체킹을 통해서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는 게 사회과학 공부지, 정외과 졸업한다고 자격증이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현재의 수업 스타일이 만들어지기까지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이런 게 공부라는 거구나’를 느꼈어요. 미국에서 다녔던 대학원이 있던 학교의 사대부고에 갔더니 ‘미국사’라는 책을 공부하는 게 아니라 남북전쟁 한 주제에 대해 한 학기간 서로 토론하고 발표하더군요. 대학이나 대학원도 마찬가지고요. 선생은 학생한테 단순히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토론을 하면서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라는 거죠. 그 영향이 제 수업 스타일에서도 반영된 겁니다.

△서당에 다니셨다고 들었는데, 서당에서부터 미국 유학을 가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그거 아는 사람 별로 없는데, 내가 그런 말을 했나요?(웃음) 서당까지는 아니고, 옆집에 흰 수염에 늘 흰 두루막을 입고 안경을 쓰고 다니시는, 한학(漢學)을 하신 분이 계셨어요. 부모님이 그 얘기를 듣고 절 보내신 거죠. 선생님이 직접 쓰신 천자문을 떼고 간판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학문에 대한 즐거움을 처음 느꼈습니다.

그 즐거움이 원동력이 됐어요. 대학에 입학했던 시기에는 맑시즘(Marxism)이 처음 시작될 때였는데, 그런 분위기에서 (현실 정치가 아닌 학문적인) 정치학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건 국내에서 되게 부르주아적인 태도로 백안시되는 분위기였어요. 전 '냉전 체제에서 소련의 위치'와 같은 국제 정치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미국을 가게 됐죠.

△미국에서 교수를 하다 오신 걸로 아는데, 아예 눌러앉을 생각은 없으셨습니까.

-애초에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가르치는 것도 그렇고 논문 쓰는 것도 그렇고 내 생각에 미국인 동료들에 비해 3배 이상은 노력해야 했죠. 한편으로는 억울하고 한편으론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더라고요. 한 1년 잠을 못 자고 살았어요. 그리고 미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게 행복할 것 같지 않았어요. 미국에 있는 한국인 학자 선배들도 자기들같이 나이 들어서는 가기 어려우니 빨리 한국으로 가서 자리 잡는 게 행복하다고 하더군요. 제 가족들도 다 한국에 있었고요.

지난 9월 21일, 연구실에서 만난 전홍찬 교수. [전형서 전문기자]
지난 9월 21일, 연구실에서 만난 전홍찬 교수. [전형서 전문기자]

△그렇게 귀국한 후 오늘까지 교수만 하셨습니다. 기억나는 일이나 아쉬운 일은 없는지요.

-아쉬운 게 딱 하나 있는데, 대외교류본부장을 3년간(2013~2016) 한 적이 있습니다. 대학의 국제화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한국어만 해선 제한된 무대에 있으니 외국으로 나가기도 어렵잖아요. 그래서 맡은 건데,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고 학교에 도움이 되려면 대학의 근본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해서 원하는 성과를 못 냈어요. 또 (국립대 특성상) 보직을 오래 할 수가 없고, 총장이 바뀌니까 앞에 외국과 체결한 약속들이 무시되더라고요. 양측이 한 약속이면 지속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거죠.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국제화입니까.

-사실 부산대가 한국에서는 지방대학이지만, 세계무대에서 보면 그런 의미가 없거든요. 서울을 대상으로 생각할 게 아니라 세계를 대상으로 생각하면 다른 길이 보일 수 있어요. 지금 부산대의 제일 큰 문제가 학생들이 수도권으로 가려고 하니 들어오는 학생들의 수준이 떨어지는 건데, 국내 풀에서 보면 그런 거지만 다른 나라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데려오면 그 문제는 해결할 수 있거든요. 옛날에 미국 대학에 있을 때 궁금했던 건데, 미국 대학에서 왜 한국 학생한테 장학금을 주지? 싶더라고요. 알고 보니 거긴 한국인, 미국인, 이스라엘인 구분 없이 우수한 학생들 데려오는 게 목표인 거죠. 우리도 그러려면 학생을 모집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뭐가 문제였습니까.

-국제화를 왜, 장기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할지에 대한 학내 컨센서스(Consensus, 대부분 구성원들의 의견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지금 당장 국제화 하자면서 영어 강의가 안되는 사람한테 하라고 시키고, 외국 교수들 부르고 외국 학생들을 뽑아봤자 부작용만 커지지 쉽게 되는 일이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학은) 단기적으로 영어 강의 비율, 교환학생 숫자를 세고 늘리는 것밖에 못합니다. 근본적으로 부산대에 도움되는 국제화가 어떤 것인지 논의를 못하더라고요. 임기가 제한되어 있고 오너가 없으니까 장기적으로 비전을 제시하고 중요한 결정을 못하는 거죠.

△그럼 제일 먼저 뭘 해야 할까요.

-문제에 대해 이해해야죠. 지금 상태로는 계속 추락하고 있다, 그러나 그건 국내의 문제다. 그 틀을 깨서 국내에 국한하지 않으면 부산대는 지방대가 아니다. 그런 생각에 다들 동의하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해야죠. 그 때 리더십으로 설득해야 하는 겁니다. 근데 그런 움직임이 없으니 지역적인 국제화에 그치는 겁니다.

또 그런 프로그램 역시 국내 메이저 대학이라면 다 있는데, 다른 학교에 없는 걸 만들어야죠. 앞으로 충원할 때 장기적인 요소를 감안해서 천천히 추진하면 30~40년 뒤에는 부산대도 홍콩대처럼 될 수 있는 겁니다.

△사회과학 전공과 무관한 원전 관련 논문도 많이 쓰셨던데, 어떤 계기로 쓰게 되셨나요.

-좀 스토리가 있어요. 원자력연구원에 있던 아주 친한 분이 우리 대학 공대 교수로 오셨어요. 식사도 하고 친하게 지내면서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 겁니다. 전 그때까지 고리, 월성 원전이 부산 인근에 모여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원전 기술 국가가 됐다는 것에 놀랐죠. 근데 그 교수님의 고민은 기술은 세계 최고인데, 원자력 발전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은 미흡하다는 겁니다. 그동안은 국가가 발전을 주도하니 국가가 모든 걸 해결해줬는데,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으니 이제 국민의 요구나 인식을 국가가 톱다운 방식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 거죠.

그러면서 배운 건, 과학기술은 정쟁의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 언론사들은 과학·기술 관련 이슈도 정치적인 방향에 따라 다뤄 정쟁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것 때문에 우리가 치르는 사회적 비용이 엄청납니다. 그러지 않으려면 이슈를 과학·기술적 측면으로 볼 수 있는 확실한 기준이 필요합니다. 또 그러한 기준을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사회과학과 인문학도 역할을 다해야 해요. 영국은 원자력 연구원 내부에도 사회과학 분과가 따로 있더군요. 원전의 입지를 선정하는 데도 기술적 조건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조건도 고려하는 거죠.

△정치외교학과 교수님이시니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은 늘 수준에 맞는 정치인을 가진다고 자주 하신 것으로 압니다.

-민주주의 체제에선 정치 수준이 국민 평균 수준을 반영하죠. 그래서 전 정치인 비판을 잘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을 선출한 사람들의 문제니까요. 그런데 정치는 경제와 달리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니 발전하려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세대별 투표 성향이 나오잖아요? 40대는 어느 진영에, 60대는 어느 진영에. 이 사람들은 정치 상황의 변화와 관계없이 젊었을 때 형성된 정치적 근원이 평생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세대가 바뀌어야 하는 거죠.

지금 일부 국가들에 정치 선진국이라고 부르는데, 거기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50~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똑같습니다. 영국 같은 나라도 부패, 부정선거가 말도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시간이 걸리면 바뀔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정치가 너무 극단으로 치닫는 겁니다. 유튜브, 인터넷에 올라오는 정보는 퀼리티가 일정화 되어있지 않은데도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방송국처럼 나오니까 얼마든지 주류가 될 수 있으니까요. 정치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그게 좀 걱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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