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올양조연구소 김비성(36) 대표 인터뷰
-20대부터 전통주 좋아해 착실히 준비해
-함안 대표하는 '일월삼주'·'낙화주' 개발
-"느리지만 성장할 기회 많아··· 노력할 것"

가가호호 술을 빚던 우리네 전통이 청년을 만나 다시 피어나고 있다. 청년들의 아이디어는 전통주 시장의 새로운 활력이 돼 시장을 견인한다. 전통주를 사랑해 마지않는 그들은 즐겁고 좋아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고된 작업들을 묵묵히 이어나간다. 지금도 곳곳에서 수많은 ‘명인’들이 성장하고 있다.

부산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귀농’을 꿈꾼 청년이 있다. 우리 술을 좋아해 20대부터 직접 술을 빚기 시작했으나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만화 ‘식객’을 보고 시작한 전통주 양조에 오기가 붙었다. 그로부터 10년, 갖은 연구와 실험 끝에 달을 품은 ‘일월삼주(一月三舟)’와 낙화놀이를 형상화한 ’낙화주(落火酒)‘를 완성했다. 단순한 양조를 넘어 연구에 빠져든 결과다. 지난 10월 10일 <채널PNU>는 김비성(36)(식품영양학 석사 18, 졸업) 대표를 만나기 위해 함안군 월촌리의 ‘빛올양조연구소’를 찾았다.

지난 10월 10일 빛올양조연구소에서 만난 김비성(36) 대표. [조승완 기자]
지난 10월 10일 빛올양조연구소에서 만난 김비성(36) 대표. [조승완 기자]
빛올양조연구소가 생산하고 있는 전통주. 왼쪽부터 '일월삼주142' '일월삼주 이주' '낙화주'. [조승완 기자]
빛올양조연구소가 생산하고 있는 전통주. 왼쪽부터 '일월삼주142' '일월삼주 이주' '낙화주'. [조승완 기자]

■‘귀농’을 꿈꾼 청년, ‘빛올’을 만들다

아침 해처럼 빛이 올라온다는 뜻의 ‘빛올양조연구소’,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는 오가닉(organic)을 강조해 김 대표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양조과정에서 누룩과 효묘를 사용하는 만큼 오차 없는 정밀함을 강조해 ‘연구소’라는 명칭도 붙였다. 건축가인 아버지와 함께 직접 지었다는 샌드위치 패널 형식의 연구소는 효모를 접종·배양하는 시설과 각종 연구 장비가 즐비했다. 김 대표는 흰 위생복을 입고 연구소의 실험실과 담금실을 오가며 양조를 하고 있었다. 연구소에서 만난 그는 “미생물을 다루는 일은 체계적이여야 오차가 생기지 않는다”며 “앞으로는 정부 과제나 연구 과제도 수주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20대의 김 대표에게 전통주의 꿈을 피워준 건 다름 아닌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이었다. 어릴 적 잔병치레가 잦아 가족들과 산행을 즐긴 그는 자연스레 자연과 친해져 대학시절부터 귀농을 준비했다. 귀농을 하면 음식을 직접 만들어야 해 <식객>을 보며 요리를 연습했고, 레시피를 따라 탁주도 빚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탁주를 만드는 데는 매번 실패했단 것이다. 이는 오히려 탁주에 대한 집념의 계기가 됐다. 수 백 번의 시행착오를 반복했다는 김 대표는 “오기가 생겼다”며 “이후에 전통주 교육기관에서 하나씩 궁금증을 해결해나갔고, 점차 흥미가 깊어졌다”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전통주 양조에 뛰어든 김 대표는 아마추어임에도 금세 두각을 나타냈다. ‘2015년 전국 가양주 주인 선발 대회’에서 입선한 것을 시작으로 ‘2018년 궁중술빚기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착실히 커리어를 쌓았다. 그 후에도 전문기관에서 양조 기술을 배우고, 우리 대학 식품영양학과 연구실에서 미생물 석사과정을 밟으며 자신만의 전통주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준비했다. 치열한 준비 끝에 2020년, 빛올양조연구소를 창업했다. 그리고 다시 2년이 지나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첫 번째 술 ‘일월삼주’를 공개했다. 10여 년 만에 탄생한 ‘빛올’의 결실이었다.

■'함안의 명물' 일월삼주와 낙화주를 만들기까지

'달의 마을'이라 불리는 함안군 월촌리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일월삼주(一月三舟)’는 '하나의 달을 세 배에서 본다'는 불교경전의 문구를 채용했다. 같은 대상도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있음을 뜻한다. 누룩을 사용해 다양한 맛과 향을 만들어내는 우리 술의 특징을 담아 고안한 이름이다.

이름처럼 ‘일월삼주’는 하나의 원주로부터 만들어진 △일주(탁주) △이주(약주) △삼주(소주)의 세 가지 술로 구성된다. △쌀 △물 △누룩으로 한번에 만들어지는 ‘단양주’이며 함안 지역 찹쌀 ‘도란미’와 직접 개발안 연잎 효모 ‘빛올효모’를 사용해 깊이를 더했다. 김 대표는 “현재 일주와 이주를 완성했고, 삼주는 솔잎이나 약재 등을 더해 개발하는 중”이라며 “일월삼주의 세 술이 모두 완성되면 밀키트와 같은 도전도 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함안의 전통놀이 ‘낙화놀이’에서 영감을 받은 ‘낙화주’를 신제품으로 내놓았다. 숯을 짚으로 감싸 태우는 낙화놀이에 어울리도록 쌀을 고온에서 익히는 로스팅(roasting) 기법을 사용, 붉은 색감과 구수한 맛을 냈다. 흥미롭게도 낙화주의 로스팅 기법은 실수에서 시작됐다. 김 대표가 술을 쪄내는 과정에서 너무 오랜 시간 놔둔 탓에 쌀이 타버린 것이다. 쌀을 버릴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술을 빚었으나 의외로 곡물 특유의 탄내가 구수한 향기로 다가왔다. 김 대표는 “탄내는 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며 “향이 매력적으로 다가와, 낙화주에 접목시켜 로스팅 탁주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빛올양조연구소 실험실의 모습. 해당 무균작업대에서 김 대표가 실험을 진행한다. [조승완 기자[
빛올양조연구소 실험실의 모습. 해당 무균작업대에서 김 대표가 실험을 진행한다. [조승완 기자[
지난 10월 10일 김 대표가 담금실 내의 장비들을 소개하고 있다. [조승완 기자]
지난 10월 10일 김 대표가 담금실 내의 장비들을 소개하고 있다. [조승완 기자]

연구를 거듭해도 우리 술을 빚어내는 과정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다. 신제품 개발의 시행착오나 제품 생산 과정의 품질 유지, 일정한 맛을 위한 블렌딩(blending) 등 다양한 과정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생산하는 단양주 자체가 재료를 한 번에 넣고 만드는 방식이라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도 한 몫 한다. 더군다나 △개발 △생산 △포장 모두 직접 하고 있어 밤을 새우는 일도 잦다. 지역에서 나온 좋은 재료를 이용해 술을 빚어 마진 역시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술을 대하는 마음은 처음 양조에 관심을 가졌을 때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깊어졌다. 김 대표는 “일이 힘들긴 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며 “여전히 술을 빚는 일 자체가 즐겁다”고 말했다.

■청년이 만든 ‘경쟁’ 아닌 ‘상생’ 문화

김 대표는 청년이 전통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지금이 전통주 시장이 일어설 ‘기회’라고 말했다. 청년 세대가 과거 주취 문화에서 벗어나 맛있는 술을 찾기 시작하면서, 전통주가 가진 ‘비싸다’는 인식이 부서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축제나 행사 등지에서 전통주를 판매하다보면 오히려 젊은 세대가 더 관심을 보이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청년 수요를 잡기 위해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양조장들도 소비자와 소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 역시 인스타그램 등의 SNS 및 다양한 매체를 통해 양조장의 소식을 알리고 있다.

청년이 양조에 뛰어든 전통주 시장은 어떨까. 김 대표는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답했다. 미처 생각지 못한 다양한 시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통통 튀는 아이디어들이 시장에 활력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는 서로 무조건적으로 경쟁하지 않고 아이디어를 교류하는 상생 문화가 생긴 것도 변화 지점으로 꼽았다. 김 대표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양조 방식이나 재료 등이 다양해지는 것도 전통주의 특징 중 하나”라며 “그러한 변화무쌍한 모습이 청년과 전통주의 공통점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전통주 시장이 나아갈 방향을 ‘상생’으로 표현했다. 지역마다 위치한 양조장들이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품화하는 문화가 더욱 자리잡아야한다는 것이다. 그 변화가 선두가 된 것이 ‘청년’ 세대다. 더욱이 전통의 가치를 준수하는 이들과의 소통도 끊이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옛날의 가치와 현대의 가치가 공존하는 구조가 돼야 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현재 전통주 시장을 두고 ‘재미있고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표현했다. 이어 “전통주 시장은 발전이 느린 만큼 아직 성장할 기회가 많다”며 “꾸준히 오랫동안 즐길 수 있도록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노력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에게는 여전히 도전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다. 우선 빛올양조연구소 만의 자체 누룩을 개발하는 중이다. 현재 대부분 전통주 양조장이 주재료인 누룩을 구매해 사용하다보니 공급처의 사정에 따라 누룩의 품질도 달라지고 술의 품질도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에 김대표는 자체 누룩을 자체 효모와 접목시켜 경쟁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함안 지역 특산물 수박을 활용한 탁주 역시 개발 계획에 포함됐다. 연구소 건물을 점차 발전시켜 생산-병입-포장 과정의 자동화도 시도하는 중이다. 120여 평 정도 되는 연구소의 절반은 김 대표가 꾸려나갈 미래를 위해 미사용 공간으로 남겨뒀다. 김 대표는 “나중에는 양조장 견학이나 시음 등의 다채로운 활동을 위한 공간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역특산주는 지역의 재료를 사용하다보니 양조장의 위치마다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다르다”며 “경남 지역 곳곳에 양조장을 증설해 더 다양한 술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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