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국회는 국민을 닮아야 한다고 한다. 다양한 민의를 국가 정책과 운영에 반영하려면 연령, 성별, 장애, 소득 수준 등 국민의 다양성이 국회 구성에 반영돼야 한다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곧 출범할 제22대 국회는 국민의 다양성을 닮지 못했다. 청년도, 여성도 없다.
우리 국회가 국민을 닮지 못한 문제는 고질적이다. 청년 의원과 여성 의원의 비율이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라는 사실은 이미 자명하다. 우리나라 국회 앞엔 ‘오부남’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었다. 정치권이 ‘50대 부자 남성’에 잠식당했다는 거다.
22대 국회의 평균 연령은 56.3세로 이전보다 더 고령화됐다. 300석 가운데 40대 미만의 청년의원은 지역구 10석, 비례대표 4석으로 총 14석에 그쳤다. 20대는 한 명도 없다. 불행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지난 21대 국회보다는 1석 늘어난 결과다. 다만 올해 총선에서 청년 유권자 비중이 30%였던 것을 고려하면, 다가올 국회에서 4.7%에 불과한 청년의원들이 표를 행사한 청년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엄연히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되는 국회에서 결국 청년관련 법안을 쥐고 있는 건 절대다수의 50·60대 기성의원이다.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아닌 이들은 청년의원들에 비해 청년의제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지난 국회의 다양성을 분석한 뉴스타파의 보도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20·30대 청년의원의 1인당 청년 법안 발의 건수는 15건이었던 반면, 50·60대는 6.3건으로 2배 이상 차이 났다. 결과적으로 청년법안의 가결률은 2.45%에 그치며 전체 법안 통과율인 5.13%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청년 의제에 대해 실질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미 수적으로 묻히는 것이다.
주체가 전치된 상황에서 청년정책은 역행한다. 올해 총선 과정에서 대부분의 청년관련 공약들은 저출생 대응책 안으로 흡수됐다. 청년세대의 주요 과제를 저출생 문제의 해결로 초점 맞추는 듯하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지난 국회에서 답습했다. 21대 국회에서 가장 많이 발의된 청년 법안은 출산양육 분야였다. 정작 실제 청년들은 눈앞의 취업난과 일자리 불평등, 생활비 및 주거 문제들을 토로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지역에 일자리가 없고, 상경했더니 살 곳이 없고, ‘정상성’에서 벗어난 가정은 소외되고, 청년 여성들의 일자리 조건이 불평등하다는 등의 이야기는 언제쯤 잦아들지 막막하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 벅찬데 자녀라니?’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거다.
방치되는 청년들의 실제 민의는 청년들의 정치적 효능감 무력화를 초래한다. ‘내 삶을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에 하염없이 기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 청년들은 정치에 무관심해지고, 기성 정치인들은 ‘요즘 애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탓하며 또다시 청년들의 진짜 목소리를 비껴가는 악순환을 초래할 테다.
결국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들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이는 청년 세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 및 사회적 약자 관련 의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민생’을 위해 국회가 국민의 다양성을 닮아야 하는 이유다. 22대 국회가 비록 구성에서는 국민을 닮지 못했을지라도, 청년을 비롯한 다양한 국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국민을 닮은 정치’로 나아가는 물꼬를 트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