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나주영(법의학) 교수 인터뷰
-인문학 가르치는 법의학 수업 눈길
-올해 출판한 법의학 도서도 화제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위한 일”
-“죽음 기억하며 매일 행복하길”
법의학은 의료계에서 최고로 기피도가 높은 분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학은 물론 법학까지 공부해야 하는 데다가, 늘 부족한 인력 탓에 하루에도 수 건씩의 부검을 하고 강의를 하러 뛰어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내 법의학자들이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법의학이 ‘사람을 위한 학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법의학은 사건을 의학적으로 파헤치며 죽은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도, 산 사람의 죄책감을 위로하기도 한다.
나주영 교수는 우리 대학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의 유일한 교수다. 법의학계 인력이 부족한 탓에 부산 권역 내 다른 의과대학까지 돌며 법의학 강의를 하고 있다는 그는 동시에 △대검찰청 및 법원 자문위원 △경찰청 자문위원 △국과수 촉탁의사 등을 겸임하기도 하며 국내 법의학을 지탱하고 있다. 올해는 법의학과 관련해 책도 2권이나 출간했다. <채널PNU>는 지난 9월 25일 양산캠퍼스에 위치한 나 교수의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법의학’은 어떤 분야인지, 법의학자는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언론이나 각종 매체를 통해 법의학자의 모습을 보면, 흔히 ‘부검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할 것 같아요. 하지만 법의학은 큰 틀이고, 대표적으로 알려진 세부 분야인 ‘법의 병리학’ 분야에서 부검을 주로 하는 겁니다. 제 분야이기도 한데요, 주로 시신을 해부하거나 검안해서 사망을 조사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넓게 보면 법의학이란 법률의 적용 및 운영에 의학적 소견으로써 도움을 주는, 법정과 관련된 의학입니다. 부검도 그 감정 과정 중 하나인 셈이죠. 법의학은 ‘공공의학’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법의학은 영어로 ‘forensic medicine’인데요, 여기서 ‘forensic’은 라틴어 ‘forensis’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토론의 장’ 혹은 ‘공공(公共)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결국 법의학은 사람들 간의 토론, 즉 재판과 관련된 의학인 겁니다.
△법과 의학을 모두 알아야 하니 굉장히 많은 공부가 필요한 직업일 것 같은데요. 법의학을 선택하시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의대를 다니면서 죽음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한 병원에 실습을 나갔는데, 특별한 치료를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죽음을 앞둔 폐암 말기 환자를 지켜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심전도가 이론상으로 배웠던 것과는 달리 움직이더라고요. 한참을 심전도상으로 죽었다 되살아나기를 반복했던 겁니다. 순간 ‘죽는다는 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가 인턴을 갈 때가 됐는데, 다른 공부를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군대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하는 동시에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를 다녔습니다. 의대도 나왔고 법대도 졸업했으니 이 두 가지를 섞을 최적의 진로가 법의학이었던 겁니다. 해보고 싶었던 죽음에 대한 공부도 할 수 있고요.
△사실 법의학은 국내 등록자가 58명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기피도가 높은 분야라고 들었는데요. 교수님께서 이 일을 계속하실 수 있는 법의학만의 매력이나 원동력이 있나요?
-사실 뭐든지 다 재미있어야 하는데, 저는 이게 재미있었습니다. 이 일은 퀴즈를 푸는 것과 굉장히 비슷하거든요. 여러 개의 힌트 조각들을 가지고 상황을 분석하거나 사망의 원인을 찾아내는 겁니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 사람이 죽어있으면 이 사람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 쉽게 알 수 없잖아요. 그런데 평소 행색이 어땠는지, 질환을 가지고 있었는지, 살던 집에 무엇이 있는지, 발견된 시점의 날씨는 어땠는지 등의 힌트를 알아보고 여기에 부검까지 진행하면 사망 원인을 찾을 수 있게 돼요. 저처럼 퀴즈 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흥미를 가지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시는 일이 꼭 탐정 같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으신가요?
-워낙 사건들이 많다 보니 꼽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나를 말씀드린다면, 80대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40대 딸이 죽었다는 신고가 경찰 쪽으로 들어왔어요. 할아버지가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이 보기엔 외력에 의한 흔적 없이 집에서 죽었기 때문에 큰 사건은 아니겠거니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사인이 명확하지 않아서 제가 부검을 하게 됐습니다.
부검을 하다 보니, 사망자의 목덜미에 미세한 상처가 있는 겁니다. 목을 졸린 흔적 같아서 입안 등을 봤는데 경부압박 질식사일 경우에 나타나는 현상이 보였죠. 아무래도 타살인 것 같아 경찰에 수사가 필요하다고 요청했습니다. 제 소견에 따라 수사가 진행됐고, 살인 사건이 맞았습니다. 살해를 한 건 할아버지였어요. 그 40대 딸이 정신 질환이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정신 질환이 있는 딸이 손녀를 키우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씁쓸하고 다방면에서 이야기할 부분이 많은 사건이었습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분야인 셈이네요. 그런데 국내 법의학계의 상황이 녹록치 않다고요?
-일단 의사고시에 법의학과 관련한 시험 문제가 안 나옵니다. 법의학은 사실 모든 의사가 알아야 하는데도요. 사람이 죽었을 때, 시체를 검안할 수 있는 자격은 의료법에 따라 모든 의사들에게 있거든요. 치과의사나 한의사에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의대전문대학원과 치의학전문대학원을 다니면서 법의학 강의를 하고 있어요. 24시간이 모자랍니다.
법의학계 인력이 부족해서 큰 문제입니다. 저처럼 부검을 하는 법의 병리학자분들은 40명이 될지 모르겠네요. 늘 관심을 가지는 학생들은 참 많은데, 실제로 하는 친구가 없어요. 중고등학생들 중에서도 관심을 갖고 연락해 오는 친구들이 많은데, 우선 의대에 가야 한다고 말하면 다시는 연락이 오지 않아요. 최근 의정갈등 이후에도 법의학을 하고자 하던 전공의들이 다 사직서를 내면서 앞으로 걱정도 큽니다.
△우리 대학에서 법의학 관련 교양 강의도 하고 계신데요, 신화나 미학 등을 함께 접할 수 있어서 학생들의 강의평이 굉장히 좋더라고요.
-학생들에게 단순히 법의학의 학문적인 내용을 소개하는 것보다는 인문학적인 요소와 함께 설명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제가 좋아하기도 하고요. 예를 들면 그리스 로마신화 속 트로이 전쟁에서 신들이 싸우다 상처를 입은 일화를 두고 방어 손상을 설명하는 식이죠. 또 사실 어떻게 보면 법의학이라는 학문 자체부터가 사람의 삶과 죽음을 연구하고,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결국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하는데, 그 배경에 인문학적 소양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게 이 교양 과목을 개설하게 된 이유입니다.
△인문학에 관심이 있으신 만큼, 올해는 책도 두 권이나 출판하셨던데요. 어떻게 책을 쓰시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법의학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생각이 컸습니다. 동시에 기존의 법의학 관련 도서나 죽음을 다루는 책들이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다루고 싶었어요. 기존의 법의학 관련 책들은 대부분 사건을 중점적으로 나열하는 식입니다. 이 틀을 깨고, 법의학 전반을 풀어서 설명하는 글을 쓰고자 했고 ‘죽은 자의 말을 듣는 눈’이라는 책으로 펴냈습니다. 제목이 왜 귀가 아니라 눈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던데, 죽은 사람의 말을 일반 사람들은 들을 수 없지만, 법의학을 통해서라면 죽은 자의 이야기가 눈으로 보이니까요. 그리고 죽음을 다루는 대표적인 도서들도 법의학자의 시선에서 풀어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법의학자의 서재’라는 책을 또 한 번 쓰게 된 겁니다.
△두 권의 책 외에도 더 다루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사실 출판사에서도 책을 하나 더 쓰면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해서 주제를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사망 사건의 증례를 다루거나 고독사에 대한 내용을 다뤄보고 싶어요. 논문에도 쓴 적이 있지만, 고독사는 ‘고립사’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실제로 ‘고독’했는지의 감정은 알 수 없는 거니까요. 혼자 살다 타살이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엔 결혼도 많이들 하지 않으려 하고, 자녀도 낳지 않으려는 시대이다 보니,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앞으로 고립사와 같은 죽음이 더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도적으로나 인식적으로나 대대적인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봅니다.
△늘 죽음과 맞닿아 계시잖아요. 법의학자의 시선에서 우리는 삶과 죽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언제 어디서나 죽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죽음을 천천히 준비하게 될 것 같지만, 생각보다 죽음은 언제든지 나와 함께 있거든요. 각종 사건 사고에 휘말리게 될 수도, 자다가 갑자기 죽을 수도 있죠. 특히 부산대 학생들은 킥보드를 많이 타는데, 위험합니다. 최근 강의를 하면서도 ‘킥보드 타지 마라’, ‘오토바이 타지 마라’, ‘타게 된다면 헬멧을 꼭 써라’ 늘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막상 잘 안 하게 된다는 걸 알지만, 연명 의료에 대한 결정도 미리 준비해 두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자신이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연명 의료를 받게 되면 정말 그것만큼 끔찍한 일도 없을 겁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하루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거죠. 먼 훗날 있을 성공만을 바라보고 인내만 하며 사는 경우도 많은데요. 죽음을 매일 마주하는 입장에선 사람들이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걸 기억하고 하루하루의 행복을 찾았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