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이준이(기후과학연구소) 교수 인터뷰
-국내 최초 IPCC 보고서 총괄 주저자 맡아
-"기후, 갈수록 빠른 속도로 나빠지고 있어"
-"기후 변화에 따라 사회 불평등도 심화"
-"한국 포함한 선진국이 큰 책임 가져야"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봄이 사라졌다’는 표현이 흔해졌고, 올해는 4월부터 11월까지가 여름 날씨일 것이란 기상학자의 관측도 최근 화제를 모았다. 전국적으로 기온이 높아지면서 농수산물의 수확에도 차질이 생긴 탓에, 지난해 부산에선 ‘고등어회 없는 고등어 축제’가, 양산에선 ‘국화 덜 핀 국화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지구온난화’하면 북극곰이 서 있는 빙하가 녹는 이미지 정도를 떠올렸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 기후위기의 여파는 우리 삶의 전반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모양새다.
우리 대학 기후과학연구소 소속 이준이 교수는 이러한 기후 변동성을 분석하고,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자 고민한다. 기후변화 연구의 주축이 되는 국제기구 IPCC에서 국내 과학자 최초로 6차 보고서의 총괄주저자로 참여한 이 교수는 △2021년 한국과학기자협회 올해의 과학자상 △2022년 세계기상의 날 국무총리표창 등을 수상하며 기후 과학 분야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다. 그는 현재 우리 대학에서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교양과목인 ‘기후변화의 이해’를 강의하며 기후위기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채널PNU>는 지난 2월 24일 이 교수를 연구실에서 만났다.
△‘기후과학자’로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다양한 분야 가운데, 기후를 연구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학창 시절 때부터 과학, 특히 천문학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구 과학을 전공하게 됐는데, 마침 그 당시가 기후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증가하던 시기였어요. 개인적인 흥미와도 맞물렸던지라 기후와 관련한 공부를 더 해보고 싶은 마음에 대기과학과로 석사 과정까지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때가 1997년이었는데, 그해에는 ‘슈퍼엘니뇨’가 엄청나게 이슈가 됐어요. 적도 부근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이상 높은 상태가 지속되는 걸 ‘엘니뇨’라고 칭하는데, 당시 2.0도 이상이나 높았던 겁니다. 이런 이벤트 속에서 자연스레 기후 변동성을 분석하며 매력을 느꼈고, 박사 과정 이후 지금까지 기후를 연구하고 있네요.
△현재 우리 대학 ‘기후과학연구소’ 소속이신데요. 이곳에선 어떤 연구들이 이뤄지나요?
-이곳에는 대기 해양, 기후 변화, 기후 변동성 등을 주로 연구하시는 세계 각국의 교수님들이 계십니다. 2017년 ‘IBS 기후물리 연구단’을 출범시켰고, 네트워킹과 공동 연구를 추진하면서 전 지구를 대상으로 긴 시간 규모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저 같은 경우도 아주 먼 미래까지를 내다보면서 기후 변동성을 예측하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연구들은 ‘지구 시스템 모델’이라는 컴퓨터 모델을 통해서 이뤄지는데, 과거의 기후 변화를 엿보는 건 물론, 우리의 선택 경로에 따라서 미래의 기후 변화까지 관측할 수 있습니다. ‘기후 타임머신’을 다루는 셈이죠.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심각성이 대두하고 있는데요, 얼마나 심각한 수준일까요?
-사실 ‘기후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죠. 지구 평균 온도는 0.1도만 올라도 타격이 꽤 크거든요. 그런데 산업화 이후 지구 온난화가 지난해 기준 1.2도 이상 진행됐어요. 점차 세계가 마지노선으로 정한 1.5도 지구 온난화로 다가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는 건 이미 지구 시스템 자체에 열에너지가 많이 쌓여 있다는 뜻이고, 앞으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손실이 어마어마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물리적으로 나타나는 손해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농수산물의 물가 상승, 즉 ‘기후플레이션(기후+인플레이션)’일 텐데요. 농작물의 재배 지역이 북상하고 있다는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부산 주변만 해도 얼음골 사과를 재배하기 어렵게 됐고, 이제 아열대 작물이 등장하게 됐죠. 바다에서도 원래 잡아 오던 어종들을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앞으로 더 많이 일어날 것이고, 결국 우리 삶에 기후 변화가 총체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 수준인 겁니다.
△그런데 기후변화는 이런 물리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고요?
-네, 실제로 기후위기 심화에 따른 청소년 우울증 문제가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이 문제가 더 크게 두드러질 것 같아요. 미래에 대한 환경 불안감이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단기간에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뤄왔지만, 지속 가능한 발전이 아닌 측면이 큽니다. 다시 말해, 미래 세대가 사용해야 할 자원을 미리 끌어다 쓴 셈이죠. 미래 세대가 사용할 자원의 고갈은 나중에 더 큰 비용을 야기할 테고, 현재 청소년 세대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건 당연한 수순인 겁니다.
그리고 이미 기후위기로 인해 극한 환경에 처한 나라들은 직접적인 정신적 피해를 크게 입고 있기도 합니다. 파키스탄은 최근 이상 기후로 인한 홍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이외에도 이상 기후로 인해 발생하는 가뭄과 대형 산불들은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이고 막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정신 건강 역시 해치고 있습니다.
△‘기후정의’를 위한 목소리도 많이 내고 있으신데요, 왜 기후정의가 필요할까요?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는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해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여전히 화석 연료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사람들마다 연료를 사용하는 양은 다를 수밖에 없어요. 대체적으로 많이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연료를 사용하고 탄소를 배출하죠. 그런데 탄소 배출로 인한 환경 파괴는 하늘 아래 똑같이 적용되고, 나아가 이로 인한 피해는 오히려 탄소를 적게 배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이 돌아간다는 겁니다. 환경 파괴 대처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결국 탄소를 많이 배출하던 사람들은 더 많이, 적게 배출하던 사람들은 더 적게 배출하면서 양극화가 심해지는 거죠.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 ‘기후정의’예요.
실제 사례를 대입해 봐도 그렇죠. 앞서 언급한 파키스탄을 비롯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등 기후위기의 결과로 초래된 가뭄과 물 부족, 홍수, 폭염과 같은 피해를 많이 받는 국가들은 사실상 선진국들에 비해 배출을 훨씬 적게 했다는 겁니다. 많이 배출한 선진국들이 더 큰 책임을 져야 해요. 따라서 기후 불평등을 줄이려는 노력은 사회의 형평성을 증진하는데도,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유례없는 폭염이 기승이었습니다. 앞으로 ‘수능 한파’, ‘가을 추석’이 없어질 것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실제로 그럴까요?
-2024년은 이미 산업화 이전 대비 기온 상승이 1.5도를 넘어서 1.6도를 기록한 해였습니다. 물론 한 해만 그런 거였기 때문에, 평균 온도가 1.5도를 넘은 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배출을 줄이려 노력하지 않고, 지금의 상태가 지속된다면 2030년이 오기 전에 평균 온도가 1.5도를 넘어설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겠네요. 현재의 지구온난화 속도로 미래를 관측해 보면 2050년에는 2도, 2100년에는 3도를 기록할 겁니다. 그때는 지금 우리가 ‘폭염’이라고 일컫는 날씨가 평균 상태가 되는 거죠.
△예측 결과를 들으니 기후위기 대처 필요성이 크게 와닿습니다. 교수님께선 지금부터의 대처로 기후위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우리는 기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회를 지난 수십 년 동안 놓쳐 왔습니다. 우리가 지금부터 배출을 아예 하지 않는다고 해도, 앞서 배출해 온 양으로만 향후 10년에서 20년간 지구 온난화가 지속될 정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피해와 손실은 분명히 계속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게다가 기술이 발전하면서 좀 더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으로의 전환이 이뤄지는 시점이니까요. 앞으로 잘 적응하고 대처해 나간다면, 새로운 일자리 등도 창출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IPCC 6차 보고서 총괄주저자로 참여하셨잖아요.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보고서 집필 이후의 전망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다른 어려움보다도 비행기를 타면서 느끼는 딜레마가 가장 컸어요(웃음). 기후 위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과 만나려면 반드시 비행기를 타고 함께 모여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비행기는 대기 오염과 생태계 파괴, 그리고 기후 변화에 많은 피해를 끼치잖아요. 만나지 않으면 회의를 하기 어려운 구조라 나름의 고민이 있었습니다. 전망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자면 사실, 6차 보고서에서 발표한 것보다 상황이 더 빠르게 나빠지고 있어요.
특히 집중호우와 가뭄이 더 심각해졌는데, 기후위기가 심해지고 있다는 지표거든요. 그래서 2029년에 발표될 7차 보고서는 기후변화의 가속화를 중요하게 분석하고, 어쩌면 불가피할 기후 변화에 사람들이 적응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초점을 두게 될 것 같아요.
△한편, 미국에선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기후위기 음모론’을 주장하는 등, ‘기후위기 회의론’이 부상하기도 하는데요.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이미 과학은 명백해요. 지구온난화에 대한 관측은 1930년대부터 이어져 왔거든요. 회의론자들은 자연적인 환경 변화라고들 하는데, 물론 자연적으로도 기후는 변화합니다만, 지금까지 인간 활동에 따라서 만들어진 기후 변화 속도는 자연적인 변화 속도의 10배 수준입니다.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주장들을 보면, 자식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정보를 왜곡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우경화되면서 기후 변화에 대응하려는 연대가 좀 약해지고 있다는 걸 느낄 때마다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오늘날 선진국의 역할은 더 중요하거든요. 우리나라도 포함이죠. 과거 배출을 많이 한 국가들이 배출의 책임을 더 많이 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환경 파괴를 줄일 수 있는 방법들을 발 빠르게 찾아 적용해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후위기 시대 속에서 한국은,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우리나라는 2050년 탄소 중립법도 만들었겠다, 이론상으로 목표가 뚜렷합니다. 다만 문제는 목표와 현실적인 이행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겁니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처라는 게 우리나라에선 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이죠. 실질적으로 우리가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목표만 세우기보다는 모두 함께 기후위기를 고민하고 노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합니다.
개인적 측면에서는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에너지를 적게 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선 사회 전반의 인프라가 갖춰져야겠죠. 결국 기후위기를 해소하려는 대중적인 인식과 더불어 사회의 전환이 함께 발맞춰 나가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