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터 본래 상징성 찾았으면"

 

<앵커>

우리 대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공간이라고 하면, 단연 ‘넉넉한 터’가 떠오르실 텐데요. 그만큼 학생들의 쉼터이자 공론장으로서 부산대의 오랜 역사를 함께한 곳입니다. 그런데 이 ‘넉넉한 터’의 실질적인 활용 가능 범위가 갈수록 줄어들면서, 그 상징성을 잃고 있단 아쉬움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서영채 기자가 전합니다.

 

<리포트>

우리 대학 넉넉한 터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잔디 광장’.

‘출입금지’ 팻말과 함께, 광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도록 펜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잔디의 생장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우리 대학은 이곳, 넉넉한 터의 핵심 부지를 2023년, 모래 운동장에서 천연잔디광장으로 바꿨습니다. 그런데 출입을 통제하고 잔디를 관리하는 기간이, 광장을 개방하는 기간보다 훨씬 길어지면서, 실질적으로 학생들의 활용이 어려운 공간이 돼버렸습니다.”

 

학생들이 현재 이용할 수 있는 넉넉한 터의 공간은 전체 1만 제곱미터 가운데, ‘열린 터’와 ‘농구장’에 해당하는 5천 제곱미터 수준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소음 민원이나, 시설 관리 등의 이유로 기존에 넉터를 적극 이용했던 학내 행사들마저 장소를 옮기고 있는 상황. 학내 구성원들 사이에선 넉터가 가진 자유로움과 학생들을 결속시키는 기능이 사라지고 있단 지적이 나옵니다.

 

[배지훈/ 음악학, 16]

“예전엔 축제 때도 포장마차가 들어오는 등 넉넉하게 즐길 수 있는 의미가 많은 곳이었다”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넉터를 ‘좁터’ ‘(안)넉넉한 터’ 등 자조 섞인 표현으로 부르는 건  공공연한 일입니다. 실제로 이름이 붙여졌던 과거 넉터는  지금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1970년대를 기준으로 면적만 따져봐도, 3만 제곱미터. 현재 실질 활용 가능 범위의 여섯 배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현재 대학본부와 기계기술연구동까지의 평지가 모두 넉터에 해당했기 때문입니다. 넓은 부지를 자랑했던 만큼, 1970년대에는 부마항쟁의 결집지, 80년대와 90년대에는 6월항쟁과 ‘학원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가 됐고, 대학본부 건물이 설립된 1995년 이후에도, 2018년까지 학생총회가 열리면서 학생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 왔습니다.

 

[우리 대학 89학번 동문 직원]

“모든 단과대학과 학과들이 넉넉한 터로 모여 함께 투쟁하고 화합했다”

“넉터는 학생들의 공간이었다”

 

우리 대학 역시 2023년 넉넉한 터 일대를 ‘시월광장’으로 명명하고, 그 상징성을 기리고자 했지만 점차 공간이 줄어들고, 제약이 많아지면서, 결국 지금의 모습이 된 겁니다. 학내 구성원들 사이에선 넉터가 공론장으로서의 기능과 상징성을 잃지 않도록, 지금보다 유연한 이용을 장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자연/ 동아리연합회 회장]

“넉터는 학생들이 대학본부, 교수 그리고 외부인에게 관여 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건전한 공론장의 존재. 넉터가 다시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립니다.

PUBS뉴스 서영채입니다.

 

취재 : 황주원 기자

촬영 : 서영채 기자

편집 : 서영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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