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3일이 흘렀다(5월 9일 기준). 한 달하고도 13일이 더해진 시간이다. 43일 전, 규모 7.7의 강진은 눈 깜짝할 사이 미얀마의 수많은 집과 빌딩을 쓰러뜨렸고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4월 12일, 망명 중인 언론 매체 ‘버마 민주의 소리(DVB)’의 데이터 분석팀은 이번 지진으로 인한 피해 규모를 △사망 4,355명 △부상 7,830명 △실종 145명으로 집계했다. 이는 군부가 밝힌 3,700명대의 공식 통계보다 훨씬 높은 수치로, 실제 피해 규모는 통제된 수치 뒤에 가려져 있는 셈이다.
상황은 이렇게 심각한데도, 미얀마 군부는 사고를 덮기에만 급급하다. 심지어는 지진이 미얀마를 강타한 바로 그날부터, 군부는 구조 대신 폭격을 택했다. 민족통합정부(MOHR)에 따르면, 지진이 발생한 당일부터 2주 동안 군부가 벌인 공습과 폭격은 무려 92건에 달했다. 사가잉과 만달레이 지역이 그 표적이 되었고, 특히 반군부 진영의 거점인 사가잉에는 집중적인 폭격이 퍼부어졌다. 4월 3일, ‘데이터 포 미얀마’는 사가잉 지역의 사망자가 467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고 보도했다.
강진은 단 몇 분이었지만, 그보다 오래 지속될 고통은 ‘인재’에서 비롯됐다. 군부는 사가잉 지역에 구조대도, 장비도, 식량도 제대로 보내지 않았다. 대신 일부 정권 통제 지역인 네피도와 만달레이에만 수색과 지원을 집중했다. 건물의 80%가 무너져 내린 사가잉은 그 자체로 절규하고 있는 모습이지만 군부는 사가잉이 정권의 통제에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 그들을 철저히 외면했다. 재난을 기회 삼아 반대 세력을 억누르려는 그들의 본심이 이 참사 속에서 또렷하게 드러난 것이다. 미얀마 군부는 재난을 국가의 ‘안보 위협’으로 간주했고, 구조 활동 대신 반군 진압과 치안 확보에 병력을 투입했다. 미얀마에선 ‘지진보다 더 무서운 건 군부’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가장 날카롭게 드러난 것은 군부 통치의 본질이다. 구조를 미루고, 폭격을 앞세우며, 정보마저 통제하는 이들의 대응은 ‘무능’에 이어 ‘악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지진이 자연의 일이었다면, 이 비극의 확산은 명백한 ‘인재(人災)’다. 미얀마 군부의 대응은 재난을 통치의 수단으로 변질시켰다. 생명을 구하는 대신, 체제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 반복되고 있다.
2014년 4월, 수학여행을 갔다 하늘로 떠나버린 안타까운 생명을 기억한다. 그날, 바다에 가라앉은 것은 단지 한 척의 배가 아니었다. 허술한 매뉴얼, 책임 회피, 무능한 지휘 체계는 수많은 생명을 놓쳤고, 정부에 대한 신뢰까지 가라앉혔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만든 비극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미얀마에서 나는 기시감을 느낀다. 두 사건은 정부가 ‘재난을 어떻게 망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두 재난은 다른 땅, 다른 시기에 일어났지만, 권력이 책임을 회피할 때 얼마나 많은 생명을 앗아가는지, 그리고 이후 남겨진 상처가 얼마나 오래가는지를 보여준다.
권력은 침묵을 요구하지만, 연대는 기억을 요구한다. 재난 앞에 구조도 책임도 하지 않은 정부를 맞닥뜨려본 우리가 미얀마 시민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외면이 아닌 응답과 연대다. 우리는 기억할 수 있고, 말할 수 있으며, 외면하지 않을 수 있다. 구조되지 못한 이들을 잊지 않겠다는 그날의 다짐은 세월호 이후 우리가 배운 중요한 약속이다. 우리는 미얀마 시민들의 고통을 ‘그들의 일’로 남기지 않을 것이다. 침묵을 강요하는 권력 앞에서, 우리는 연대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비록 작고 조용한 목소리일지라도, 그 말이 곧 구조이자 연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