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인 콘텐츠가 난무하는 요즘, OTT 플랫폼과 극장가 곳곳에서 따뜻한 뒷모습이 보인다. 안감이 다 해진 낡은 양복을 입고 '사부작 사부작' 걸어가는 김장하 선생의 뒷모습이다. “돈이라는 게 똥과 같아서, 모아놓으면 악취가 진동하는데 골고루 뿌리면 좋은 거름이 된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어려운 사람들과 나눈 어른. 최근 이 어른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2023)와 책 <줬으면 그만이지>의 인기가 다시 뜨겁다. 지난달 윤석열 탄핵 심판 당시 선고문을 낭독한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검소한 일생이 주목받았는데, 그 삶의 배경엔 그를 학창시절부터 묵묵히 후원해 온 김장하 선생의 가르침이 있었다는 인연이 회자되면서다.

2시간 남짓한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에 담긴 김장하 선생의 모습은 그야말로 ‘독지가’다. 그는 경남에서 60년간 한약방을 운영하며 번 돈으로 1,00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건넸고,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위해 쉼터를, 존폐의 기로에 선 지역 언론과 지역문화를 위해 후원금을 아낌없이 제공했다. 자신이 이사장으로서 일군 고등학교를 국가에 헌납했고, 일생 동안 형평운동을 기리는 사업에도 힘썼다. 그러면서도 그는 언제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푼다는 ‘무주상보시’의 마음으로 자신의 선행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저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소외를 해소하고, 부당한 차별을 받는 사람이 없도록 베풂의 손길을 내밀 뿐, 혹여 자신에게 은혜를 갚길 원한다면 ‘사회에 갚으라’고 말한다.

그렇게 그의 손길을 거친 이른바 ‘김장하 키즈’들은 김장하 선생의 정신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사회에서 크고 작은 선을 실현하고 있었다. 일부 매체에 얼굴을 비춘 장학생들은 모두 김장하 선생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노라 입을 모은다. 청렴한 법관 생활이 재조명된 문형배 전 재판관도 수많은 ‘김장하 키즈’ 중 한 사람이다. 10년 전 MBC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부분이 지키지 않는 교통법규를 홀로 지키며 ‘양심 시민’으로 뽑힌 사람 역시 김장하 키즈였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선생이 베푼 선이 다양한 방식으로 공공의 선을 지탱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선생의 생은 김장하 키즈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아마 우리 사회에 그와 같은 ‘진정한 어른’이 태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착하게 살면 호구 된다’는 말이 치열한 경쟁 사회를 현명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덕목인 양 일컬어지는 오늘날, 사람들은 모두에게 손해이더라도 자신에게만 이익이기만 하면 충분한 선택인 양 여기기 마련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어른 김장하>는 그 제목처럼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선생의 삶을 길라잡이 삼아, 우리가 잊고 사는 선한 마음가짐과 진정한 어른으로서의 자세를 보여준다. 지난해 <채널PNU>에서 인터뷰차 만난 <어른 김장하>의 제작자 MBC경남 김현지(신문방송학 졸업, 99) PD는 작품을 통해 ‘우리가 너무 잘못 사는 건 아닌지’ 되짚어보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착하게 사는 것이 용감한 일이며, 훨씬 더 강한 연대로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담아서 말이다.

‘김장하 정신’의 큰 줄기는 ‘김장하 키즈’만이 이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는 것”이라는 선생의 말처럼, 우리는 누구나 선의 연대를 믿는 마음과 더 나은 어른이 되고자 하는 고민으로 우리가 속한 사회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 갈 수 있다. 갈수록 탐욕스러운 경쟁만이 격화하는 세상에서, 미래 세대인 또래에게 이 작품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은 이유다. 진정한 어른이 목마른 시대, 우리는 어떤 어른이 될 텐가.

                      윤다교 전문기자
                      윤다교 전문기자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