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부터 높아지는 키링 인기
-기업 홍보 수단 등 일상에 자리해
-개성과 취향 담아 만족도 높고
-'느슨한 취향 소속감' 느낄 수 있어
“가방에 키링이 없으면 허전해요.” 언어정보학과에 재학 중인 박 씨는 매일 아침 오늘의 옷차림에 어울리는 키링을 고르고 외출에 나선다. 박 씨의 가방에는 늘 3~4개의 키링이 달려 있다. 깔끔한 무채색 옷을 입을 땐 금속 키링을 달고,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셔츠를 입을땐 알록달록한 인형 키링을 선택한다. 최근 Z세대의 일상에서 키링은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 됐다. 단순 장식품을 넘어 개인의 취향과 감정을 표현하는 일상적인 소비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1922년 미국 발명가 새뮤얼 해리슨에 의해 등장한 열쇠고리, 즉 키링(key ring)은 현대에 디지털 도어락이 보급되면서 필요성을 점차 잃어갔다. 대신 △패션 아이템 △관광지 기념품 △연예인 굿즈 등 Z세대의 감성과 취향을 담는 필수품으로 재탄생했다. 단순 소품을 넘어 △기업 굿즈 △리셀 △가챠 문화까지 확장되며 키링은 놀이와 소비를 잇는 트렌드가 되고 있다. 19일 <채널PNU>는 2022년 이후 청년들의 일상이 된 키링 열풍을 직접 살펴봤다.
■Z세대의 일상으로 스며든 키링
키링으로 가방이나 휴대폰 케이스를 장식하는 건 MZ세대에게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우리 대학 재학생 박 씨(언어정보학)는 “키링은 포인트를 주기 위한 필수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박 씨의 △가방 △휴대폰 △에어팟 케이스 등에도 형형색색의 키링이 달려 있다.
키링 가격이 저렴하고 종류는 무한히 다양하다는 점에서 청년들의 소비문화와도 맞아떨어졌다. 이 씨(사회복지학, 22)는 “가격이 저렴해 매달 평균 2~3개씩은 산다”며 “주로 소품샵에서 귀여운 키링을 발견하면 사거나 전시회를 갔을 때 기억하고자 키링 굿즈를 산다”고 말했다.
<채널PNU>가 지난 9월 4일 1시간가량 우리 대학 부산캠퍼스 곳곳을 둘러본 결과, 대학생들의 가방과 휴대폰 케이스에서 하나 이상의 크고 작은 키링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캐릭터 키링, 여행 기념 키링, 뽑기로 얻은 키링 등 종류는 다양했다. 아무 이유 없이 달려있는 키링은 없었다. 최근 유행해 품절 대란을 일으킨 'CU 가나디 바나나우유'의 가나디 키링을 매달고 다니는 정인우(환경공학, 25) 씨는 "이 키링을 구하기 위해 주변 모든 편의점을 방문했다"며 "가방마다 각각 다른 키링을 매단다"고 말했다. 가방에 MBTI 키링을 매단 김민정(교육학 석사, 24) 씨도 "MBTI 유형별 상품이 특별해 보여서 구매했다"고 말했다.
키링의 인기에 덩달아 키링을 매달기 위한 '카라비너', 키링을 보호하기 위한 '투명 키링 파우치' 등 파생 상품까지 인기를 얻고 있다. 카라비너는 원래 암벽 등반시 로프를 연결하는 등산용품이다. 키링 여러 개를 동시에 매달다 보니, 기존 고리가 약해 떨어지는 경우가 많자 등장한 보완 아이템인 것이다. 별, 하트, 클로버 등등 형형색색의 카라비너는 물론 더 많은 키링을 달 수 있는 스피링 형태도 등장했다. 이 씨(23세, 부산 연제구)는 "여러 개의 키링을 고리 하나에 걸면 부딪혀 깨지거나 잃어버릴 위험이 커서 튼튼한 카라비너를 쓴다"며 "카라비너도 다양한 디자인이 나와서 키링의 매력을 더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투명 키링 파우치도 투명한 재질 덕분에 키링을 볼 수 있는 채로 손상을 줄일 수 있어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고가의 키링이나 아이돌 인형과 같은 굿즈 키링은 구하기도 어려운 제품이어서 이를 보호를 위한 파우치가 필수적이다. 투명파우치 안에 다른 물건을 넣거나 파우치 자체를 꾸미는 또 다른 매력까지 있어 인기다. 권서현(교육학 21, 졸업) 씨는 "키링도 보호하고 안에 교통카드 등 다른 소지품도 함께 넣어 다닐 수 있어 유용하다"고 말했다.
‘가챠’라 불리는 랜덤 뽑기 열풍도 키링 구매에 힘을 보탰다. ‘가챠’는 어떤 상품이 나올지 알 수 없는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불확실한 기대감에서 소비로 이어지고 결과를 확인할 때 도파민이 분비되는 반복적인 구조를 갖는다. 대부분 키링이나 인형, 피규어 등 캐릭터 상품으로 구성돼 있어 키링 수집 열기를 더한다. 박 씨는 “키링 중에서도 특히 가챠로 뽑을 수 있는 키링을 좋아한다”며 “뽑아서 원하는 게 나온 그 운좋은 순간이 기쁘고 재밌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중국 팝마트의 인기 캐릭터 ‘라부부(LABUBU)’가 한정판 랜덤 박스 형태로 출시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희소성과 뽑기 특유의 재미가 겹치면서 리셀가가 수십 배로 치솟아 100만 원 이상에도 거래되는 등 키링 열풍을 대표하는 사례로 꼽힌다. 이 씨는 “요즘 인형 뽑기방이 많이 생겨 심심하면 방문해 좋아하는 캐릭터 키링을 뽑기도 한다”고 말했다.
■갈수록 더해가는 키링 인기
국내에서 키링 열풍이 본격화된 것은 2022년으로 보인다.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Big Kinds)를 활용해 ‘키링 인기’를 검색·분석하면 키링 검색량이 급증한 시기와 일치한다. 키링 인기의 시작점에는 당시 편의점과 유통업계의 캐릭터 협업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빵 안에 포켓몬 띠부띠부씰이 든 ‘포켓몬빵’의 성행을 시작으로 △포켓몬 △산리오 △짱구 등 ‘랜덤 키링’을 출시해 흥행이 이어졌다. 이 흐름은 2023년 △디즈니 △춘배 △마루 △벨리곰 등 캐릭터 팝업스토어로 확산되며 탄력을 받았는데, 같은 해 7월 롯데백화점 잠실점에서 열린 데님 브랜드 ‘리바이스’와 ‘모남희’의 협업 팝업스토어에서 살 수 있는 한정판 컬렉션 키링은 즉시 완판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현재까지 키링은 식품·스포츠·항공 등 업계를 가리지 않고 기업 마케팅의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SPC 그룹의 베스킨라빈스는 모남희와 협업해 신메뉴와 한정판 키링을 선보였다. 한국프로야구 KBO가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판매한 에버랜드 캐릭터 ‘레싱앤프렌즈’ 키링은 순식간에 품절되기도 했다. 아시아나 항공 역시 지난해 2월과 5월, 인기 캐릭터 ‘벨리곰’ 키링을 항공권 구매 고객에게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하며 열풍에 합류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뷰티·커피 업계까지 확산됐다. △올리브영 △이디야커피 △컴포즈커피 △오설록은 일본의 캐릭터 브랜드 ‘산리오캐릭터즈’의 인기 캐릭터 키링을 굿즈 패키지에 포함했다. 특히 이디야커피의 ‘포차코 DIY 인형 키링(2종)’은 매장에서 음료 포함 8,000원 이상 구매 시 8,900원에 추가 구매할 수 있었으나, 네이버 스토어 등 리셀 시장에서는 2만 원 이상의 가격으로 거래되는 등 높은 인기를 보였다.
■키링, 느슨한 공동체의 연결고리가 되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키링 열풍의 이유를 ‘가시성’에서 찾는다. 적은 비용으로 취향과 기호를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같은 키링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형태의 ‘느슨한 공동체’까지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대구대 박은아(심리학) 교수는 “키링은 적은 비용으로 자기 취향을 보여줄 수 있는 가시성이 높은 물건”이라며 “유행에 동조하면서도 동시에 차별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고, 감성적 만족과 연결되기에 대중적 소비품으로 자리잡았다”고 분석했다. 건국대 김시월(소비자정보학) 교수는 “소비는 지극히 개인적 측면이 강하지만 동시에 소속감을 추구하며, 그 집단 내에서도 차별화를 원하는 심리가 있다”며 “키링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거나 소속감 욕구를 일부 대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키링의 랜덤 뽑기형 구매 방식에 대해서는 통제 욕구가 놀이 문화로 드러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선호하는 카테고리에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과 무작위 추첨에서 오는 ‘운에 대한 기대’가 결합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취업난과 경쟁 심화로 자기 삶을 통제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청년들이 작은 놀이 요소에서라도 원하는 키링을 얻으며 성취감을 찾으려 한다”며 “이는 내부 통제감의 결핍이 외부 통제적 행동으로 드러난 사례”라고 분석했다.
한편 과열된 키링 열풍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김 교수는 “’라부부’와 같은 제품에서 나타나는 과소비는 자기만족에서 출발하지만, 명품샵 앞에 텐트를 치고 오픈런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일본 버블경제 시절의 과열 소비와 닮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비는 어디까지나 소비자의 선택에서 비롯된 만큼 그 결과 또한 소비자가 감당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