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PNU 기획] 빈집의 변신
-부산 빈집, 광역시 중 가장 많아
-새 재생 공간으로 탈바꿈 '호평'
-전문가 "장기 지원·민관 협력 필요"

흉물로 여겨지던 부산의 빈집이 △카페 △숙박시설 △공방 등 공동체 재생의 거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 활력에 그치지 않으려면 지속 가능한 운영과 체계적인 관리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7일 정부 웹페이지 ‘빈집애’를 보면 지난해 기준 부산의 빈집은 1만 1,471호로 전국 빈집의 9%에 달했다. 이는 7개 특별·광역시 중 가장 많다. 서울의 빈집은 6,711호로 다음을 이었고 대구 6,009호, 대전 4,991호, 인천 4,178호, 광주 2,272호, 울산 1,849호 순으로 빈집이 많다. 이는 지자체가 실시한 빈집 행정 조사 결과로,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2023년 기준)는 이보다 많은 11만 4,245호로 집계된 바 있다.

빈집은 화재, 범죄, 위생, 안전 등의 문제와 함께 도시 쇠퇴를 가속화하는 요소로 지목된다. 이러한 빈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도시 재생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채널PNU>는 방치된 빈집이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한 △‘목금토’ 공방 △일러스트레이터 ‘노콩’의 창작 공간 △게스트하우스 ‘이바구 캠프’의 사례를 현장에서 직접 만나봤다.

■빈집에서 다시 시작된 삶

부산 영도구의 ‘빈집 줄게! 살러올래?’ 사업을 통해 정비된 봉산마을. [출처: 빈집애]

부산 영도구 봉래산 아래 자리한 봉산마을. 바다 냄새와 함께 부산항이 한눈에 펼쳐지는 이곳은 조선업 종사자들이 모여 살던 주택지였다. 그러나 조선업 불황과 뉴타운 해제 지정 이후 주민들이 떠나며 마을 곳곳에 빈집이 늘었다. 미로처럼 얽힌 좁은 골목과 경사진 비탈길, 빼곡히 모인 집들이 모인 이곳에 2020년 목공·금속·도자기 공방 ‘목금토’가 둥지를 틀었다.

지난 9월 14일 <채널PNU>가 직접 찾은 ‘목금토’는 오동꽃길 127에 있는 1층 빈집을 개조했다. 내부는 △도자기를 구울 수 있는 가마실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 작업 공간 △거주 공간으로 정비됐다.

영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목금토 성창현 대표는 조선업에 종사하던 중 무형문화재 허진규 선생을 만나 도자기의 세계에 매료됐다. 이후 대학에 진학해 도예를 전공한 그는 졸업 후 공방을 열고 싶었지만 자금이 부족했다. 그러던 중 2020년 시작된 영도구의 ‘빈집 줄게! 살러올래?’ 사업을 알게 됐다. 이 사업은 마을 내 빈집을 최대 5년간 무상 임대하고 리모델링 비용을 일부 지원하는 도시재생 뉴딜 사업이다. 단순 임대를 넘어 입주자가 마을에 뿌리내리며 공동체 일원이 되는 걸 목표로 한다.

성 대표는 고향에서 공방을 열 수 있다는 점에 이끌려 사업에 참여했다. 그렇게 그는 한 채의 빈집을 창작의 공간으로 바꿔냈다. 현재 목금토는 무상 임대 종료 후에도 활발히 운영 중이다. 그는 마을 장애인 기관이나 학교에서 수업에 참여하며 수익보다 지역 기여를 우선하고 있다. 성 대표는 “소중한 이웃, 마을, 공동체 등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몸소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마을의 일원으로서 방역 활동에도 참여하며 마을 공동체의 일상에 녹아들고 있다. 성 대표는 “이 사업을 통해 봉산마을이 ‘젊은 피’를 얻었다”며 “마을의 사무국장도 이 사업을 통해 배출된 인재고 청년답게 사업적인 고민을 하니 마을에 활기가 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목금토가 봉산마을의 대표적인 예술 공방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며 “목금토가 예술가의 작업실이자 이웃들의 쉼터 같은 곳으로, 사람들이 편히 와서 놀다 가는 공간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빈 공간에서 피어난 예술

부산문화재단의 '빈집 활용 창작공간 및 조성·운영 지원 사업'을 통해 창작 공간에 입주한 일러스트레이터 노콩 씨. [취재원 제공]
부산문화재단의 '빈집 활용 창작공간 및 조성·운영 지원 사업'을 통해 창작 공간에 입주한 일러스트레이터 노콩 씨. [취재원 제공]
'창작공간 빈집의 여름학기' 강연. [취재원 제공]
'창작공간 빈집의 여름학기' 강연. [취재원 제공]

도심 속 빈집도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입주 예술가 일러스트레이터 노콩(필명, @rohkong_) 씨의 작업실도 그렇게 탄생했다. 올해 노콩 씨의 작업실은 부산 부산진구의 도심 속 방치되던 빈집을 리모델링해 마련됐다. 이곳은 부산문화재단이 주관하는 ‘빈집 활용 창작공간 조성·운영 지원 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이 사업은 부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입주 예술가들이 2년간 무상으로 공간 임대와 운영을 위한 지원금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공간은 △개인 △기업 △공공기관 등이 소유해 기부한 부산의 빈집이나 유휴 공간에서 선정된다. 부산시와 부산문화재단의 관리하에 구·군 단위의 도시재생사업과 연계함으로써 예술인 집단 창작지 형성을 도모하고 있다. 사업을 통해 입주한 예술가는 자신의 창작 활동과 더불어 시민을 위한 문화예술 체험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단순히 작업 공간 제공을 넘어, 지역 주민과의 소통을 통해 일상에서 문화예술을 경험할 기회를 확장하자는 취지다.

노콩 씨는 지난 10월 9일 <채널PNU>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현재 작업 공간이 과거 누군가의 집이거나 사무실로 쓰이던 빈집이었다고 소개했다. 빈집에 페인트칠하고 손수 가구를 놓으며 노콩 씨의 작업 공간으로 재탄생됐다. 노콩 씨는 “혼자만의 공간을 넘어서 사람들과 예술로 연결될 수 있는 장소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개인 작업 공간으로, 상시로 개방되진 않지만, 다른 작업실과 달리 직접 프로젝트나 워크숍을 기획해 시민들과 소통함으로써 작업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콩 씨는 입주 후 지난 여름 ‘2025 창작공간 빈집의 여름학기’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해 지역과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노콩 씨는 “재단의 지원 덕분에 프로젝트형 강연이나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시도할 수 있었다”며 “이달에는 그림 작가들과 함께하는 ‘그림 그리는 날’을 주최하고 연말에는 해외 작가와의 2인전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노콩 씨는 빈집에서의 작업 활동에 만족해했다. 그는 “한동안 비어 있던 공간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를 담을 여유와 가능성이 생긴 것 같다”며 “이런 창작 공간이 동네 안에 존재한다는 건 예술가에게도, 지역 주민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술이 꼭 특별한 장소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도 이뤄질 수 있다는 걸 느낀다”며 “앞으로 이런 공간이 더 많아지면 비어있는 공간이 새로운 이야기로 채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광객이 찾는 집으로

부산 동구 이바구 캠프의 객실. 통유리창 너머로 부산항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김보경 기자]
부산 동구 이바구 캠프의 객실. 통유리창 너머로 부산항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김보경 기자]
부산 동구  이바구 캠프의 공동 주방 공간. 산복도로 마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김보경 기자]
부산 동구  이바구 캠프의 공동 주방 공간. 산복도로 마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김보경 기자]

빈집이 ‘머묾’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부산 동구 초량동에 위치한 ‘이바구 캠프’는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빈집을 게스트하우스로 탈바꿈했다. 2016년 산복도로 르네상스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이바구 캠프는 총 4채로 구성돼 있으며, 이 중 2곳은 당시 마을에 방치돼 있던 빈집을 매입하고 리모델링해 관광객이 체류할 수 있는 숙박 시설로 만든 공간이라는 게 이바구캠프 현 운영자의 설명이다. 부산의 원도심 관광이 활성화되던 시기, 산복도로의 정취를 느끼며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지난 9월 24일 <채널PNU>가 찾은 이바구 캠프는 △체크인 센터 △게스트 하우스 △예술 공방 △멀티 센터 등 네 채의 건물로 구성돼 있었다. 가파른 언덕 위에 자리해 오르기가 쉽지 않았지만 가장 먼저 체크인 센터가 방문객을 맞았다. 게스트하우스 내부는 공용 주방과 공용 샤워실, 그리고 숙박용 객실로 이루어졌다.

이바구 캠프는 현재 초량6동 마을 주민들이 설립한 법인인 ㈜이바구 캠프가 부산 동구청으로부터 위탁받아 운영 중이다. ㈜이바구 캠프 김현정 대표는 “단순한 숙박 시설을 넘어 마을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공간”이라며 “운영 수익의 일부는 다시 마을로 환원돼 주민 활동에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곳은 연로해 일자리가 부족했던 마을 장년층에게 숙소 관리, 청소 등 소일거리를 제공하며 생활 수익을 얻을 기회를 만들고 있다.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이 부족한 지역 특성상, 주민들이 언제나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김 대표는 “마을 안에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이 없어 주민들이 언제나 이바구 캠프를 활용할 수 있도록 매일 24시간 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축 건물을 개조한 만큼 공간 유지와 관리가 어렵기도 하다. 김 대표는 “가장 큰 문제는 누수”라며 “건물이 오래돼 발생하는 누수는 원인을 찾기 어렵고, 내부가 썩어 곰팡이 냄새를 유발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되살아난 공간의 내일은

탈바꿈한 빈집들은 도시재생의 성공적 사례로 꼽히지만, 지속 가능성 측면에선 여전히 과제가 남는다.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재탄생한 공간이 다시 빈집으로 돌아가는 악순환의 우려가 제기된다. 성 대표에 따르면 실제로 영도구의 ‘빈집 줄게! 살러올래?’ 사업의 경우 무상 임대 5년이 종료된 후 절반이 넘는 입주자들이 봉산마을을 떠났다. 장사가 잘되지 않거나 임대 종료 후 공간 유지를 위한 재정적 부담이 커진 탓이다.

이에 대해 우리 대학 우신구(건축학) 교수는 “빈집에 불량 청소년이나 주거가 일정하지 않은 이들이 머물며 화재나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며 “길동물과 벌레가 번식하는 등 위생 문제가 발생하고 건물과 담장이 무너져 주변에 피해를 주는 안전 문제로도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빈집이 몰린 지역은 마을 전체에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서 이미지가 훼손되고 방문 유입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공공과 민간의 협력을 통해 빈집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이를 토대로 실수요자와 연결하는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빈집은행’이나 민간 주도의 빈집 리노베이션 단체가 있다. 우 교수는 “빈집의 상태와 활용 가능 여부, 소유자의 매각·유지·임대 의사를 정기적으로 파악해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연결할 수 있는 민간 또는 민관협력의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며 “일본이 우리보다 앞서 빈집 문제를 겪으며 다양한 대책을 마련한 것처럼 성공 사례를 찾아 벤치마킹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도시재생 사업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기적 지원도 필요하다. 우 교수는 “도시재생 사업은 통상 3~5년이지만, 실제 자립까지는 6년 이상 걸린다”며 “운영 지원이 끊기면 자립이 어려워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아, 공공뿐만 아니라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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