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PNU, 금정구 스쿨존 점검
-내리막길에 방호 울타리 없고
-보행자용 신호등 꺼진채 방치
-통학용 보행로 없는 곳도 '아찔'
-시민단체 "市 조사결과 공개해야"

지난 7일 찾은 한 중학교 앞 어린이 보호구역. 이곳을 지나가던 어린이는 익숙한 듯 길가에 주차된 차량을 피해 차도로 걷기 시작했다. 그 옆으로 흰색 트럭과 회색 승용차가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다. 부산시가 ‘어린이 통학로 종합안전대책’을 내놓은 지 3개월이 지났지만 학교로 향하는 길은 여전히 위험천만했다.

지난달 1일 낮 2시, 금샘초등학교 인근 어린이 보호 구역의 도로를 따라 한 학생이 걸어가고 있다. [유승현 기자]
지난달 1일 낮 2시, 금샘초등학교 인근 어린이 보호 구역의 도로를 따라 한 학생이 걸어가고 있다. [유승현 기자]

지난 7월 28일 ‘안전한 어린이 통학로 확보를 위한 부산시민사회 대책 위원회’는 부산북부경찰서 앞에서 스쿨존 안전 점검 전수조사 결과 공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5월 부산시는 어린이 통학로 위험 요소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안전대책을 발표했으나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여전히 부산시 내 어린이 통학로 중 어디가 위험한지, 조사가 얼마나 정확히 이뤄졌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대책 위원회를 이끄는 박찬형 부산참여연대 지방자치본부장은 “스쿨존 전수조사와 대책발표가 모두 한 달 만에 이뤄졌다”며 “조사 결과가 공개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조사가) 부실하게 진행됐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채널PNU>는 지난 8월 3일부터 8월 7일까지 전수조사 내용에 해당하는 위험 요소를 중심으로 금정구에 위치한 21개의 초등학교 앞 어린이 통학로를 찾아 안전 점검을 진행했다. 5일 간 △횡단보도 신호등 작동 △양방향 보행로 확보 △경사면 방호울타리 설치 △불법 주정차 단속 등을 기준으로 안전을 확인한 결과, 부산시가 안전대책을 발표한 후 3개월 동안 진행했다고 했던 ‘신속한 정비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금정구 내 어린이 통학로 앞은 여전히 전수조사 범위에 포함된 위험요소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금정구 내 21개 초등학교 앞 스쿨존 어린이 사고건수(2013~2022) (출처: TAAS교통사고분석시스템) 및 채널PNU 자체 위험 요소 안전 점검 결과. (c)김신영 기자
금정구 내 21개 초등학교 앞 스쿨존 어린이 사고건수(2013~2022) (출처: TAAS교통사고분석시스템) 및 채널PNU 자체 위험 요소 안전 점검 결과. (c)김신영 기자
2020년~2022년까지, 3년 동안 21개 초등학교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 발생한 사고 건수는 총 109건이었다. (출처 :TAAS교통사고분석시스템) [김신영 기자]
2020년~2022년까지, 3년 동안 21개 초등학교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 발생한 사고 건수는 총 109건이었다. (출처 :TAAS교통사고분석시스템) (c)김신영 기자

■어린이를 보호하지 못하는 '어린이 보호구역'

부산학부모연대는 통학로에서 가장 위험한 부분으로 내리막길을 꼽았다. 내리막길에서 차량이 미끄러져 발생하는 사고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산지 지형인 만큼 금정구 어린이 보호구역에도 비탈길이 많았지만,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고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채널PNU> 조사 결과 21곳 가운데 차량 미끄럼 방지를 위한 방호울타리가 설치된 곳은 단 3곳(14.3%)에 불과했다. 특히 15도가 넘는 경사가 이어져 있는 서동초 앞 교차로에도 안전 방안은 미끄럼방지 노면이 깔린 것이 전부였다. 자녀가 서동초에 다니는 심정선 학부모연대 서동지회장은 “지난달에도 사하구에서 경사로를 따라 내려오던 트럭이 보행자용 펜스를 밀치고 보도까지 들어온 사고가 있었다”며 “언제까지 안전 문제를 사후적으로 대처할 것인지 불만이다”라고 토로했다.

서동초등학교 옆의 가파른 경사로 끝에 있는 횡단보도엔 황색 신호가 깜빡였다. [유승현 기자]
서동초등학교 옆의 가파른 경사로 끝에 있는 횡단보도엔 황색 신호가 깜빡였다. [유승현 기자]

보행자 신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횡단보도도 문제다. 보행자 신호등이 꺼진 상태로 방치된 횡단보도가 21곳 중 9곳(42.9%)에 있었고, 신호등이 아예 없는 횡단보도도 골목마다 있었다. 보행자용 신호등이 꺼진 삼육초 정문 앞 횡단보도는 양 옆으로 세워진 차들로 인해 시야의 확보도 어려웠다. 금정산쌍용예가 1차와 2차 아파트 사이 ‘어린이 보호구역’ 표시가 달린 비탈길에는 보행자 신호등도, 보호펜스도 없었다. 지난 6월 19일에는 부산 북구 백산초 인근 보행자 신호가 들어오지 않는 스쿨존에서 난 교통사고로 20대 사서 교사가 의식불명에 빠지기도 했다. 피해자 가족은 보행자 신호 작동을 요구했지만, 경찰청은 ‘교통량’을 이유로 차량 황색 신호등(주의)을 적색 신호등(잠시 멈춤)으로 변경하는 데 그쳤다.

통학용 보행로가 마련되지 않은 곳 역시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부곡초의 경우 통학용 보행로는 학교에서 50m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끊겨 있었다. 이에 공사장으로 향하는 레미콘 트럭이 부곡초 앞 좁은 길을 지나던 중 승용차와 마주쳤고, 학생들은 옆에 주차된 사이로 몸을 피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시는 안전대책에서 “보행로를 만들기 힘든 도로는 일방통행을 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학생과 차가 뒤섞이는 좁은 골목길에서도 일방통행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난 15일 서동초등학교 정문 앞, ‘불법 주정차 과태료 부과’ 현수막이 걸려있지만, 여전히 차들은 길가에 버젓이 주차돼 있었다. [유승현 기자]
지난 15일 서동초등학교 정문 앞, ‘불법 주정차 과태료 부과’ 현수막이 걸려있지만, 여전히 차들은 길가에 버젓이 주차돼 있었다. [유승현 기자]

불법 주차 문제도 심각했다. 청룡초 인근 빌라촌과 상점가 앞은 모두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됐음에도 이면도로를 따라 차들이 주차돼 있었다. 교통사고분석시스템 TAAS에 따르면 청룡초에선 지난해 2건의 어린이 보행자 사고가 발생했다. 현재 2021년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라 어린이 보호구역 내 모든 도로에서 차량 주·정차는 전면 금지다. 이에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불법주정차로 단속된 차량은 일반도로보다 3배 많은 12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불법 주·정차 주행형(차량) 단속시스템 강화 지역’이라는 현수막이 붙어있는 곳 앞에서도 불법 주차 차량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안전한 통학 환경…"시민과 함께 만들어 가야"

시는 여전히 통학로 전수조사 결과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전수조사 결과가 공개되면 정책 결정의 후속 단계에서 외부의 부당한 압력이나 분쟁에 휘말리는 상황이 초래될 우려가 있단 것이다. 특히 아직 고위험 통학로 설정에 대한 기준과 근거가 명확히 설정되지 않아 정보공개가 가능한 상황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금정구 교통행정과 김현재 주무관은 “조사 과정에서 나온 여러 사안의 위험도 조사, 정비 가능 여부 등을 확인 중”이라며 “추후 전수조사에 관한 최종 확인 절차가 종료돼야 정보 공개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시의 어린이 통학로 전수조사는 지난 4월 28일 부산 영도구 청동초등학교 인근에서 등교하던 초등학생이 불법 용역 작업을 하던 지게차에서 떨어진 1.7t짜리 어망에 깔려 사망한 사건 이후 황급히 이뤄졌다. 지난 5월 9일부터 17일까지 부산 관내 853개소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조사가 진행됐다. △구·군청 교통안전 부서 △교육지청 △관할 경찰서 △학교운영위원회 등 약 420명이 ‘구·군 현장 합동조사팀’으로 참여했다.

시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5월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어린이 통학로 종합안전대책’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안전 인프라 구축 △통학로 확보 △위험로 집중관리 △협업체계 및 제도개선 등의 내용이 담겼다. 기자회견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은 “고위험 지역에 대해서 가용예산 150억 원을 우선 투입해 신속히 정비에 나서겠다”며 “더 이상 소중한 어린 생명이 희생당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기다렸던 조사 결과가 공개되지 않자 학부모들의 걱정이 잇따르고 있다. 부곡초 정문에서 자녀의 하교를 기다리던 A(부산 금정구, 42) 씨는 “아이에게 최대한 인도로 다니도록 교육하고 있지만 항상 불안하다”며 “인도가 없는 골목길을 다닐 때는 특히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참여연대와 부산학부모연대 등 시민 단체는 시가 전수조사 결과를 빠른 시일 내에 공개하고 학부모와 학교 측이 협력해 제대로 된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진희 부산학부모연대 공동대표는 “정보 공개를 청구한 것은 시를 질타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사에서 부족한 점이 있다면 협력하려는 의미”라며 “학부모 및 교사와 함께 스쿨존을 더 꼼꼼하게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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