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호 전문경력교수(사회복지학 81, 졸업)
-36년 간 KBS 교양 PD로 근무하며
-'추적 60분', '한국인의 밥상' 등 제작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게 많은 직업"
-"이젠 기획의 시대, 부단히 고민해야"
-"치열해도 겁먹지 말고 도전하길"

우리 대학 출신인 황용호(사회복지학 81, 졸업) 교수는 KBS에서 교양 PD로 36년을 근무하며 △<추적 60분> △<한국인의 밥상> △<KBS 역사 스페셜> △특집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았나> 등의 명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특히 특집 <한국 사회를 말한다>의 CP로서 ‘안종필 자유언론상’과 ‘올해의 PD상’ 등을 수상하며 2000년 전후 한국 사회의 가장 대표적인 PD로 자리매김했다. 중앙 일간지 ‘한겨레’는 2003년 한국의 미래를 열어갈 100인으로 그를 선정했다. 손석희 JTBC 전 대표,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 등 국내 언론계를 이끌어가는 굵직한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채널PNU>는 최근 모교인 우리 대학으로 돌아와 강단에 선 그를 ‘효원人사이드’ 주인공으로 섭외했다. 전문경력교수로 초빙된 그는 지난해 9월부터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에서 방송 콘텐츠와 다큐멘터리 제작 실습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4월 19일 본사 스튜디오에서 황용호 전문경력교수를 만났다.

지난 4월 19일 채널PNU 스튜디오에서 황용호(사회복지학 81, 졸업) 교수를 만났다. [조승완 전문기자]
지난 4월 19일 채널PNU 스튜디오에서 황용호(사회복지학 81, 졸업) 교수를 만났다. [조승완 전문기자]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부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81학번 황용호입니다. 졸업 후 1987년 교양 PD로 KBS에 입사해서 36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임원을 그만두고 정부의 전문 경력 인사가 되어 현재 우리 대학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에서 두 학기째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는 2026년 8월까지 계속 강의할 생각입니다.

△학부 시절 우리 대학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제가 대학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은 ‘동아리에 들어가야겠다’였습니다. 그래서 극예술연구회에 가입했어요. 중고등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연극을 많이 했거든요. 참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대학에서 연극을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오래는 못 했어요. 저는 취미 활동하려고 들어왔는데 막상 몇 달 있어 보니 취미 정도가 아니더라고요. 연습량이 상당해서 수업도 뒷전이 됐습니다. 중간이 없는 것 같고, 제가 연극에 그리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아 눈물을 머금고 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PD라는 직업을 꿈꾸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중고등학교 때 교회를 다니면서 교인들을 위한 잡지를 만들었습니다. 잡지를 만들면서 글도 많이 쓰고 신문을 끼고 다녔어요. 그때 막연하게 저널리스트에 대한 생각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극예술연구회 선배 중에 KBS 드라마 PD가 한 분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 저널리스트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연극에 대한 꿈, 영화감독에 대한 로망 같은 것들이 방송 PD라는 직업으로 연결됐습니다. 그래서 3학년쯤부터 PD라는 직업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 거죠.

시험은 (친구들과) 같이 준비해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5명이 같이 공부를 했죠. 그중에서 2명은 신문 기자, 2명은 방송 PD가 됐습니다. 3학년 후반부터 거의 2년 동안 하루에 한 13~4시간씩 공부했을 거예요. 먹고 자는 것 외에는 다 공부에 할애했던 시기였죠. 도서관에서 매일 만나 각자 공부하면서 상식 문제는 각자 추려서 같이 공유하는 방식으로, 따로 또 같이 공부했었네요.

△지금으로부터 36년 전 당시 KBS는 어땠나요?

-당시 KBS는 전두환 정권의 앞잡이였죠. 정권이 워낙 힘이 강했으니까요. 반대로 내부에서는 그것에 대한 반발도 거셌습니다. 그 두 가지가 큰 충돌이 일어났던 시기였습니다. KBS의 역할에 대한 반성과 자책이 내부에서 끓어올랐고, 그것이 87년에 ‘PD 연합회’라는 조직과 ‘88년도 노조’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어요. 동시에 <추적 60분>이라는 프로그램도 탄생하게 됐습니다. PD들이 공영방송으로서 사회의 불합리한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지적을 해보자는 열망을 표현한 거죠. 당시에 저처럼 갓 들어온 후배들은 나도 언제 저런 프로그램을 해볼 수 있을까 기대를 하곤 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하나의 직업으로 근무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을까요?

-사실 돌이켜보면 PD라는 일이 저한테 잘 맞았던 거죠.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오랫동안 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물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고통도 심하고, 누군가가 하지 않은 걸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스트레스는 매우 강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창의적인 일이 적성이었던 것 같아요. 나름대로 성과도 좋았고 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PD 연합회에서 수여하는 상이 있는데, 동료들이 인정해 준다는 건 사실 특별하잖아요. 그런 것이 주는 카타르시스도 있고, 영상을 보고 기획을 만들고 편집하는 그 일들이 저한테는 힘들면서도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PD로 근무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추적 60분>을 진행할 때, 대구의 한 권력자가 데리고 있던 어린 가정부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었습니다. 경찰 수사로 빙초산을 먹고 자살했다는 결과가 났으나, 자살이 아닌 권력자에 의해서 맞아서 죽은 것 같다는 주민의 제보가 있었습니다. 정황을 파악해 보니 매우 신뢰할 만한 제보였습니다. 바로 취재에 들어갔는데 워낙 권력이 센 사람이다 보니 협박도 많았죠. 멈추지 않고 취재한 결과 빙초산을 먹고 죽은 게 아니라는 증거를 찾았습니다. 당시 발견된 빙초산 병 안에는 생명에 위해가 되는 어떠한 물질도 없었다는 국과수 검증 결과를 찾은 겁니다. 경찰은 국과수 검증 결과가 있었음에도 감추고 수사 결과를 조작한 거죠. 이후 검찰에서 지시가 나와 재수사를 시작했고, 권력자는 재판 끝에 교도소에 갔습니다. 제가 평생 만든 프로그램 중 가장 인상적인 기억입니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구타나 협박 등의 압력이 들어오나요?

-다행히 저는 물리적인 폭행을 당한 적은 없습니다. 그래도 압박을 엄청 많이 받죠. <추적 60분> 당시 대구를 취재할 때는 뒤에서 차가 한 대가 계속 따라왔습니다. 제가 대구에 출장을 나가 있는 동안, 경상도 말을 사용하는 신원미상의 사람이 집으로 전화를 걸어 저희 아이가 다니는 학교 등 이상한 것들을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계속 심리적으로 압력을 넣는 겁니다.

△두렵진 않으셨나요?

-두렵죠. 그런데 사실 <추적 60분>은 취재를 받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을 취재해야 하잖아요? 불편한 취재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초반에 기 싸움이 생깁니다. 그 기에 눌리면 안 돼요. 그래서 <PD 수첩>이나 <추적 60분>을 맡는 PD들은 기가 강해야 합니다. 맞설 수 있는 배짱과 용기가 있어야 하는 거죠. 두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위해를 가하면 얼마나 큰 부작용이 이는지 상대도 알기 때문에 쉽게 피해를 입히지 못합니다. 그래서 항상 내가 취재한 내용을 상대방이 다 파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방송하는 것보다 더 많은 취재를 하고 카드로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KBS에서 PD로 근무하던 당시 황용호 교수의 모습. [황용호 교수 제공]
KBS에서 PD로 근무하던 당시 황용호 교수의 모습. [황용호 교수 제공]

△PD로서 진행한 프로그램 중 가장 의미 있는 프로그램은 무엇인가요?

-저한테 가장 의미 있는 프로그램은 창원 KBS에 있을 때 제작했던 <풀림의 소리: 밀양 아리랑>이라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저한테는 PD로서 눈을 뜨게 해줬던 프로그램이죠. 당시 입사 이후 두 번째 월급을 받아서 큰마음을 먹고 판소리 전집이라는 LP판을 구매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회사에서 새 프로그램 기획안을 공모한다는 공고가 났어요. 아이디어를 찾으려고 LP판을 뒤적거리다 보니 ‘밀양 아리랑이 일제 강점기에 독립 운동가들의 광복군 아리랑이 되었다’는 내용이 있더라고요. 경상도의 밀양 아리랑이 중국 연변에서 활동하는 광복군의 아리랑이 되었다는 점이 참 재밌었습니다. 그래서 그걸 기획안으로 만들어서 제출한 거죠. 그 기획안이 통과되면서, 제대로 된 다큐멘터리를 처음 만들게 됐습니다. 당시 평도 좋았고 PD로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추적 60분>, <한국인의 밥상> 등 유명 프로그램을 맡는다는 것이 부담되지는 않나요?

-부담되죠. 저는 제일 힘들었던 게 <추적 60분>이었습니다. 보통 우리가 회사에서 퇴근하면 일이 끝나잖아요. 퇴근 이후에는 휴식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야 하는데 <추적 60분>을 맡았을 때는 퇴근하는 어깨에 짐을 잔뜩 진 것만 같았습니다. 고민할 게 워낙 많고, 어떻게 취재해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60분가량의 영상을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니까요. 그래서 자다 깨고, 새벽에 다시 회사로 나오기 부지기수였습니다. 사회적인 반향이 매우 큰 프로그램이다 보니 조심스러운 취재 과정에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요, 그만큼 또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PD라는 직업 자체가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게 참 많습니다. 힘든 만큼 많이 배우는 거죠.

△프로그램이 나오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기획의 시대에 접어드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제작을 잘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특집 팀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모든 PD를 대상으로 기획안을 공모해요. 제작을 잘하는 것보다 창의적이고 차별화된 좋은 기획안을 내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말이에요. 제작은 잘하는 사람이 옆에서 도와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창의적인 기획안은 각자가 만들어내지 않으면 방법이 없죠. 그러니 어떤 새로운 것을 기획해 낼 것인지 부단히 고민해야 하고, 제작 단계에서는 자신의 콘텐츠가 얼마나 객관적이고 설득력이 있는지 잘 판단해야 합니다.

△PD를 한 단어로 표현해 주시겠습니까?

-설렘입니다. 지금도 새 프로그램이 나오는지를 유심히 보고 있거든요. 각 방송사의 새 프로그램이 방영된다고 하면 보기 전부터 설레어 와요. 이 프로그램을 위해 PD는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어떻게 이런 프로그램이 가능하지? 등과 같은 많은 의문이 떠오르는 거죠, 특히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PD의 이야기를 들으면 되게 설렙니다. 그리고 제가 만들었던 프로그램이 요즘 유튜브에 나오기도 하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되게 기쁘죠. 제가 사회적으로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만나지만, 옛날에 같이 일했던 PD들을 만나면 제일 반갑습니다. 가장 힘들고 보람 있던 순간을 함께한 사람들이니까요. 그래서 프로그램을 보거나 사람을 만나면 설레는 것 같아요. PD라는 직업은 아직도 저한테 설렘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PD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있다면요?

-PD라는 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활용하는 직업입니다. 그래서 PD는 주로 머리와 말로 일을 해요. PD는 촬영을 하지도, 작가처럼 글을 쓰지도 않습니다. 그렇기에 본인이 중심이 되어 주변의 많은 사람과 더불어 일을 해야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더욱 중요하죠. 그만큼 관계가 주는 스트레스도 매우 커요. PD가 준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전문가다운 PD로서 존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요. 항상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이제 후배들을 교육하는 교육자가 되셨는데, 모교로 돌아와 보니 어떠신가요?

-앞서 말했던 전문 경력 인사 활용 제도에 지원했는데, 대학 선정 과정에서 우리 대학에 오고 싶더라고요. 제 모교이기도 하지만 부산이라는 도시가 가진 다이내믹한 역동성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모교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매주 서울에서 수업을 위해 내려오는 것이 힘들지 않냐고 많이들 묻는데, 저는 즐겁습니다. 저는 학생들한테 첫 수업에 저의 세 가지 역할을 얘기합니다. 하나는 수업을 하는 교수, 하나는 콘텐츠의 레벨을 위해 고민하고 의논하는 CP(책임프로듀서), 그리고 마지막은 언론에 대한 경험을 같이 나눠주는 선배의 역할이라고요. 그 세 가지 역할을 수업 동안 잘해보자는 것이 제 진심입니다.

△방송이나 언론을 준비하는 후배들한테 조언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영상의 시대죠. 그런데 영상의 시대는 경쟁이 엄청 치열합니다. 그렇다고 기죽을 건 없는 것 같아요.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좋습니다. 영상 매체로 가려고 하면 경쟁이 아무리 치열해도 이 길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옛날보다 길이 더 다양해졌습니다. 너무 큰 메이저 방송사만 집착할 필요가 없는 거죠. 너무 겁먹지 말고 방법을 다양하게 찾아보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영상 매체 쪽으로 간다는 것은 영상을 통해 대중들과 호흡하겠다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사회 트렌드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사회 트렌드를 잘 들여다봐야 대중들이 원하는 아이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사회에 대해 여러 방식으로 관심을 꼭 가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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