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PNU 기획 기사
-군 복무 부상자들 주변에 많아
-군대서 다치면 '모르쇠'에 상처
-CRPS로 아직 고통 받는 송 모(기계공학, 22) 씨
-허리 디스크 파열 보상 없는 허정민(역사교육, 22) 씨
‘겨레의 늠름한 아들로 태어나, 조국을 지키는 보람찬 길에서…’ 시인 박목월이 가사를 지은 군가 ‘전우’의 첫 소절. 군은 그 가사대로 조국과 국민을 지키는 국가 안보의 최전선이자 최후의 보루다. 그 임무를 위해 20대의 젊은 청춘은 위병소를 넘어 1년 6개월이란 시간동안 국가에 충성하며 낮엔 훈련에 밤엔 경계에 나선다. 하지만 군대는 이들의 희생과 충성을 외면하고 있다.
해병대 제1사단에 소속된 해병대원이 지난해 7월 집중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던 과정에서 급류에 휩쓸려 숨져 세간에 큰 충격을 안긴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지난 5월 신병훈련소 훈련 과정에서 박 모 훈련병이 규정을 위반한 얼차려로 입소 13일 만에 사망했다. 연간 군 사망자는 90여 명에 달한다. 알려진 이름보다 숨겨진 이름이 더 많은 군대 내 사고의 피해자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0대의 평범한 청년이다.
우리 대학 통계 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대학에 입학한 남학생 2,594명이다. 지난해 남성의 83%가 현역병으로 입대했다는 병무청 통계를 바탕으로 추정하면 매년 2,100여 명은 1~2년 이내에 군휴학 후 입대하고 있는 셈이다. 대부분의 청춘들은 다행히도 군 복무를 마치고 무사히 사랑하는 이들의 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군대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고도 아무런 책임조차 지지 않는 곳으로 남아있다.
■들어올 땐 우리 아들, 다치면 남의 아들
지난해 7월 군 복무 도중 발병한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RPS)으로 인해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다는 우리 대학 재학생 송 모(기계공학, 22) 씨는 사고가 발생한 후, 5개월이 흘러서야 제대로 된 조사를 받고 공상 처리를 받아 전역할 수 있었다. CRPS는 외부 자극에 자율 신경계가 과도한 반응을 보이며 부상 부위가 이유 없이 붓고 극심한 통증을 일으키는 신경계 희귀 질환이다.
아침 점호를 받기 위해 급히 생활관으로 뛰어 올라가다 발목이 꺾여 굴러 넘어진 송 씨는 전우들의 도움으로 겨우 앉아 의무대에 가기 위해 기다렸다. 그는 “(부대에서) 제가 의무 후송 차량 조건에 부합하지 못하다고 판단해 일반 차량으로 의무대에 갔는데 1시간 정도 지체됐다”며 “가까스로 간 의무대에서도 군의관이 현재 응급실 엑스레이를 지금 운용할 수 없어 상위 기관인 국군춘천병원으로 가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가 복무했던 부대에서 국군춘천병원까지는 차로 4~50분을 더 가야 하는 거리였고, 차량 배차를 기다리느라 진료까지의 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하지만 송 씨는 국군 병원에서도 제대로 된 처방을 받지 못했다고 얘기했다. 그는 “제가 복무하던 부대에서 국군춘천병원까지 거리가 멀어 도착했을 땐 사고가 발생한 지 벌써 6시간이 지났다”고 말했다. 이어 “응급실에서 겨우 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었는데 발목과 발등에 각각 골절이 생겨 있었다”며 “처방으로 목발과 깁스, 진통제를 받고 (부대로) 복귀했다”고 밝혔다.
그 이후로도 한 달 동안 부기와 통증이 가라앉지 않자 왕복 6시간이 걸리는 국군수도병원을 찾았다. 그는 “정형외과에서 CT 촬영을 했는데 군의관이 ‘아픈 척 하지마라’고 말하며 깁스를 한 발 상태도 확인하지 않았다”며 “1분도 되지 않아 진료실을 나왔다”고 당시를 묘사했다.
군의 ‘늦장 치료’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조사에서도 볼 수 있다. 지난 2020년 인권위가 의뢰한 ‘장병 건강권 보장을 위한 군 의료체계 실태조사’에 따르면 군 장병의 24.8%가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군 의료체계에 대한 불신 은 현역병의 민간병원 이용 현황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2022년 현역병의 민간병원 입원은 4만1,155건으로 10년 사이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코로나19 사태로 잠시 주춤했던 전체 민간병원 이용 건수도 1년 간 30만 건이 늘었다.
‘이게 제대로 된 치료인가’하는 생각을 했다는 송 씨는 민간병원인 강원대학교 병원에 가서야 CRPS로 의심되니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는 진료의뢰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휴가와 돈을 써서 방문한 서울 소재 병원에서 몇 개월간의 약물치료를 받은 뒤에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CRPS 진단을 받고 5급 공상으로 전역 처리됐다. 송 씨는 “지금도 자려고 누우면 매운 것을 먹었을 때처럼 얼얼한 느낌이 발에 느껴진다”고 말했다.
■다치는 순간 바뀌어 버린 미래
복잡한 절차와 기관 간 떠넘기기에 보상을 포기했다는 우리 대학 재학생 허정민(역사교육, 22) 씨는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며 취재진과의 인터뷰에 나타났다. 그는 지난 4월 훈련소에 들어간 지 7일 만에 허리 디스크가 파열돼 군 복무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입영 첫 주 금요일 응급 처치훈련 과정에서 부상자 이동 훈련을 함께한 동료 훈련병의 실수로 허리에 업은 부상자 역할을 한 훈련병의 무게가 허 씨에게 쏠리며 허리에 무리가 갔다.
허 씨는 주말 동안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다리가 점점 저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마비 증상까지 찾아왔다. 월요일 아침 허 씨는 부대 소대장과 함께 외진을 갔다. 그는 “소대장과 함께 군 협력 기관인 민간병원으로 향했다”며 “(병원에서) 허리 디스크가 파열됐다는 진단을 받았고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결국 퇴소를 권한 중대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군 위병소를 통과한 지 일주일 만에 다시 사회로 돌아왔다.
퇴소 후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허 씨는 치료비를 보상받을 수 있을지 찾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다. 하지만 군대에서 다친 후 발생한 비용과 시간은 어느 곳에서도 보상해 주지 않았다. 그는 “육군본부·병무청·보훈부가 서로 관할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고 (어디까지가 자신의 관할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며 “세 곳이 서로 업무를 돌리기만 하고 답을 얻지 못해 결국 보상을 포기했다”고 전했다.
허 씨는 “5월 초에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았고 신체 검사에서 5급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20분 걷는 것도 어려웠지만 꾸준히 물리치료를 받으며 이제는 1시간까지 걸을 수 있게 됐다. 그는 무엇보다도 “시간이 아깝다”며 “복학을 하지만, 학교를 잘 다닐 수 있을지 의문이고 지금도 다리를 절면서 제대로 걸어 다니기 어려워 다시 휴학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군대에서 부상을 입고도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신체 부위별로 부상 정도별로 기준이 엄격하기 때문이다. 새끼손가락이 잘리거나, 발가락 하나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아도 보훈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올해 상반기에만 2,057명이 국가 유공자 및 보훈보상대상자 등록을 신청했지만 1,039명(50.5%)이 기준 미달로 국가보훈 대상이 되지 못했다. 훈련소를 이미 퇴소했던 허 씨는 치료비를 보상받을 수 없게 됐다고 한다.
허 씨는 “동생도 이제 군대에 가야 하는데 “어차피 군대 가야 하는 거 빨리 다녀와라”고 말씀하시던 부모님이 요즘은 “웬만해서 군대에 안 갔으면 좋겠다”고 얘기하신다”며 “저에게 티를 안 내려 노력하시지만 상심이 크고 슬퍼하시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다치고 싶어서 다친 게 아닌데 군대에서 당한 사고로 부모님에게 죄송해야 하는 게 너무 슬프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