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6일은 옳지 못한 지시로 인해 2023년 7월 19일 순직한 해병대원이 살아 있었다면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날에 순직한 해병대원의 동기들은 포항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추모행사를 진행해야만 했다. 사고가 발생한지 1년이 넘게 흘렀지만 책임자를 향한 수사는 제자리걸음이다. 유가족은 그 누구도 책임을 지고 있지 않음에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도 군대 사건·사고 보도는 계속됐다. 군 복무를 마친 기자는 경험적으로 뉴스에 보도되는 일은 극히 일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군 사건·사고가 ‘뉴스 속’ 일이 아닌 ‘우리 주변’의 일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 그렇게 취재에 들어갔고 군 복무 중 피해를 당한 사례를 찾기 시작했다. 군 복무 중 크게 다쳐 억울함을 호소하는 대학생들은 생각보다 빨리 나타났다. 자신을 귀찮아하는 무책임한 군으로 인해 자신의 억울함을 들어주는 곳이 없었다고 말하는 피해자도 있었다.
취재하면서 느꼈던 군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군 복무 피해자에 대한 엄격한 태도였다. 이는 박한 피해 보상 문제로 이어졌다. 사망과 부상을 다루는 군의 대표적인 연금 형태 보상으로 △국가유공자 △보훈보상대상자 등이 있다. 국가유공자 기준은 부위마다 하나하나 규정과 규칙을 정해 엄격히 평가된다. 지난 8월 18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안면 흉터가 있었지만, 5cm 길이의 흉터라는 기준에 미치지 못해 보상받지 못한 군인이 있었다. 법원은 ‘외모에 뚜렷한 흉터가 남은 사람’의 기준을 만족한다며 군인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국방부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이처럼 보상받으려 해도 군의 엄격한 잣대는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새겼다. 군 복무를 시작하기 전 건강한 모습 그대로 돌아오기만을 바랐던 자신과 부모님, 가족, 지인이 바라보는 군의 모습은 모순되고 무책임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한 해 기준 약 18만 6,000여 명의 대한민국 남성이 병역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복을 입고 생애 처음 겪는 위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낸다. 많은 남성이 입영하기 전 “잘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을 하며 부모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며 약속한다. 그러나 2022년에만 93명의 군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매년 100명 가까운 남성들이 부모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전시 상황이 아님에도 안타까운 청춘들은 조국의 별이 됐다.
국군 강령은 “국군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고 명시한다. 대한민국 국군은 지금, 이 순간에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땀을 바치고 있다. 그러나 국가를 위해 입대한 청년은 국군이 말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국가를 보호하는 이들을 보호하는 정책과 제도는 오랜 희생으로 만들어져 왔지만, 현실과 동떨어져 작동하고 그것이 정치적 외압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권한을 가지고 지시를 했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 군과 정부의 모습을 전 국민이 지켜봤다. 군은 높은 직급일수록 권한과 책임이 커지는 계급제로 작동되기에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사단장, 국방부장관 더 나아가 대통령까지 책임지지 않는 권한 행사를 본 군인들이 더 이상 지휘부의 명령을 믿고 따를 수 있을까. 나아가 전시에도 군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 나라를 지킬 수 있을까.
아들을 군으로 보내는 부모들이 가입하는 모 커뮤니티에는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라는 말이 매일 올라온다. 그저 국가를 위해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우리 곁의 청년들이 다치지 않도록 책임감 있는 군이 되는 건 너무 많은 바람일까.
